[아트브리지 플러스·6]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나무 한 그루 허투루 대하지 않은 이곳… 걸으세요, 느릿느릿
'슬로 아트' 외치는 이경형 이사장
자연 훼손시키지 않은 '계획 도시' 마을 품격 유지위해 주민간 약속
느림의 미학서 가치 찾는 일 추구 어떤 콘텐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2-07-19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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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리마을 1번 게이트, 창포마을로 통하는 다리의 야경. /헤이리예술마을 커뮤니티사무국 제공

헤이리예술마을은 참으로 인위적이고도 역설적인 곳이다. 철저한 계획에 의해 조성됐고, 엄격한 통제아래 운영된다는 점이 인위적이다. 철저한 계획에 따라 조성됐음에도 직선도로가 하나도 없고 언덕과 웅덩이 하나 다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 자유분방하고 규율에 얽매이는 것을 터부시하는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만 공산주의 사회 못지않게 통제된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이 역설적이다. 그러나 이런 인위와 역설이 지금의 헤이리를 만들어 냈다.

건축물을 이어그리면 등고선이 되고, 마을길을 바람이 타고 흐르는 곳. 파주헤이리 예술마을 운영회 이경형 이사장을 만나 헤이리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왔다.

# 법흥리 1652번지

헤이리는 평일 한낮에는 더 없이 한가롭고 해가 지면 고요하기까지 하지만 주말이면 도시보다 시끌벅적하다. 도시에서 문화적 욕구를 다 충족하지 못한 이들이 몰려드는 시골마을 헤이리. '국내 하나뿐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독특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한 집 건너 하나씩 들어섰고,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지은 멋스러운 건축물들이 도시를 수놓고 있어 건축과 학생들에겐 천국같은 곳이다. 그런데 이런 마을에 과하다 싶은 비밀이 숨어있다. '나중에 헤이리에 들어와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눈여겨 봐야하는 것이 많다.

   
▲ 아직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공터에서 마을 주민들이 한가로이 여름밤을 만끽하고 있다.

헤이리에 터를 잡으려면 우선 문화사업계획서를 제출,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비즈니스지구 내 모든 건축물은 연면적의 60%이상 문화관련 시설과 프로그램을 갖춰야한다. 상업시설이 문화시설에 밀린 것이다. 주거, 창작지구에서는 상업시설을 운영할 수 없다. 매입한 토지에 건물을 지을 때도 엄격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 필지 사이에 담장은 칠 수 없고 건물 외벽에 페인트칠도 할 수 없으며 주차장은 지정된 건물위치 내에 설치해야 한다. 건축물은 폭 5.5m, 길이 30m의 지정된 패치(인공 바닥판) 안에 지어야 하며 건축 설계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다. 헤이리가 지명한 건축가 중에서 선정해야 한다.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이것은 법규가 아니라 약속이다. 순수민간조합을 결성하고 헤이리의 정신을 하나부터 열까지 만들어낸 사람들의 정성과 믿음이 담긴 조약이다. 이들은 1998년 파주 법흥리 1652번지 땅을 한국토지공사로부터 매입했다. 49만5천750㎡짜리 한개 번지의 땅을 320필지로 나눠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분양했다.

물론 땅을 분양받은 사람들은 문화사업 계획 승인을 받아야 했고, 자기땅의 절반을 절반을 파주시에 기부하겠다는 각서를 썼다. 이 이사장은 "녹지와 길을 확보하기 위해 절반을 기부채납했다"며 "예술마을이면서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마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헤이리인들은 도시계획을 시작할 때부터 남달랐다. 이곳의 저수지를 흙으로 덮고 언덕을 깎아내고 나무를 뽑아 땅을 평평하게 만들고 아파트를 지었다면, 지금 그 가치는 땅값의 수십배에 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자연물을 그대로 두고 자신들이 그 안에 스며드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헤이리마을에는 '계획도시'답지않게 언덕과 나무가 많고 바람도 잘 통한다. 아스팔트 길도 없고 가로등 조도도 낮고 건물도 낮다. 지금의 헤이리 마을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 내 집, 우리 동네

이 이사장은 2003년부터 헤이리에 살았다. 서울의 한 신문사에서 23년을 근무한 이 이사장은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골치아픈 일이 있을 때마다 인사동 갤러리에 가서 마음을 달랬다. 결혼기념일에는 미술품을 하나씩 장만했다. 수석논설위원 시절 헤이리를 조성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 이사장은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땅을 분양받았다.

