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밤길이 무서운 요즘, 근본적 대책 필요

'묻지마 폭력' 개인적 접근 해결보다

사회현상에 대한 폭넓은 진단 필요
   
▲ 한옥자 / 경기시민사회포럼 공동대표
연일 세상이 뒤숭숭하다. 길거리를 거니는 것이 두렵다. 좀 늦은 시간에 한적한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갈 때는 몸이 조이는 느낌이다. 어둠을 피해 걷지만 자꾸 뒤를 힐끔거리게 된다. 아파트에 도착했다고 그 긴장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엘리베이터에 낯선 사람과 타는 것이 두려워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집에 들어와서도 문이 잠겼는지 또 확인한다. 이런 증상이 나만 있는 것일까?

최근 수원을 비롯해 전국에서 일어나는 성폭력과 불특정인에 대한 폭력 사태 앞에서 우리 모두는 소위 '멘붕' 상태다. 삼삼오오 모이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 끔찍한 사태에 대해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긴장한다. 그러면서 밤길이 안전한 나라라고 했던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험악해졌는지 한탄을 한다. 배트맨이 나타나 자기가 활동하던 도시 '고담'을 지켜주듯이 우리도 이 불안사태에서 어서 놓여나기를 기대하지만 아직 뾰족한 묘안이 없는 것 같다. 우선 정부가 최근 일어나는 사태의 심각성 인지도 부족하고, 더 문제는 다분히 사건을 일으킨 개인적 요소로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논의되고 있는 정책 대안은 범죄와의 전쟁을 통한 재소자 늘리기 정책이나 경찰력 증가, 거미줄처럼 촘촘한 CCTV 설치 등인데 과연 작금의 심각한 우리사회 병적 상황을 통제와 억압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

몇 달 전 나는 이 칼럼을 통해 책을 한 권 소개한 적이 있다. 미국의 근·현대 100년간 일어난 살인율과 자살률을 연구한 보고서(제임스 길리건(2012)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로 다시 그 책 내용을 인용하면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폭력 문제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보고 싶다. 몇 년 전부터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자살 소식이었다. 가족 동반 자살을 포함해 각종 사건 연루자, 공직자 등의 자살 소식은 참으로 황망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실제 언론을 통해 들리는 우리나라 자살 소식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통계가 답해 주었다. 2010년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천명당 0.31명으로 OECD회원국 평균 0.11명에 비해 거의 3배 가까이 된다. 그 심각성을 파악한 정부에서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논의가 있을 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살 예방 정책수립 과정에 폭력 예방을 포함하는 보다 광범위한 진단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국가보다 비교적 낮은 폭력률과 살인율로 인해 그 주장은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밤길이 두렵고 묻지마 폭력이 난무하는 이 시점에서 자살과 폭력 문제를 동일 선상에 놓고 다시 원인과 대책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길리건 교수가 쓴 보고서는 100년간 미국에서 벌어진 살인율과 자살률이 늘 동반상승, 동반하강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과 이 비율은 백악관 주인의 정당과 관계가 있다는 점을 밝혀낸다. 패배감과 열등감을 조장하고 타인을 경멸하고 무시하도록 부추기는 불평등 문화를 조장하는 정책 지향 정부에서 사람들이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실했거나 해고되었을 때 심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경험하게 되고 이 때 모욕감과 수치심은 타인에게(폭력 또는 살인) 또는 자신에게(자살) 의도된 살해를 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살의 배경이나 살인의 배경이 크게 다르지 않다. 정신의학자인 길리건 교수는 이런 현상을 사람들이 수치심 때문에 참을 수 없거나 고통스러울 때 자기 안에 있는 수치심을 남에게 떠넘기거나, 벗어나려고 살인을 저지르거나 남에게 폭력을 휘두른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수치와 불명예를 느낄 위협에 노출되지 않고 하루아침에 신분이나 지위가 뚝 떨어지는 추락을 겪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는 폭력의 수위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한 학자의 보고서가 해결의 답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그 불안으로 얼마 남지 않은 공동체 문화마저 파괴하는 작금의 '묻지마 폭력' 문제 해결이 개인적 접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우선 지금 사회 현상에 대한 폭넓은 진단과 그 진단에 따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그 다음 시민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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