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브리지 플러스·18]제주 아프리카박물관

제주속 아프리카 희망의 교차지점
'진짜' 아프리카를 알리고픈 한성빈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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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2-11-08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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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브리지플러스의 마지막 방문지는 아주 먼 곳이다. 제주도에서 아프리카를 만나기. 입동을 얼마 남기지 않은 11월 초 제주도의 이국적인 야자수와 뜨거운 태양은 아프리카와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프리카와의 멀고도 먼 정서적, 문화적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교류도 늘고, 항공기 직항로가 열리며 여행객도 늘고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검은 원주민들이 문명을 등지고 사는 곳' 수준에 머물러있다. 제주도에서 아프리카를 만나는 것은 우리나라 유일한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지구 유일한 희망의 땅을 만나는 것이었다.

父子, 대를 이어 대륙 유물들 모아
관장인 아버지가 짓고 아들이 운영
타문화 포용력 아직은 부족한 현실
원시문명 이전 '가능성' 뿌리내린곳
섬에 박물관 난립 관광자원 질 하락

   
▲ 제주 아프리카박물관 한성빈 부관장이 마사이족 모형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는 인류가 가진 마지막 희망의 땅"이라고 말했다.

■ 박물관

동글동글 인상 좋은 한성빈 부관장이 박물관의 유물들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아프리카의 유물들을 보려면 우리가 아는 미술의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0세기에 이 작품은 '우지마 운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을의 불특정 다수 민속공예가들이 제작해…." 아, 모르겠다. 우지마 운동이 뭔지, 흑단나무로 제작된 2m높이의 조각품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으니 한 부관장의 깨알같은 설명이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한 부관장도 외계인처럼 느껴진다. 그는 어디서 저런걸 다 배웠을까.

아프리카박물관의 한종훈 관장은 그의 아버지다. 건축업에 종사한 한 그는 수집 활동을 좋아했다. 카메라도 모으고 시계, DVD도 모았지만 가장 많은 애정을 쏟은 수집품은 아프리카의 유물들이다. 그래서 한 부관장은 어렸을때부터 아프리카의 공예품, 미술품,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여러 물품들을 보고 자랐다.

   
▲ 우지마. 2m. 20세기 작품. '우지마'는 가족·사랑·평화 등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종족집단의 협력을 통해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종족을 보호한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건축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대학시절 실내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리고 미국 콜럼비아대학에서 아프리카학을 공부했다. 아, 미국에서 배웠구나…. 우리나라에는 아프리카를 가르치는 곳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그는 30대 중반에 귀국해 야심차게 서울 대학로에 아프리카 박물관을 오픈했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은 유물의 수보다 적었다. 다행히 부업으로 하던 식당에서 돈을 번 그는 박물관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다시 공부를 하러 가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그때 은퇴하고 제주도에 내려가 살던 아버지가 그를 불렀다. 아버지는 제주도에서 자신의 재산과 재능, 열정을 모두 쏟아부어 박물관을 지었다.

아들은 실내 인테리어와 유물 전시, 학예 업무를 맡았다. 기가막힌 조합이다. 그런데 의외로 두 사람은 대화를 잘 하지 않는단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걸까. 어쨌든 부자는 2006년 건물도 유물도 독특하고 아름다운 아프리카 박물관에서 나란히 앉아 일하게 됐다.

   
▲ 사진작가 김중만이 촬영한 아프리카 사진이 박물관 벽면에 전시돼 있다.

■ 아프리카


한 부관장은 "10년전에 비해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의 관람수준은 성숙했지만 타문화에 대한 포용력은 많이 부족하다"며 "제3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커졌어도 인종차별의식은 여전히 강하다"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꼭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고,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는 식인풍속에 관한 학설이 생기기도 했는데, 전쟁에서 적을 겁주기 위해 인육을 먹는 경우는 있었어도 배를 채우기위해 인간을 먹는 문화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흥미위주로 왜곡된 사례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어릴적부터 아프리카의 문화자원을 자연스레 접하며 성장한 탓도 있겠지만 여러차례 방문하며 직접 보고 느낀 그는 아프리카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를 '인류가 가진 마지막 희망의 땅'이라고 여기는 한 부관장은 "자원의 보고로서 경제적 가치도 있지만 문화적 희망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며 "아프리카의 역사와 자연, 언어를 연구하면 다윈의 고리가 풀리고 통합언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역시 외계어처럼 느껴졌지만 "내 세대에 아프리카 박물관이 없어지면 이제 우리나라에 아프리카 박물관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아프리카는 국가나 대륙의 개념을 넘어선 특별한 세계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것을 입증하듯, 그는 살림하기 빠듯한 월급을 받는 부관장 신세임에도 박물관 수익의 일부를 떼어 아프리카 후원에 쓰고있다. 아프리카에서 직접 골라서 사온 물건을 파는 아트숍 수입 중 일부도 꾸준히 모아 아프리카에 결핵병동을 세웠고, 학교도 건설중이다. 희망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 겸손이 아스라이 스며있다.

   

■ 제주도


제주도에는 80여개의 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 1등 관광지 답게 박물관 수도 많고 관람객도 많다. 박물관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니 시너지효과도 톡톡하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존재하듯, 제주도에는 박물관을 둘러싼 문제들도 적지않다.

제주도박물관협회 이사직을 맡고 있는 한 부관장은 "같은 테마의 박물관이 11개까지 생기기도 했다"며 "박물관 난립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아류 박물관을 지어 관광객의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비즈니스 윤리에도 벗어나고 관광자원의 일부인 박물관의 질적 하락을 초래하고 있다"며 "협회와 도의 자정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한 부관장은 급히 1층 아트숍으로 돌아갔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그의 아내와 아들 한홍승주(4)군이 박물관에 왔다. 한 부관장과 똑같이 생긴 어린 아들이 그가 그랬던 것처럼 아프리카의 유물을 보며 자라고 있다. 그를 보니 희망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포동 1833/064-738-6565

글┃민정주기자

사진┃김종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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