집을 짓기위해 건축가를 선정하고 박수근 미술관을 설계한 이종호 건축가와 한달에 1~2차례 만났다. 갑과 을이 만났으니 건축설계에 대한 논의가 오갔어야 맞겠지만, 둘은 만나서 지난 삶과 앞으로의 생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잔을 주거니받거니 옮겼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지어진 집의 2층에는 퇴직한 이 이사장을 위한 서재가 큼지막하게 들어섰고, 지하에는 아내를 위한 공간이 마련됐다. 여성운동가인 아내가 동료들과 모임을 갖기에 안성맞춤이다.

   
▲ 헤이리마을 커뮤니티하우스에서 만난 이경형 이사장이 헤이리마을의 미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중간층에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 자녀 3명이 다 같이 방문했을때 불편하지 않도록 큰 방에 가벽을 설치했다. 이 이사장의 인생에 맞춘 집이다. 그는 "나 살기는 딱 좋은데 호환성이 전혀 없다"며 웃는다. 부동산에 내 놔도 안팔릴 거라고 농담을 하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짜 내 집'을 남 줄 생각은 없어보인다.

예술마을이니만큼 예술가들도 많이 산다. 영화감독 박찬욱·김기덕, 가수 윤도현, 연기자 최불암씨가 이 곳에 집을 지었고, 정두홍 무술감독은 아샬아트갤러리를, 방송인 황인용씨가 음악실 '카메라타'를 운영한다. '소나무'사진의 대가 배병우 작가 등 예술인들이 매일같이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이 이사장은 "영화감독들은 집은 있는데 집에 잘 안있더라"며 "박 감독은 몇 달씩 안보이다 가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게 보인다"며 이웃 소식을 전했다.

# 도시의 품격

헤이리는 늘 유혹에 시달린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보니 문화예술을 추구하기보다는 장사를 할 목적으로 헤이리에 들어오는 이들이 간혹 있기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개중에 갤러리인 척 하는 전용 카페가 있을 것"이라며 "문화마을다운 품격을 유지하기 위한 지침이니만큼 마을 구성원들 사이의 약속이 잘 지켜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예술마을로서의 미래 계획을 밝혔다. 그는 "집을 다 짓는 것을 완성으로 본다면 5년후면 완성된다.

이제는 헤이리에 어떤 콘텐츠를 담아 낼 것인가를 더 고민해야 한다"며 "헤이리를 뛰어넘는 헤이리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이 이사장은 '슬로 아트(Slow Art)'를 연구중이다. '느림의 미학'에서 가치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 이사장은 "슬로아트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으로 만든 작품들"이라며 "짚신 삼는 것이 예전에는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짚풀공예가 됐듯이 대장간에서 낫 만드는 것, 천연염색, 유기농법까지 예술이 될 수 있다"며 새로운 예술장르로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돌아오는 길에 황인용씨가 운영하는 '카메라타'에 들렀다. 이 이사장이 강력 추천한 장소다. 문앞에서 마주친 황인용씨가 낯선 얼굴인데도 정답게 인사를 건넸다. 옛날 LP판에서 출발한 음악소리가 진공관 엠프를 거쳐 종이스피커를 지나 귀에 닿았다. 따뜻한 소리다. 문화적 감수성이 충만한 헤이리 주민들은 간혹 문화적 주제를 두고 논쟁을 빚기도 한단다. 예술인으로서의 고집이 표출되는 것이다. 그들의 고집 덕분에 우리는 아직 아날로그의 따뜻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글┃민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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