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는 DMZ·13]독일 경제 재건을 이끈 함부르크

파괴된 '기회의 항구'에 기적 이룬 '위대한 유산'

김종화 기자

발행일 2012-10-31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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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부르크시의 역사와 함께 해오고 있는 시청사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전범국으로 전락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패한 국가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독일은 이런 일반적인 사례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독일은 2012년 상반기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3조4천787억달러로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다.

독일 앞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국가는 미국(15조6천억달러), 중국(7조9천억달러), 일본(5조9천억달러)이다. 한국은 GDP 1조1천억달러로 15위에 올라 있다. 독일의 국내총생산이 한국의 3배에 이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독일은 세계경제, 특히 유럽연합을 이끌고 있는 경제 대국이다.

자유한자도시 함부르크 중세부터 특권 / 패전·통일 악재속 '유럽 무역의 중심' 버팀목
1956년 복원이후 비약적 발전 / 엘베강 유람선 관광·아름다운 항만시설 사람들 몰려

냉전시대 서독경제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닌 '사회적 시장경제'를 채택했다. 한국인에게 생소한 '사회적 시장경제'는 생산·소비·직업선택 등에 대해서는 자유 경쟁에 맡기지만 시장형태 등을 포함한 사회적 질서의 형성·유지에 대해서는 국가가 경제·사회 정책을 통해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 제2차세계대전으로 인해 함부르크는 80%이상이 파괴됐다.

서독은 냉전시기 '사회적 시장경제'로 빠르게 경제 회복에 성공해 '서독 경제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제 부흥기를 맞았다. 하지만 통일 후 독일 경제는 또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통일 당시 동독주민의 노동생산성이 서독의 5분의 1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독일정부는 구동독경제의 전면적인 개편을 통해 2000년대 경제 대국으로서 다시 한 번 우뚝 선다.

# 중세부터 시작된 함부르크의 역사

함부르크의 역사는 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칼 대제는 작센주를 거점 삼아 그 주변 지역 및 북유럽의 선교활동을 위해 교회를 세웠다.

칼 대제는 교회와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작은 성을 쌓았는데 그 성의 이름이 하마부르크(Hammaburg)였고, 그것이 현재 함부르크(Hamburg)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 후 1189년 황제 바바로사 프리드리히 1세는 당시 십자군전쟁 때 함부르크의 큰 도움에 감사하는 의미로 황제의 이름으로 특권을 허락하게 되는데 그 특권은 총 4가지로 이루어졌다.

   
▲ 국가대표 공격수 손흥민의 소속팀 함부르크SV 축구단이 사용하고 있는 축구장은 제2차세계대전으로 파괴된 건물에서 나온 석재로 지어졌다.

함부르크에서 북해에 이르는 지역까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으며, 군대의 의무가 없어졌으며(다만 자체도시를 지키기 위한 군인은 존재), 함부르크 주변 15㎞ 지역까지 성을 짓지 않아도 됐다. 가축을 기르고 물고기를 잡으며 산지를 개간할 수 있게끔 허락이 되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함부르크가 중세 이후부터 유럽 상업에 있어서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19세기에 이르러 엘베강에 많은 부두가 형성되어 발전되어 왔다.

# 독일 경제의 중심 함부르크항

독일 경제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 통일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빠르게 재건될 수 있었던 건 유럽 무역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독일도 유럽의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원유와 전기공학제품 등은 수입하지만 자동차, 기계류, 화학제품 등은 수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과 수입의 비중을 따졌을 때 수입하는 것보다 수출의 비중이 높다. 2005년 독일은 수출 1조295억달러, 수입 8천185억달러로 흑자를 기록했다.

   
▲ 함부르크항은 독일 경제를 이끈 중심이다.

독일 경제를 이끈 무역의 중심은 함부르크다.

함부르크의 정식명칭은 자유한자도시 함부르크다.

현재 함부르크는 독립된 주이자 시이기도 한데, 항구를 가지고 있다는 지리적 장점 외에 수세기 동안 자유 한자도시로서 정치적 독립을 유지할 수 있어서 베를린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1930년대 세계공황으로 인해 많은 실업자가 생기고, 선박주문 및 물동량이 줄어들게 되어 산업전반이 침체됐지만, 이는 나치시대로 이어지면서 외부로의 물동량이 금지되는 등 항구의 이용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군함 및 잠수함 그리고 많은 군수산업품의 생산지로 변했고 군수물자의 생산을 막기 위해 연합군의 주 폭격이 이뤄져 80%가 파괴됐다.

   
▲ 함부르크시청사는 시민들에게 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1956년에 복원이 결정됐고 처음에는 발전소와 저장소가 설치됐다. 컨테이너 터미널이 생기고 컨테이너를 옮기는 기계들이 새로 변형 발전되어 나옴에 따라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후 함부르크항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방과 여러 아시아 국가들과의 계약으로 다시금 세계적인 항구로 발돋움하게 된다. 1990년에서 2007년 사이에 총 매출은 두 배 이상 올랐으며, 2008년에는 1억4천만t에 이르렀다. 2011년에는 1억3천200만t으로 약간 줄었다.

유럽 무역의 중심 함부르크는 관광지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유럽에서 출발하는 크루즈 여행의 중심 항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항만시설 자체가 인기 관광 상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유람선을 타고 함부르크항의 역사와 다양한 시설을 둘러보는 관광 상품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또 중세부터 사용해 오고 있는 함부르크 시청사, 도시 주변에 흐르고 있는 엘베강 지류를 이용한 유람선 관광 등도 인기를 끌고 있는 관광 상품이다.

   
▲ 함부르크는 복원된 옛 건물들과 최근 지어진 건물들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도시다.

함부르크는 무역항으로서의 역할을 바탕으로 문화유산, 자연환경 등을 활용한 관광 상품으로 독일 경제를 이끌고 있다.

글┃김종화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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