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는 DMZ·15]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베를린과 포츠담

끊임없는 자기반성의 공간으로 환생

김종화 기자

발행일 2012-11-14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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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려는 듯 독일인들은 베를린 중심가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건립해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의 상징이 됐다. 하나의 도시를 2개의 각기 다른 정치체제를 가진 국가가 수도 또는 중심도시로 사용한 사례는 독일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베를린을 동·서로 나눈 장벽은 냉전시대 분단으로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의 한을 상징하기도 한다.

2012년의 베를린은 유럽의 대도시로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 보면 전쟁으로 인한 고통, 분단이 가져다 준 아픔을 잊지 않으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과 달리 독일인들은 여러 가지 전쟁 유적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2711개의 콘크리트 숲' 지하엔 유대인 학살 생생한 영상·자료 전시
도심곳곳 장벽의 흔적… 찰리 검문소엔 국경 탈출 슬픈 이야기 남아
체칠리엔 궁전곁 '글리에니커 다리' 냉전시대 스파이 교환장소 이용

# 유대인 홀로코스트 기념관

베를린에 도착해서 첫 번째로 발길을 옮긴 곳은 베를린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다. 한국의 독일 안내책자를 통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독일의 상징과 같은 브란덴부르크문을 보기 위해 가는 방문객들은 한번쯤 들르게 된다.

   
▲ 브란덴부르크문은 냉전시대 동·서 베를린을 이어주는 공식적인 공간이었다.

브란덴부르크문 곁에 있기 때문이다. 브란덴부르크문은 분단 당시 공식적으로 동·서독 베를린을 오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베를린 제국의회 의사당에서도 가까운 곳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2만여㎡에 이르는 평평한 부지 위에 자리하고 있다.

2천711개의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콘크리트 기둥들이 콘크리트 숲을 이루고 있는 홀로코스트 기념관 지하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의 학살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지하 전시관은 한 번에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시간대 별로 일정 인원이 감상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이 곳에서는 당시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가는 모습과 생활, 학살 장소 등 당시의 모습을 영상물과 사진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 분단의 상징 베를린 장벽과 찰리 검문소

베를린의 분단은 독일 전역을 연합군 4개국(미국·소련·영국·프랑스)이 분할 점령하면서 시작됐다. 포츠담 회담 이후 4개국이 베를린도 분할 점거하게 됐고 이후 4개국 외무장관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 측의 의견이 대립해 충돌함으로써 1947년 소련 측에서 당시 점령하고 있던 지역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며 분단되게 됐다. 독일이 통일된 1987년까지 40여㎞에 이르는 길고도 두꺼운 콘크리트 담장이 동서독을 갈라놓았다.

   
▲ 포츠담 체칠리엔 궁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 문제를 다룬 포츠담회담이 열린 장소다.

통일이 된 현재 베를린 도심에서는 당시 베를린 장벽의 흔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독일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정권 비밀경찰기관 건물터 앞에 장벽을 보존하고, 야외 전시관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야외 전시관에는 전쟁 직후의 폐허가 된 베를린의 모습과 베를린 장벽의 변화, 동독을 탈출하는 독일인들의 모습, 베를린 장벽의 붕괴 모습을 현재 남아 있는 베를린 장벽을 따라 전시하고 있다. 또 베를린 장벽 곁에 위치한 전시관에서는 당시 사진과 신문자료로 히틀러 정권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찰리 검문소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던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찰리 검문소 곁에 있는 찰리박물관에서는 독일이 분단될 때부터 서독으로 탈출하는 사람들과 베를린 장벽 붕괴까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제2차 대전의 종전을 알린 포츠담

포츠담은 독일의 16개 주 중의 하나인 브란덴부르크의 주도다.

   
▲ 포츠담 글리에니커 다리는 냉전시대 다양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프로이센 왕가의 거주지로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성 및 공원들이 많다. 1990년대에 유네스코에 의해 독일에서 가장 많은 보호되어야 할 문화유산을 가진 도시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포츠담의 여러 문화유산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체칠리엔 궁전이다.

독일의 마지막 황태자 빌헬름 프로이센(Wilhelm von Preussen)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한 체칠리엔 궁전은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포츠담 회의가 있었던 장소로 유명하다.

포츠담 시 또한 베를린 장벽을 통해 다시 동·서로 나눠지게 됐다.

체칠리엔 궁전 곁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된 글리에니커 다리가 있다. 포츠담 회담을 위해 체칠리엔 궁전으로 향했던 연합군 4개국 대표가 지나기도 해 '통합의 다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49년부터 통일 전까지는 동맹국의 군인 및 정치가들만 다닐 수 있었지만 통일된 이후 모두에게 공개됐다.

이 곳은 냉전시대 각국 스파이들의 정보교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 다리의 냉전시대 다양한 사연, 그리고 주변 지역 경관이 아름다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글·사진┃김종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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