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는 DMZ·4]끝나지않은 전쟁

화해하는 지구촌… 홀로남은 냉전의 땅
베트남전 이후 '아웅산 테러''KAL기 폭파사건' 극도의 대치… 반공·안보 생활화
2007년 정상회담 해빙모드에 연평도 포격등 '찬물 끼얹은 사건들'

신창윤·김종화 기자

발행일 2012-08-01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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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일대 대북심리전을 위해 설치됐던 확성기. 확성기를 이용해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과 남한 정권의 우월함을 홍보했었다.
그래픽/박성현기자

DMZ는 분단의 상징이며, 냉전의 산물이다.

한반도 분단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간의 갈등이다. 당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은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각각 38도선을 사이에 두고 한반도로 진입했다. 하지만 이런 목적과 달리 각 진영간의 이해관계가 더 크게 작용했다. 자본주의의 세력에는 동북아, 그리고 아시아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해 한반도에 거점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사회주의 진영에선 자본주의 진영의 아시아대륙 진출 차단과 태평양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라는 당면 과제가 있었다. 각자 다른 목적을 갖고 한반도는 위도 38도선을 사이에 두고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각자 다른 정치체제를 바탕으로 한 정부를 세웠다. 냉전 시대의 종결을 언제부터로 봐야할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지만, 보편적으로 구소련의 붕괴와 독일 통일을 기준으로 보고 있다.

독일 통일에는 독일을 강제적으로 분단시켰던 미국·소련·영국·프랑스 등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들이 독일의 통일을 인정하는 '대 독일 화해조약'에 조인함으로써 냉전체제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동·서독을 나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대 독일 화해조약'이 체결된 지 20여일 뒤인 1990년 10월3일 독일은 하나의 국가가 됐다. 독일 통일 기점으로 냉전 분위기의 화해 분위기로의 전환, 국제 사회의 치열한 경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의 산물인 DMZ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대치 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 반공과 안보로 점철된 한반도

한국전쟁이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을 통해 중단된 후 1960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 전쟁이 발생해 한반도로 쏠렸던 시선이 인도차이나반도로 향했다.

   
▲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남한 군인들의 월북(越北)을 유도하기 위해 사용한 '삐라'라고 불리는 대남심리전단.

베트남전쟁이 끝나자 한반도에선 남북한 대치 정국의 긴장감이 극도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1983년 10월9일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테러 사건인 '아웅산 테러 사건'과 1987년 11월29일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근해에서 북한공작원에 의해 공중 폭파된 'KAL기 폭파사건' 등이다.

두 사건은 현대사 속에 남북한의 대치 상황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간첩', '안보', '반공' 등 분단과 대치를 상징하는 단어들은 뉴스에 간혹 등장했다. 이런 단어들은 앞서 '아웅산 테러 사건'과 같은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치열한 보이지 않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2007년 10월 2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향하며 군사분계선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대 전후 화해 분위기로 인해 남북한 대치 정국이 예전만 못하게 다가오는 게 현실이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이 단어들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간첩', '안보', '반공' 등의 단어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남북한 체제를 은연 중에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인명을 앗아가는 큰 사건, 그리고 사람의 인명을 앗아가지는 않지만 남·북한 긴장 정국을 만드는 여러 단어들은 모두 '심리전'이라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다.

# 화해 분위기를 냉각시킨 사건들

2000년을 전후해 남·북한은 치열한 대치 양상에서 화해 분위기로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남한 정부와 경제계에선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해 비료지원 및 쌀 지원으로 식량난 해결에 도움을 줬고,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 조성 등을 통해 경제가 안정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2007년 10월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어 평양을 방문, 남북 정상회담을 열었다. 하지만 이후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2008년 7월11일 금강산관광지구를 방문 중인 여행객이 군사 경계지역을 침범했다며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남한 정부의 진상규명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남북한 화해 분위기의 상징적 사업 중 하나인 금강산 관광 사업이 중단됐다.

특히 서해안에서 일어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인해 남북 교류는 거의 단절됐다.

천안함 사건은 남한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PCC-722 천안)이 2010년 3월26일 침몰, 당시 함선에 승선해 있던 104명 중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다.

   
▲ DMZ 남쪽 군 초소에 설치되었던 대북선전방송비.

연평도 포격은 북한이 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30분경 대연평도를 향해 170여 발을 포격한 사건이다.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중경상을, 민간인은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북간의 교전으로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신창윤·김종화기자

사진┃김종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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