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는 DMZ·8]잊혀진 마을, 희망을 일구는 마을

통제된 일상 사는 평범한 사람들… 민통선, 삶터 일뿐이다

신창윤·김종화 기자

발행일 2012-09-12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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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박성현기자

비무장지대(DMZ·demilitarized zone)와 민간인 출입통제선(CCL·Civilian Control Line)은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전쟁이 멈춰져 있는 지금 비무장지대와 민간인 출입통제선은 또 다른 전쟁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지만 평화의 상징으로 남을 수도 있다. 비무장지대, 즉 DMZ는 1953년 7월 27일

'한국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따라 남한과 북한이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2㎞씩 물러나 비무장지대를 만든 것이다. 휴전선이라고도 불리는 군사분계선은 동해안의 간성 북방에서 서해안의 강화 북방까지 155마일(250㎞)이다. 민간인 출입통제선, 즉 민통선은 비무장지대 바깥 남방한계선을 경계로 남쪽으로 5~20㎞에 이르는 지역을 말한다. 비무장지대 바깥의 남쪽 철책선을 남방한계선, 북쪽 철책선을 북방한계선이라고 한다.

1953년 남북합의로 탄생한 '대성동마을' 북한 기정동과 800m 거리… 유엔사령부서 치안 담당
파주지역 통일촌·해마루촌등 3곳 820명 거주
재산권 행사·출입때 신원조회 많은 제약 받아

남방한계선은 휴전 다음 해인 1954년 미군이 휴전선 일대의 군사작전과 군사시설 보호, 보안유지를 목적으로 남방한계선 바깥으로 5~20㎞ 지역을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며 만들어졌다. 비무장지대 안은 유엔사령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미군에 의해 만들어진 민통선은 1958년 휴전선 방어 임무를 한국군이 담당하고 출입영농과 입주영농을 허가하면서 귀농선이 민통선이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 전쟁으로 인해 잊혀진 마을

한국전쟁이 발생하기 전 DMZ와 민통선 안도 한반도의 여느 마을과 같이 평범한 삶을 일궈 오던 곳이었다. 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 발생 전 이 곳에는 총 427개의 마을에 4천600여 동의 가옥이 있었다. 경기도는 244개의 마을에 2천200여동의 가옥이, 강원도는 183개의 마을에 2천300여개의 가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DMZ와 민통선 안의 마을이 경기도 4개소, 강원도 6개소 등 모두 10개소에 1천여가구에 불과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수많은 마을이 있었다. 이 중 경기도 지역의 마을은 파주지역에는 군내면 조산리(대성동 자유의 마을), 군내면 백연리(통일촌), 진동면 동파리(해마루촌) 등 3개의 마을에 287세대 820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천군에는 중면 횡산리 1개 마을이 민통선 안에 위치해 있고 30세대 71명이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민통선 마을은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개발 제한으로 인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민통선 안에서 벗어나거나 다시 마을로 들어갈 경우 신원조회 절차를 밟아야 한다. 특히 이들 4개 마을 중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하 대성동 마을)은 비무장지대 안에 위치해 있어 유엔사령부가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 민북 마을 통일촌에서는 안보관광을 위해 방문한 사람을 대상으로 특산품 장단콩을 활용한 체험학습을 운영하고 있다.

# 희망을 꿈꾸는 마을

대성동 마을은 1953년 휴전협정에 의해 남북에 하나씩 민간인이 거주할 수 있는 마을을 두기로 합의하며 태어났다. 10개의 민통선 안에 위치한 마을 중 유일하게 DMZ 내에 위치한 대성동 마을은 군사분계선에서 4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대성동 건너편에는 북한의 DMZ 민간인 거주지인 기정동이 있는데 두 마을의 거리는 800m에 불과하다.

대성동 마을은 유엔군 사령부의 통제를 받는 치외법권지역이지만 대성동 마을 주민이 범법 행위를 하면 일단 마을에서 추방되는 형식을 거친 후 대한민국 법률에 의해 규제를 받는다.대성동 주민은 참정권과 교육을 받을 권리는 갖지만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는 면제된다. 대성동 주민 대부분은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여기서 나는 농산물은 청정한 자연에서 재배돼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성초등학교의 특화 교육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가고 싶은 학교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을 장기간 떠나 있을 때는 사령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매일 저녁 호구 조사를 받는 등 제약을 받고 있다. 해마루촌과 통일촌은 DMZ 바깥 민통선 안에 위치해 있다.

   
▲ 대성동 마을 /파주시 제공

통일촌은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전방시찰 도중 '재건촌의 미비점을 보완한 전략적 시범농촌을 건설하라'는 지시에 의해 1973년 조성됐다. 통일촌 건설 당시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유곡리에도 마을이 함께 조성됐다. 입주대상자는 군복무를 필한 사람, 전과가 없는 사람 등으로 제한해 제대를 앞둔 하사관 40세대와 지역 원주민 40세대 등 총 80세대가 입주했다.

장단콩 마을이라는 별칭은 이곳 주민들이 콩을 특산품으로 재배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마루촌은 '동파리(東坡里)'라는 지명을 우리 말로 풀어서 쓴 이름이다. 해마루촌은 1998년 옛 장단군이 고향인 실향민 1세대와 2세대들을 위해 조성됐다. 해마루촌은 녹색농촌체험 마을을 꿈꾸고 있지만 민통선 안에 있다는 제약으로 인해 일반인의 숙박은 군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해마루촌은 위성에서 보면 높은음자리표 형상을 띠고 있어 '높은음자리표 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글┃신창윤·김종화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해마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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