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위 위원장 김상민 의원이 그리는 정치 인생

풀뿌리 운동 활발히 벌여 건강한 사회 건설 이바지

정의종·송수은 기자

발행일 2013-01-09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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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위 위원장 김상민 의원이 "수원은 나의 삶이자, 나의 모든 과정을 있게 한 근원처"라며 "나의 모태같은 곳"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만 39세, 초선 2년차인 김상민 의원은 비례대표에서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위 위원장까지 한달음에 오른 우파 사회운동가 출신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얕게 팬 여드름 자국이 아직 가시지 않아 앳된 모습 그대로지만 강렬한 눈빛에선 사회운동에 청춘을 던진 저력이 엿보인다.

대학시절 거대 운동권 조직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에 맞서 아주대학교 최초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으로 당찬 카리스마를 보였고, 사회에 나와서도 찜질방과 고시원을 전전하며 후배와 제자들의 선봉에서 '청년아이콘'을 이어왔다. 그러면서도 결혼안하기, 돈 안모으기, 정부와 재벌에 의존 안하기로 우파운동을 하며 처절한 삶을 살아왔다. 이런 삶은 새누리당의 '감동을 준 인물' 찾기에 선정되면서 제도정치권으로 변신, '박근혜키즈'로 대선 공신대열에까지 이름을 올렸다.

수원이 고향인 그와 지난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1시간10분에 걸쳐 수원에서 성장한 배경과 정치에 입문하기까지 그의 현재와 과거, 미래를 들어봤다.

#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에서 우파 운동가로 변신

대통령직 인수위 전체회의 첫날인 이날 오후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 의원은 청년대표로 비례대표에 입성한 이미지답게 당당했다. 결혼도 하지 않아 아직 청년티가 묻어 있었지만 자신의 정치적 가치와 철학을 얘기할 때는 독수리 눈매보다 매서운 사회운동가의 포스를 느끼게 할 정도.

수원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모두 고향에서 다닌 그는 '수원이 자신의 모태'라고 할 정도로 애향심이 남달랐다. 거침도 없었다.

그가 정치권에 들어오게 된 배경은 아주대에서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을 시작해 우파 사회운동을 이어온 게 결정적 원인이 됐다.

비운동권 학생회장서 정계 입문 계기는?
시대변화 맞춰 新학생운동 주도
사회운동가 시절 박 당선인 만나
비례대표후보 공천돼 국회 등원


선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보통 사람과는 조금은 다른 통찰력과 예지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현장과 현실을 중시하면서도 좀 앞선 세계, 즉 미래를 개척해 나가려는 '돈키호테적' 기질도 엿보였고, 보통사람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느낄 수 있었다.

92학번인 그는 김영삼 정부 출범 즈음에 세계화 바람을 타고 대학에 입학한다.

그는 "시대와 문화가 변하기 시작하고, 글로벌 시대로 소용돌이 치고 있는데 1980년대 이데올로기 중심의 학생회를 주도하는 운동권에 대한 불만세력이 생겨났다"며 "지금도 그때도 나는 세상이 변했다고 외쳐왔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데올로기 중심의 한총련에 맞서 문화와 복지 중심의 학생회를 주창하며 새로운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시대와 문화의 변화처럼 독자적인 흐름이 생겨 자연스레 '아주니즘'이라는 새로운 학생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풀뿌리 가치운동… 박근혜 당선인과 만남이 정계로 이끌어

학생운동을 계기로 그는 언제나 새로운 독립과 자립을 외쳐왔다. 사회운동가로 활약하면서 자신의 행보에 대한 자부심도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그는 "오랜기간 2030 젊은층 모임과 자원봉사단체, 문화운동을 전개하면서 광의적 의미의 정치를 해 왔다"며 "현실 정치에 들어가 현실 구조를 바꾸기보다는 풀뿌리운동과 세대운동 같은 풀뿌리 운동을 확대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런 그가 정치권에 입문하게 된 것은 국내 최대의 NGO 대학생 자원봉사단 V원정대 대표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지난 2009년 창립한 이 단체는 전국 200개 대학과 2만5천명의 회원이 가입, 가수 김장훈과 독도에서 봉사 콘서트를 개최한 데 이어 현충일엔 연평도에서 '연평아리랑 콘서트'를 열어 자원봉사활동을 이어나갔다. 전국 33개 섬을 찾아다니며 환경청소도 했고, 헌혈증진 캠페인도 전국적으로 주도했다.

