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브리지 플러스·11]가평 가일미술관

호젓한 강가에 '예술 낙원'을 짓다
그림으로 매일 행복한 강건국 관장
건축가·교수로 20년 넘게 밥벌이 미술에 대한 그리움 안고 살아와
공연장과 카페 갖춘 곳 손수 건설 "호사 부릴수있는 작업실 내 왕국"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2-08-23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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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평 가일미술관 강건국 관장이 자신의 작업실은 "자유로운 담배 흡연과 홍차에 코냑을 타서 마시는 유일한 호사를 부릴 수 있는 나의 왕국"이라고 말했다.

태어난 이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한평생. 일생을 멋지게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타고난 재능을 십분 발휘하거나 남을 초인적으로 도우며 살거나 장애를 딛고 일어서고 병을 이겨낸 이들을 우리는 멋진 삶을 살았다며 부러워한다. 누군가의 생을 멋지다!고 하는 칭송에는 '그는 틀림없이 행복했으리라'는 부러움이 담겨 있다. 오늘 주인공은 부러운 사람이다. 가난과 함께 일어서고 열정과 손잡고 긍정과 함께 살아온 가일미술관 강건국(68) 관장은 '행복한가?'라는 질문 앞에 한 점 의혹없이 당당하다.

■ 나의 왕국

가일미술관의 평면도를 보면 쪽배 한 척을 반으로 나눠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다. 강 관장은 미술관 지을 자리를 찾아 처음 가평을 방문했을 때 배를 타고 들어왔다. 도로도 나지 않은 외진 땅을 보고 그는 탄성을 내질렀다. '여기다!'

IMF 직전인 1996년 당시 주변보다 땅값이 두 배는 비쌌고 주유소로 개발이 예정돼 있던 자리라 웃돈까지 얹어 주어야 했지만 그는 그 땅 말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강 관장은 "10여년 동안 인천 강원도 등 곳곳으로 미술관 자리를 찾아다녔는데, 좋은 땅은 이미 많이 개발이 돼서 유원지나 모텔들이 차지하고 있더라"며 "풀 한 포기 없는 땅이었지만 내 눈에는 낙원으로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는 곳에 강 관장은 흙을 부어 땅을 고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덤프트럭으로 4천300대. 마을 주민들은 재벌이거나 혹은 미쳤다고 생각했단다. 건축가로, 건축과 교수로 20년이 넘게 밥벌이를 한 그는 강바람에 지지 않을 내구성과 주변의 경관에 주눅들지 않을 디자인을 갖춘 미술관을 4년 동안 지었다.

미술관과 수장고 겸 기숙사, 100석 규모의 공연장, 그리고 자신의 작업실. 건축가 강 교수는 이곳에서 강 관장, 그리고 강 작가로 탈바꿈했다. 그는 "고등학교때까지 미술반에 있었는데 그때는 가난해서 재료 살 돈이 없어 남들 유화그릴 때 나는 수채화만 그려야했다"며 "돈벌이를 위해 건축과로 진학해 돈도 벌고 가정도 꾸렸지만 가슴 한쪽은 늘 그림을 그리워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3개월 전 작업실을 미술관 건물 지하로 옮겼다. 원래 쓰던 작업실은 카페로 개조했다. 상명대에서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 큰아들과 막내딸이 카페를 운영한다. 좌우 어느 쪽을 봐도 물이 흐르고 나무가 숨쉬는 카페의 전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이런 환경을 포기하고 옮겨간 지하 작업실이지만 미술도구는 물론이거니와 먹을거리와 각종 기자재를 수리할 때 쓰는 공구, 그리고 책과 그림, 음악CD 등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오전 7시부터 12시간 정도 작업실에 머문다는 강 관장은 "작업실은 홍차에 코냑을 타서 마시는, 유일한 호사를 부릴 수 있는 나의 왕국"이라고 자랑했다.

■ 행복완전체

인터뷰하는 내내 강 관장의 입에서는 '싫다'는 소리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와중에 "직계가족만 15명"이라는 것은 세 번쯤 말했다.

그의 부모님은 이북에서 6·25 전에 월남했다. 그의 나이 6살때였다. 강 관장은 어머니와 누나, 남동생과 가난하게 살았다. 어머님은 평화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세 남매를 가르쳤다. 아버지는 따로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일어난 일 중 아내와 결혼하고, 세 자녀를 낳아 사위, 며느리에 6명의 손자까지 얻은 것이 가장 고마운 일인 모양이다.

   
 
가장 뿌듯한 일은 미술관을 지은 것이다. 잘나가던 그가 돌연 모든 일을 접고 가평행을 선언했을 때 아내가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그 속내를 헤아렸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젊은 시절 남들보다 세 배 열심히 살았다"는 강 관장은 "10년 동안 토요일, 일요일이 없었다"며 "그렇게 산 사람들은 미련없이 다음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45세에 은퇴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쉰다섯살이 돼서야 일을 그만 둘 수 있었다. 오래 참았던 강 관장은 지금 보상이라도 받는 듯 신나게 살고 있다. 강 관장처럼 "앞으로 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지금 생활에 완전히 만족한다"고 주저없이 말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 오래 보기

부부가 미술관에 자녀들과 함께 와서는 엄마는 애들이랑 관람하러 들어가고 아빠는 밖에서 담배피고 있다. 강 관장이 다가가 왜 안 들어가냐고 물어보면 "그림에 취미가 없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강 관장은 그를 굳이 끌고 들어가 쫓아다니며 그림을 일일이 설명해 준다.
 
   
 
강 관장은 "그렇게 하면 다음에 반드시 함께 들어가게 돼 있다"며 "미술관에 오는 것은 예술교육이 아니라 인성교육"이라고 말했다. 그림을 감상하는 자세를 잘 가르치면 인성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림 앞에 서 있는 시간'을 강조하는 그는 "한국사람은 그림 보는 시간이 아주 짧다"며 "여행가이드들이 여행자들을 미술관에 내려주고 1시간 만에 보고 오라고 하는데, 일본은 반나절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림은 오래 보는 만큼 보이고 알고 싶어 하는 만큼 알게 된다"며 "굳이 미술관에 와서 곁눈질로 보며 슥 지나가는 것은 그린 사람에 대한 모독"이라고 잘라 말했다.

강 관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러운 나라가 '오스트리아'란다. 동네마다 주말마다 저녁마다 음악회가 열리고 골목마다 미술관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매달 자신의 공연장에서 음악회를 열고 300점이 넘는 그림을 수집했고 1년에 몇 차례씩 기획전을 여는 미술관 관장님도 부러운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다"고, "오늘이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말하는 강 관장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럽고 닮고 싶은 한평생일 것이다.

   
 
가평군 청평면 삼화리 609의 6/(031)584-4722

글┃민정주기자

사진┃김종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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