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브리지 플러스·14]광명 충현박물관

이원익종가 13대 종부 함금자 관장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2-10-04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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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인조대왕이 오리 이원익 대감에게 하사한 관감당 앞에서 충현박물관 함금자 관장이 '조건을 잘 갖춘 유일한 박물관'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종부의 무거운 굴레를 머리에 이고 있으면서도 바지런하고, 또한 영리했다. 23살에 시집온 후 50년동안 그는 다른 종부들과 마찬가지로 가문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바쳤다. 영리한 그가 다른 종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종가를 단지 가문의 것이 아닌, 국가를 위한 시설로 환골탈태시켰다는 것이다.

종가의 가치가 잊혀져가고 있는 시대의 종부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오리 이원익 종가의 13대 종부이자 충현박물관 관장, 그리고 한국사립박물관협회를 이끌고 있는 함금자(72) 회장을 만났다.

오리대감 유품·살림살이 보존
청렴 성품 관감당 등에 묻어나
박물관 운영하는 유일한 종가
집안 전통 국가를 위한 역할도
시설 문화교육의 장이 되어야

■ 종가박물관

   
▲ 광명 충현박물관 입구

함 회장은 "종가가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갖춘 유일한 종가"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오리(梧里) 이원익 대감이 살던 관감당(觀感堂)은 왕이 신하에게 하사한 집 중 유일하게 남아있다. 왕이 내린 집치고는 아담한 규모의 5칸짜리 집은 청백리로 유명한 오리대감의 성품을 그대로 닮았다. 인조대왕은 신하에게 퇴직한 이원익이 어찌 살고있는지 보고오라 일렀다.

다녀온 신하는 "비가 새고 허리를 펴지 못하는 초가에 살고 있더라"고 고했다. 명신의 궁핍한 살림이 가슴아팠던 인조는 집을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3번 거절했다. 그러자 인조는 "백성들 보고 배우라고 내리는 집이니 더이상 사양 말라"는 교지를 내렸고 오리대감은 이를 받들되 "그렇다면 5칸짜리 집을 지어주십시오"라고 청했다.

관감당 뒤쪽으로는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고, 효종 때 지은 충현서원의 터가 남아있다. 바람이 얼마나 시원하게 잘 드는지, 이름마저 바람으로 목욕을 한다는 '풍욕대(風浴坮)'를 지나서는 오리대감의 부모와 형제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함 회장은 "몇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소실된 종가가 많다"며 "충현박물관은 조건을 잘 갖춘 유일한 종가이면서 또한 박물관으로 관리, 보존되는 유일한 종가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 오리 이원익 종가의 오래된 살림들
박물관 안에는 오리대감의 유품과 함께 종가의 살림들이 세월을 입고 기품있게 손님을 맞는다. 나뭇결이 지문처럼 느껴지는 목가구부터 여인들이 가마타고 먼길 갈 때 쓰던 가마요강, 안방마님이 쓰던 화로 등의 소품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고모할머니가 함 회장의 수고를 덜어주기위해 선물했다는 스테인리스로 도금한 유기그릇을 소개하는 그의 표정에서 아득한 그리움이 스쳐지나갔다.

■ 새시대의 종부

함씨는 대학시절 기독교모임에서 배필을 만났다. 종가집 4대 독자인 남편은 일찍 부모님을 잃었지만 종가집 종손으로서의 기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교제한 지 2년이 지나 함 회장을 집으로 초대한 남편은 이미 결혼을 작정한듯 오리대감의 묘소에 함 회장을 데리고 갔다.

함 회장은 "친정어머니가 반대하셨지만 시집오기 전에는 종가의 무게를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며 "그러나 막상 시집와서 몇 년은 너무 무거운 굴레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시부모님이 안계셔서 시집살이는 없었지만 가문의 전통을 지켜야한다는 의무감 자체가 짐이었다.

다락문을 열어보니 버들고리궤에 둘둘말린 한지 뭉치가 나왔다. 오리대감이 쓴 문서들이었지만 먼지와 쥐똥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 오리 이원익 영정 ·오래된 문서 등을 전시하는 공간
지키고자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시대는 이미 변했고, 남편의 일과 자식의 교육때문에 종가에는 관리인을 두고 서울로 거쳐를 옮겼다. 손이 귀한 집안에서 아들 넷을 낳았고 그 중 셋을 의사로 키웠다. 정신없이 살다 종가를 돌보러 갔을 때 함 회장은 '아차!' 싶었다.

목가구며 그릇들이 하나 둘 씩 없어지고 있었다. 고가구와 골동품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장사치들이 종가를 드나들었고 관리인들은 물건을 팔아치웠다. 함 회장은 "뒤주에 그릇을 넣고 자물쇠를 채웠으니 괜찮겠지 했는데 경첩을 뜯고 그릇을 모두 빼서 팔았더라"며 "91년부터 유물관을 만들어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3년까지 유물관으로 관리하다 남편이 퇴직하면서 박물관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박물관 운영을 위해 함 회장은 숙명여대에서 문화예술행정학을 공부했다. 그때가 그의 나이 예순여섯이었다. 옆에서 공부하는 것을 지켜본 남편은 숙대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A+ 줄만하게 공부하더라"며 함 회장의 노력을 인정했다.

■ 박물관의 새기능

박물관 운영을 위해 오리대감의 생애를 연구하며 숨겨진 유물을 발굴해내고, '종가박물관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까지 취득한 함 회장은 내친 김에 한국사립박물관협회 회장 자리에 앉았다. 2009년 부임했을 때 협회는 국가지원 한 푼 받지 못하고 있었다.

   
▲ 보물로 지정된 오리 이원익 영정

함 회장은 "박물관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인데 회원관들에게 어떤 지원도 해주지 못한다면 있으나마나 하다고 생각했다"며 "국가에 적극적으로 지원요청을 해 지난해 처음으로 에듀케이터 인력지원사업비를 지원받았다"며 그간의 성과를 설명했다.

박물관의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함 회장은 교사자격증 소지자 등 교육학 전공자를 박물관 에듀케이터로 활용해 문화교육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충현박물관에서만도 역사, 효, 청렴, 애국 등 교육 콘텐츠가 무궁무진하다"며 "박물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공교육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문화와 인성교육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주5일제 수업 시행과 맞물려 박물관 에듀케이터 사업에 대한 가정과 학교의 호응이 크다"며 "교사자격을 가진 인재를 고용하는 효과도 있으니 반드시 확대 발전시켜야 할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1085의 16/(02)898-0505

글┃민정주기자
사진┃김종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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