때마침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이 4·11 총선을 앞두고 감동의 인물 찾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박근혜 당선인과 만남이 이뤄졌고, 이후 청년 몫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돼 19대 국회에 등원하게 됐다.

당시 박 당선인은 김 의원이 주도한 NGO 단체에 깜짝 방문해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 기성그룹들이 젊은이들의 피로를 풀어주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했다. 소통하고 싶다. 이런 일을 오랜 시간 해 줘서 고맙다"고 말해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 의원도 "이때부터 박 당선인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 8개월 동안 초선 비례대표에서 인수위 청년 특위 위원장까지

4·11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입문한 그는 대선을 거치면서 인수위 특위 위원장까지 오르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김 의원은 주로 대선의 화두였던 반값 등록금과 젊은층과 소통 강화에 매진했고, 전국을 돌며 빨간운동화 유세단을 가동하는 등 박근혜 만들기에 온 몸을 던졌다.

박 당선인의 공약인 반값 등록금 실현과 K무브, 스펙초월시스템 구축 등 다양한 공약 아이디어를 조언하기도 했다.

   

# 수원은 나의 모태이자 삶의 전부

경기지역 정가에서는 수원 출신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지역사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수원에서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다닐 정도로 향토색이 짙은 인물로 보였다.

그는 "수원은 나의 삶이자, 나의 모든 과정을 있게 한 근원처"라며 "나의 모태같은 곳"이라고 강조한다. 세류동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모두 수원에서 다녔고, 친인척 모두 수원과 화성 인근에 오래 거주하면서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더 커진다는 표현도 서슴없이 했다.

평범한 성장보다 우파 사회운동을 하면서 다져진 그의 인생역경은 차세대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사회운동을 하면서 세 가지 약속으로 자신을 단련시키고 연마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앞에서 언급된 재벌과 정부에 의존 안하기, 결혼안하기, 돈 벌지 않기가 그 모태다. 그런 실천을 근 10여년간 지켜나가자, 우파 조직에서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족개념의 공동운명체가 결성되더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주로 국내 최대 NGO 대학생 자원봉사단 V원정대와 포스트 386 청년유권자 운동 '커밍아웃 2035'(현 2030 정책실현 네트워크 대변인 1호)가 그가 결성한 조직이다.

# 제2의 정치 행보 주목

김 의원은 인수위 활동이 끝나면 본업인 정치권에 돌아와 다시 풀뿌리 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한다.

주요 활동 내용과 향후 계획은?
반값 등록금 실현 등 공약 조언
인수위 활동 후 본업 정치 매진
기존의원들 의식전환 앞장설터


의원들의 인식을 바꾸는 운동, 자신이 강조하는 풀뿌리 운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더 많은 의원들과 건강한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다져 나가면서 조직도 확대하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사회운동가가 아닌 현실 정치인으로 변신했으니, 이제 가정도 꾸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최근 화성시에 동생과 부모님을 모실 집으로 주소를 이전했다.

우파 사회운동가에서 제도 정치권에 들어온 그가 앞으로 현실 정치인으로 행보를 더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 당당하게 적응해 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 예사롭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향후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김상민 의원은…

■ 1973년 7월 14일 수원 출생

■ 수원 세류초교, 이목중, 수성고, 아주대 사학과 졸업

■ 아주대 18대 총학생회장

■ 포스트 386 청년유권자운동 '커밍아웃 2035' 공동대표

■ 국내 최대 NGO, 대학생 자원봉사단 V 원정대 대표

■ 한국대학생 리더십센터 대표

■ 2030 정책실현 네트워크 대변인 1호

■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본부 청년본부장

■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청년특위 위원장

■ 보건복지부 장관상 - V원정대 수상

/정의종·송수은기자
=정의종·송수은 기자 사진= 김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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