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봉화 청량산(870m)

20여년전 산객 반기던 소박한 모습 '새록새록'

송수복 기자

발행일 2012-11-16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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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지: 경북 봉화 청량산(870m)

■ 산행일시: 2012년 11월 10일(토)

24살 배낭여행때 묵었던 청량사
텐트에 맺히던 서리·햇살 아련

암봉 잇는 철제다리 보며 씁쓸

#청량산… 그 아련한 추억

1993년 겨울 어느날, 24살의 한 청년이 봉화에서 마지막 버스를 타고 청량산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을 훌쩍 넘긴 밤이었다.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달린 후 종점에 이르러서야 가로등 불빛조차 희미한 길가에 내려섰다. 머리와 어깨로 쏟아지는 눈을 맞아가며 외로이 길을 찾아간다. 낙동강을 건너는 다리를 따르자 이내 흙길이 나온다.

이미 눈에 덮인 뒤인지라 혼자만의 발자국을 남기며 길을 걷는다. 길 옆으로 담배농사를 지었던 잔해가 보이고 아주 가끔 나타나는 연노랑 빛 백열등 하나가 길을 비추고 있다. 여전히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와 마주할 뿐 어느 누구 하나 만나지 못한 길이다. 한참을 걸어 올랐을 즈음 익숙한 산행 안내판 하나가 눈길을 잡아끈다.

   
▲ 자란봉~선학봉 잇는 하늘다리.

청량사 방향으로 향하는 가파른 비탈길을 헤드랜턴으로 비추어 보곤 다시 큰길을 따라 걸었다. 이번엔 선학정이라는 정자가 나타난다. 이 또한 관심의 대상이 아니어서 다시 길을 따르자 변변치 않은 집터 하나가 나타났다. 녹이 슨 양철지붕 아래로 덧댄 나무판자도 낡아버린 집이 덩그러니 길가는 산객(山客)을 맞이하는 듯하여 처마 밑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산비탈로 안내하는 작은 팻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더니 신경조직과 세포조직이 일제히 반사적으로 산길로 이끈다. 약간의 쉼을 뒤로 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자 오르막이 이어지더니 완만한 경사길이 산비탈을 끼고 돈다.

어렵지 않게 절집 앞마당에 이르자 분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탑 하나가 마당 끝에 서 있고 이어 알량한 요사채 하나와 사람 하나 겨우 들어설만한 법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고즈넉했던 산사(山寺)

불꺼진지 오래인 법당이나 요사채에선 이렇다할 인기척도 없다. 소복이 쌓여가는 눈을 밟아가며 절집 앞마당을 제 집 돌아다니듯 다니다 졸졸 거리는 물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유일한 소음이다. 무슨 배짱에서였을까. 배낭을 대웅전 앞마당에 내려놓고 텐트를 쳤다.

샘에서 길어온 물로 밥을 지어먹곤 침낭에 들어가선 꼼짝도 하지 않은채 아래윗니를 부딪혀 가며 새벽을 맞았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소리도 이보다 크진 않았으리라. 잠은 선잠이었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묘한 환상속에서 헤매다가도 고통스런 추위가 다시금 현실로 이끌었다.

   
▲ 청량사 입구.

그러기를 몇 번 반복했을까. 텐트를 누군가가 두들기며 묻는다. "계세요? 안에 누구 계세요?" 간신히 몸을 일으켜 텐트지퍼를 내리자 젊은 스님 한 분이 서있다. "여기서 주무시면 큰일 납니다. 저 방에서 주무시죠…." "아닙니다. 이짓거리가 좋아서 떠도는 거라 괜찮습니다.

스님께선 염려마시고 들어가 주무세요.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치우고 떠나겠습니다." "........" 말없이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고 섰던 스님도 이내 발걸음을 돌린다. 설득이 필요없다고 판단했으리라. 어둠은 그렇게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만만치 않은 추위에 거센 바람까지 동반하여 밤새 괴롭혀댔다.

그러나 버텨내면 그만이었다. 괴롭거나 힘이 들어도 버텨내면 그만일뿐 이라고 자위하며 참아낸다. 어김없이 밝아오는 아침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몽롱한 정신상태로 부은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올리고 신발을 찾는다. 눈 쌓인 바깥 구경을 나설 요량으로 등산화를 신어보지만 꽝꽝 언 등산화는 나의 의지를 꺾어 놓고야 말았다.

하는 수 없이 텐트지퍼만 내린채 눈 쌓인 탑만 바라보고 앉았다. 맑게 갠 하늘 아래로 반짝이는 은비늘이 가득한 탑이 눈을 부시게 한다. 그러자 갑자기 분주해졌다. 햇살이 머리위로 들어오기 전에 떠나기 위함이었다.

단단히 언 등산화에 억지로 밀어넣은 발이 아파오는 것보다 절집 앞마당에서 너무나도 오래 머물렀다는 미안함이 앞서 밀려오기에 서둘러 배낭을 꾸리다 보니 텐트 안쪽으로 맺힌 서리도 그대로 배낭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인사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산길을 따라 오르는 것으로 청량사와의 첫 만남을 정리하고 청량산 산행을 시작하였다.

   

#낙동강 굽어보는 천하절경 청량산


청량산(淸凉山)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위치하고 있다. 예로부터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하여 소금강(小金剛)으로도 불리던 곳이다.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을 세울 때 현재의 위치와 이곳 중에서 정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시간을 망설이게 하였다 하니 청량산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매료되어 있었는지 짐작해 볼 만하다.

또한 청량산가(淸凉山歌)에서 "청량산 육육봉(淸凉山 六六峰)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百鷗), 백구(百鷗)야 훤사(喧辭)하랴 못믿을손 도화(桃花)로다. 도화(桃花)야 뜨지마라 어주자(魚舟子) 알까 하노라"하였다. 하지만 정작 그는 청량산에 거할 수가 없었다.

바라보기엔 좋은 산이지만 나이들어 살기엔 산세가 가파르고 물이 부족한 까닭을 들었다. 절벽과 가파른 길은 쉽지 않은 산임을 말해주고 계곡이 있으나 수량이 얼마 안되니 그리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와 최치원이 수도했다는 '풍혈대(風穴臺)'가 있으니 산으로서의 매력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가 아니었나 싶다.

또한 청량산은 12개 암봉(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탁립봉, 금탑봉, 축융봉)과 청량산 12대(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청량산 8굴(김생굴,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한생굴) 및 4우물(총명수, 청량약수, 감로수, 김생폭)이 있다.

그러나 2008년 5월 10일 총공사비 21억원을 투입하여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해발 800m, 길이 90m, 폭 1.2m의 하늘다리가 명물로 변해버린 현실은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자연은 이미 사람들에게서 관심밖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누가 더 크고 멋진 구조물을 산에 짓는가만 남았다.

20년 만에 찾은 청량산엔 산세와 어울리지 않게 커져버린 청량사와 흉물에 가까운 하늘다리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어느 산에 큰 구조물이 얼마나 많이 들어서는가는 시간문제로 남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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