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는 DMZ·12]분단국가에서 세계의 중심에 선 독일

이념조차 부순 하나된 열망… 1400㎞ 동서의 평화 잇다

김종화 기자

발행일 2012-10-17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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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을 방문해 분단 당시의 고통을 간접 경험한다.

분단국가란 본래는 하나의 국가였지만 전쟁이나 외국의 지배로 인해 강제로 2개 이상으로 나뉜 국가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분단국가는 3곳에서 탄생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베트남, 유럽에서는 독일이다. 베트남은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재빨리 독립을 선언한 호찌민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 민주공화국(월맹)과 북위 17도선 북쪽에 위치한 북베트남으로 나뉘었다.

베트남은 20여년에 걸친 긴 전쟁을 거쳐 지금은 하나의 국가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하며 동서로 나뉘었던 독일도 1990년 하나의 국가가 됐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됐다. 독일 통일에 시선이 가는 이유는 전쟁 없이 평화통일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뤼벡~체코 국경 이어진
'그뤼네스 반트'
환경자원 가치 커
정부차원 프로젝트 진행
자치주별 특화프로 운영
미래세대에 체계적 교육

   
▲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은 베를린 시내에서 문화예술에도 이용되고 있다.

# 제2차 세계대전과 분단

독일의 분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문제를 논의한 포츠담협정에서부터 시작된다. 1945년 8월 포츠담회담에서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개의 연합국이 독일을 점령하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자유진영 세력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점령지에 자유주의(서독) 정권을 출범시켰고 소련도 공산주의(동독) 정권을 출범하며 하나의 국가가 두개로 나뉜다.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도 4개국 공동 관리 하에 놓여 있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3개국과 소련의 갈등으로 동·서 베를린으로 나뉘었다.

각기 다른 정치 체제를 바탕으로 갈등을 빚어 오던 동·서독은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을 체결해 관계 정상화에 성공했다. '동·서독기본조약'의 주요 골자는 양국 관계를 갈등에서 평화공존체제로 전환하는 것과 상호방문, 이산가족결합, 경제와 문화적 교류 등이다. 다음해인 1973년에는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국제 사회에 2개의 국가로 인정받았다.

동독은 1민족 2국가를 주장하고 있었고 대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통일 이후 독일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 통일에 대한 논의는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 뉘른베르크 나치당 당사 전경

독일 통일의 본격적인 논의는 80년대 중반 소련이 개방·개혁 정책 노선을 걷기 시작하면서 이뤄졌다. 많은 동구권 국가들이 소련의 개방·개혁 정책을 수용하는 분위기였지만 동독 정치권에서는 개방을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독 주민의 저항운동이 거세졌고 급기야 1989년에는 동베를린에 있는 서독 상주대표부에 대거 출국 신청을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같은 해 10월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일에 대규모 시위가 드레스덴에서 발생했고 이후 전국적으로 저항운동이 확산됐다.

1989년 12월 동독 정부가 베를린장벽을 공식적으로 개방함과 동시에 정치 개혁을 단행했다. 1990년 7월1일 동·서독 정부가 경제·통화·사회통합 등에 합의하며 통일을 이뤄냈다.

# 독일의 DMZ 어제와 오늘

독일인들은 동·서독 분단당시의 휴전선을 '그뤼네스반트'(Gruenes band)라고 부른다.

   
▲ 동서독을 오고가기 위해 거쳐야 했던 베를린 찰리검문소가 관광자원으로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뤼네스반트는 슐레스빅 홀스타인(Schleswig-Holstein) 주의 뤼벡(Lubeck)부터 체코의 국경까지 이어지는 1천400여㎞ 구간에 이어져 있었다.

한국의 DMZ는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2㎞, 북쪽으로 2㎞로 총 4㎞의 폭으로 되어 있는데 비해 독일의 DMZ인 그뤼네스반트는 휴전선을 기점으로 각각 남북으로 좁은데는 50m 넓은데는 200m의 폭으로 되어 있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독일을 떠올리며 생각하는 분단 장벽은 베를린 뿐 아니라 독일 전역의 그뤼네스반트에 걸쳐 세워져 있었다. 독일인들에게 그뤼네스반트는 분단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환경 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높이 평가 받고 있다.

독일 정부와 그뤼네스반트가 위치한 자치주, 시민사회단체인 반트(BUND)라는 단체가 중심이 돼서 체계적인 관리 방안을 모색 중이다.

   
▲ 뉘른베르크에 위치한 제2차 세계대전 전범 재판소.현재도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독일 정부는 시민사회단체인 반트의 전문직 채용을 지원해 독일 전역에 걸쳐져 있는 '그뤼네스 반트'의 운영 방안에 대해 중장기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고, 반트 관계자가 독일 정부와 함께 수립한 중장기 프로젝트는 자치주별 특성에 맞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그뤼네스 반트에 대한 독일 정부와 독일 국민들의 관심은 미래 세대들이 그 가치를 배울 수 있도록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그뤼네스 반트 환경 교육을 진행하는데서도 알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인 반트는 '그뤼네스 반트'의 환경을 조사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고, 자치주에서는 주별 특화 프로그램을 개발해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글┃김종화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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