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는 DMZ·16]분단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드레스덴과 플라우엔

파괴된 도시 일으키는 힘… 복구, 그리고 뉘우침

김종화 기자

발행일 2012-11-21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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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으로 파괴된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은 현재도 복원 공사를 계속 하고 있다.

베를린을 출발해 나치당의 수도로 이용했던 뉘른베르크로 향했다. 베를린에서 뉘른베르크까지는 약 480㎞가량 떨어져 있어 중간에 2개 도시를 거쳐서 가기로 했다. 거쳐 갈 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도심 주요 시설이 파괴됐던 드레스덴과 구동독 도시 중 가장 먼저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됐던 플라우엔을 선택했다.

특히 플라우엔에서 1시간여 떨어져 있는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을 살펴보기로 했다.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이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휴전선이 마을을 가로질러 미군들에 의해 '작은 베를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후 잿더미된 츠빙거궁전 아직도 공사중
정전후 시민 수만명 자발적 참여·추모 기념비도 건립
군수물자 생산하던 플라우엔, 평화적 정권교체 이끌어


   
▲ 전쟁으로 인해 드레스덴 지역은 대부분 파괴 됐었다.

#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드레스덴

드레스덴은 오래된 옛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다.

드레스덴은 한국인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도시이지만 독일인들이 옛 문화유적을 감상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도시 중 하나다. 이곳에는 화려한 츠빙거 궁전, 가톨릭 궁정교회, 구도심 중심에 위치한 광장 주변 바로크 양식의 수많은 건축물들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는다. 드레스덴에는 30여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어 예술의 보고라고도 불린다.

이런 아름다운 도시에도 전쟁의 아픔은 남아 있었다.

드레스덴을 찾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방문하는 츠빙거 궁전은 전쟁 당시 대부분이 파괴됐던 곳이다. 츠빙거 궁전은 작센 지역과 폴란드를 함께 다스렸던 아우구스트 왕이 서기 1710년부터 1732년까지 건설한 궁전이다. 현재까지도 츠빙거 궁전은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 드레스덴 성모교회.성모교회도 전쟁 당시 파괴됐었지만 지금은 복원이 이뤄졌다.

지난 6월 츠빙거 궁전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드레스덴은 인구 64만명 규모의 독일에서 7번째로 큰 도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연합군은 5번에 걸쳐 대규모 공중 폭격을 했고 현재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드레스덴 구시가지 대부분이 파괴됐다. 당시 사망자만도 2만5천여명에 1천200만㎡에 이르는 지역이 잿더미가 됐다고 한다.

연합군이 이처럼 대규모 공습을 감행한 것은 드레스덴이 독일 제국 군인을 양성하는 곳이기도 했고 특히 1935년 공군기지가 세워지며 공군양성학교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종료된 후 드레스덴 시민 수만명이 자발적으로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잔해를 치우는 작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1950년대 초반에는 주거지와 도시의 대표적인 건물들의 복원이 이뤄졌고, 이와 함께 추모 및 기념비들도 세워졌다.

츠빙거 궁전은 1964년 복원이 마무리됐고 1985년에는 드레스덴의 대표적인 오페라극장인 젬퍼오퍼가 다시 건축된다. 하지만 구동독 지역이 그렇듯 드레스덴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아직도 많은 곳이 복원 되지 못하고 있다.

   
▲ 뫼들라로이트에는 국경박물관에는 분단 당시 군용 차량들이 전시 되고 있다.

# 플라우엔과 뫼들라로이트

인구 6만여명의 작은 도시인 플라우엔은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끈 도시로 알려져 있다. 도시 전체적인 전경이 숲과 함께 있어 아름다운 휴양지와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플라우엔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연합군의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분단 당시에는 구동독 정권하에서 섬유공업이 발전했지만 전쟁의 피해에서 완전히 복구되지 못했다. 플라우엔이 독일인에게 각인된 것은 1989년 10월 7일 동독 정부에 불만을 가졌던 시민들이 평화시위를 하면서부터다.

이 평화시위는 주변 도시로까지 펴졌고 23주 동안 매주 토요일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정권 교체 기도모임으로 이어졌다. 플라우엔은 통일 후에는 구동독 지역 도시 중 가장 먼저 자본주의 문화를 받아들인 곳이다.

플라우엔에서 1시간여 거리에 떨어져 있는 뫼들라로이트는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뫼들라로이트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을 중심으로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져 미군에 의해 작은 베를린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뫼들라로이트는 1989년 12월 9일 처음으로 국경이 열렸고 1990년 6월17일에 비로소 장벽들이 부분적으로 철거됐다. 장벽 철거와 동시에 'Deutsch-Deutsches Museum Moedlareuth'(독일의 독일 박물관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이 세워졌다.

이곳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에서는 플라우엔과 그 인근 지역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해 모습과 이 지역 일대에서 생산한 군수물자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 야외 전시실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 곁에 들어서 있는 휴전선 일대가 그대로 남아 있어 분단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글·사진┃김종화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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