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죽는다는 것

중환자실 면회시간 기다리며 보낸 병원 '캠핑'
한국의 모든 장례의식 형식적이라 생각한 적도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 많은 것 나눌수 있어

안톤 숄츠

발행일 2012-12-21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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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톤 숄츠 코리아컨설트 대표
쉽게 얘기하기 어려운 테마인 죽음과 내가 겪은 한국의 장례문화에 대해서 칼럼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달이었다. 서울에서 있었던 장인어른의 장례식을 겪고서야 비로소 한국의 장례 의식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장례식에 가본 적이 꽤 있어서 동서양의 장례문화가 당연히 다르다고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지 2주만에 독일에 계신 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보니 예전에 죽음과 장례 의식에 대해 막연하게 느꼈던 것과는 다른 많은 생각을 갖게 됐다.

한국에 오랫동안 살면서 사찰에서의 수도생활(한국생활 초반)이나 10여 년전에 있었던 향교에서의 전통 혼례 경험 등 외국인으로서는 운좋게도 한국 고유한 의례들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해봤다.

그런 내가 이제까지 경험한 장례식이란 그저 조문객으로서 부의금을 담은 봉투를 부의함에 넣고 쉽지 않은 인사말을 하고 오는 일이었다. 아내의 아버지의 죽음은 한국의 삶을 제대로 보는 계기였을 뿐만 아니라 의례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마음가짐에 대해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장인어른이 계획에 없었던 심혈관 수술을 받은 뒤 모든 가족의 생활은 바뀌었다.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했고, 위급한 상황이 되자 우리 모두는 황급히 병원으로 불려갔다.

중환자실 앞에는 환자들의 가족을 위해 마련한 자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작은 캠프와도 같았다. 그저 환자의 호전만을 기다리며 개인의 삶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보호자 가족들의 모습을 처음 목격한 나로서는 참으로 놀라웠다.

독일에서는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고 면회시간 외에는 중환자실 근처에는 있을 수 조차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족 중에 누군가를 중환자실에 두고 있다면 병실이 어디든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당연했다. 어느 저녁 우리 모두는 중환자실에 불려 들어갔다. 심장 박동이 멈추면서 어떻게 한 사람의 생이 사라져 가는지를 보게 됐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의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한 뒤로는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진행됐다. 죽은 육신은 장례식장으로 곧바로 옮겨졌고 30분 후에는 우리 모두 장례식장 사무실에 앉아 관과 조화, 조문객을 위한 음식 등 장례절차에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 것도 모르는 내 아들은 주변에서 '강남 스타일'을 부르며 펄쩍펄쩍 뛰놀다가 할아버지가 어디 계시냐고 물어왔다. 당혹스럽고 황망스런 순간들.

다음날 아침 우리 모두는 장례식장 안에 있었다. 곧 가족 친지와 조문객들이 도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한 조문객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멀리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친구들도 찾아왔고, 베이징에 거주하는 아내의 외숙부께서도 먼 길을 마다않고 바로 오셨다. 이제껏 한국의 모든 장례 의식이 다소 경직되고 형식적이진 않나란 생각이었다.

우리의 경우도 계산적으로 대하는 장례식장의 일부 업소의 태도가 내심 못마땅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장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참으로 아름다운 장례식이란 생각을 않을 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의 정성스런 문상으로 더욱 큰 감동을 받았다. 결혼 이후 8년만에 다시 보는 친지들이 정말 반가웠다. 먼 곳에서 이른 새벽 시간에까지 와서 조의를 표하는 것을 보며 내 스스로가 가족과 한국 사회의 일원임이 느껴지고 자랑스럽게까지 여겨졌다.

중환자실 앞에서 면회시간을 기다리며 보낸 병원 '캠핑'은 내 한국가족과 함께 떨어지지 않고 보낸 시간 중에 가장 길었으며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었다. 마침내 장인어른의 시신이 화장터로 들어가자 장모님께서 참아오던 울음을 터뜨렸다. 장모님을 안고 모든 것이 좋아질거라 괜찮아질거라 말씀드렸다. 그 순간은 서로 다른 문화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한 가족으로서 확고히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며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아내는 내 아버지의 장례식 부고문과 초대장을 쓰는 내 어머니 옆에서 마치 딸처럼 돕고 있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겠지만 독일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그 캄캄한 순간,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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