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신춘문예

[2013 경인일보 신춘문예]소설부문 당선소감/손솔지

"가난한 문장 거닐더라도 소설 마주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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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어린 신처럼 광폭하고 편협합니다. 잠든 이의 어깨에는 이슬비처럼 포근히 내리면서, 깨어있는 이의 어깨에는 세상 모든 고민을 끌어다 놓습니다.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새하얀 모니터 화면 앞에 앉아 야릇한 박자로 점멸하는 커서를 보고 있자면, 한순간 나는 바보천치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몇 줄의 문장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승용차 사이드미러가 되었다가 옷가게의 기다란 오목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급기야 참을 수 없는 답답함에 모든 글자를 지워버리게 만듭니다.

참 이상하죠. 소설을 쓰지 않으면 급체한 듯 가슴속이 답답하지만, 막상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뾰족한 가시 하나가 가슴 끝에 꽂힌 것처럼 따끔하기까지 하니 그 답답증은 더욱 커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계속 쓰는 이유는 그 씁쓸함 속에 담긴 한 방울을 쾌락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넣지 않고 러브레터를 쓰는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들 말합니다. 사랑을 고백하기 바로 1초 전의 순간이 세상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것처럼, 나는 새하얀 화면을 마주한 그 순간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설을 흠모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짝사랑의 고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이가 써놓은 대작에 짜릿하게 전율하고 뜨겁게 질투하며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나면, 어김없이 내게도 구애의 순간이 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과학적 결과처럼 내 마음은 철없이 어리고 유치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창피를 모릅니다. 미약(媚藥) 같은 새벽의 마법이 풀리고 또렷한 아침이 오면 유리 구두를 잃은 맨발로 가난한 문장 사이를 비척비척 거닐게 될지라도, 나는 결국 또 소설 앞에 마주 앉게 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심사위원님들의 눈으로, 교수님의 눈으로, 동기의 눈으로, 엄마의 눈으로 내 소설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편식하는 제 숟갈 위에 생경한 반찬을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맛있게 먹고 제대로 소화하겠습니다. 튼튼한 소설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1989년 수원 출생. 현 서울거주

수원여자고등학교 졸업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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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주기자

ahnyoun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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