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60주년 특별기획]침묵의 전장, DMZ를 가다

살을 에는듯한 추위, 장병들의 60년 눈초리는 변함없다

황성규 기자

발행일 2013-01-01 제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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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천군 중서부전선 DMZ(비무장지대) 철책선에서 육군 무적태풍부대 장병들이 휴전선 야간 경계 작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일 연천군 중면 중사리에 위치한 태풍전망대. 이곳으로부터 휴전선은 800m, 북한군 초소는 고작 1천600m 떨어져 있다. 태풍전망대는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라는 점 때문에 일반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철책 너머 어렴풋이 보이는 북쪽지역의 마을 전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이한 상념에 사로잡히게 했고,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삭막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평화를 염원하며 전망대에 나란히 꽂혀 있는 태극기와 UN기는 이곳 분위기와 맞물려 묘한 감운을 전해 왔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중단된 지 올해로 60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60'이라는 수치 외에 아무 것도 달라진 건 없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수만명의 군인들이 대치중이며, 긴장된 분위기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중부전선 최전방 태풍부대
군인들 긴장속에 초소경계
야간근무 투입될 장병들
실탄과 수류탄 건네받아

어둠이 오자 무거운 침묵
조명등 불밝힌 철책선따라
밤이 새도록 북녘 땅 주시
차가운 분단 현실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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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 28사단 장병들이 휴전선 야간 경계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실탄을 받고 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 군인들이 서로 총구를 맞대고 있는 이곳 28사단 태풍부대는 중부전선 최전방 부대답게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영하 15도의 추운 날씨에 매서운 칼바람까지 몰아쳐 체감온도는 족히 영하 30도에 달했고, 철책 주변을 따라 장병들은 완전무장상태로 초소 경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어둠은 금세 찾아왔다. 해가 지고 이내 어둑어둑해지자 야간 경계근무에 투입될 장병들이 교대근무 준비를 하기위해 바삐 움직였다. 근무에 투입될 장병들의 손에는 실탄과 수류탄이 쥐어졌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실제 상황을 떠올려 보기라도 하듯, 실탄을 건네받은 장병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묻어났다.

28사단에서 근무하는 오동훈(22) 일병은 "북측에서 언제 도발할지 몰라 1분1초도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며 "방심하는 순간 적이 넘어 온다는 생각으로 대한민국 영토를 굳건히 지켜낼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둠이 찾아오자 이곳 일대는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장병들은 어둠을 헤치며 경계 초소로 투입됐고, 본격적인 야간 경계 근무에 돌입했다. 시야를 가리는 칠흑같은 어둠이 깔리자 숨막힐 듯한 긴장감은 극도로 고조됐다. 초소 주변은 적막하다 못해 싸늘해져 숨소리마저 거세게 들렸다. 혹한의 날씨는 더욱 매서워졌고 산등성이를 휘감으며 불어 닥치는 세찬 골바람에 뼛속까지 아려올 정도로 추위의 강도는 높아졌다.

하지만 장병들은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한 손에는 총을 든 채 전방을 주시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얼어붙은 철책을 만지며 이상 유무를 살폈다. 철책선 조명등이 일제히 불을 밝힌 중부전선을 따라 대한민국 국군 장병들의 경계 근무는 그렇게 밤이 새도록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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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천군 중서부전선 최전방에서 육군 28사단 초병들이 철책선을 살펴보고 있다.

기나긴 적막을 깨고 이곳에도 아침이 찾아왔다. 능선 사이로 유유히 떠오른 아침해는 밤새 꽁꽁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듯 했다. 남측과 북측에 똑같이 비친 아침 햇살에 어느새 이곳 일대의 적막함은 고요로 바뀌어갔다.

하늘에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철책 너머 비무장지대에선 고라니, 너구리 등의 울음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눈을 감고 있으면 자연이 살아숨쉬는 숲속 한 가운데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분위기는 평온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현실은 여전히 차가웠다. 눈 앞에 펼쳐진 채 굽이굽이 흐르는 임진강은 바라볼 수밖에 없고,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북녘 땅을 향해선 총을 겨눌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비극의 역사는 수십년 간 진전 없이 반복됐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역사는 기약 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동이 트고 근무자들은 바뀌었지만 장병들의 경계근무는 한치의 흔들림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밤샘 근무를 마친 뒤 날이 훤히 밝아서야 눈을 붙일 수 있게 된 여다감(21) 이병은 분단의 현실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여기에 근무해보니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는지, 대한민국 남성들이 왜 군대에 가야하는지 비로소 깨닫게 됐다"며 "적의 도발에 대비한 긴장감 이상으로, 살을 에는듯한 추위와의 싸움도 힘들지만 우리 부모와 형제의 안전이 내 손에 달려있다는 생각으로 빈틈 없이 근무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 비무장지대엔 유독 안개가 자욱했다. 장병들은 더욱 숨을 죽인 채 북녘땅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지난 60년간 그랬듯 오늘 밤에도, 내일 아침에도 국토수호를 위한 장병들의 매서운 눈초리는 변함 없이 전방을 향해 있을 것이다. 한반도에 있어서 전쟁은 잠시 멈췄을 뿐 결코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황성규기자
사진/김종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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