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인터뷰… 그]지방출신 최초로 대한변협 첫 직선 회장에 당선된 위철환 변호사

보통 사람들과 호흡하는 '보통 변호사 시대' 열겠다
   
▲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당선된 위철환 회장이 "임기 중 변호사 강제주의 시스템을 도입해 서민들이 금전적인 문제로 변호사를 구하지 못해 억울한 재판을 치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태황기자
큰무대에서 뜻을 펼쳐 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시골에서 상경한 한 소년이 있었다. 맨손으로 올라온 이 소년은 중학교 시절 어쩔 수 없이 주경야독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당시 숙식을 제공해준 신문보급소 덕분에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었던 그는 매일 새벽 4~5시에는 찬바람을 맞아가며 신문을 돌리고, 저녁엔 공부를 하며 야간고등학교에 진학, 이후 서울교대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수년간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끝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된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더 큰 뜻을 품고 변호사가 됐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어엿한 중년이 된 그는 전국의 변호사를 대표하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당선되기에 이른다. 언뜻 보면 위인전이나 아침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원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위철환 변호사다. 대한변협 선거가 끝난 직후인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그의 선거캠프를 찾아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가난한 신문배달소년 변호사 되기까지…
맨손 상경 주경야독끝 교사의 꿈 이뤘지만
변호사비 없어 패소한 제자 딱한사정 접하고
어려운 사람 돕기 위해 법조인 되기로 결심




-선거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아직은 정신이 없으신 것 같네요. 우선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 당선된 소감이 어떠신지요?

"저야 무척 기분 좋고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제가 당선됐다고 하니까 저보다도 저를 지지해준 지방의 변호사들이 너무 통쾌하다고 하시더군요. 저와 경쟁했던 분들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대검 비서실장, 로펌대표, 전·현직 서울변호사협회장이셨어요. 회장에 입후보한 네 사람 중 누가 봐도 제가 가장 열세였죠.

자타가 공인하는 KS(경기고-서울대) 출신도 아니고, 법조인으로서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도 않은 제가 말하자면 일종의 반란을 일으킨 셈인 거예요. 대한변협 역사상 지방변호사 출신이 회장직에 오른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전국에 14개 지방변호사회가 있는데, 서울변호사회는 나머지 13개 조직을 합친 것보다 회원수가 많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서울변호사회 회장이 자동으로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당선되는게 당연하죠."

-대한변협 역사상 직선제로 선거가 치러졌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제가 4년전 경기중앙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됐을 때부터 대한변협 회장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자고 추진했어요. 물론 그 전에도 그런 필요성이 가끔씩 제기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직접 나서서 추진을 하지 않았죠. 그동안 대한변협선거는 너무나 비민주적인 관선제방식이어서 지방은 선거권이 박탈된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이런 상황에서 선거를 간선이 아닌 직선제로 바꾸려면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서울변협 회장이 우선 직선제에 동의를 해야하고, 이사회 의결을 거쳐 국회법까지 통과해야하는 등 많은 난관이 있었죠. 생각해보세요. 가만히 있으면 서울변협 회장이 대한변협 회장을 승계하게 되는데 어느 누가 나서서 직선제를 추진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다행히도 제가 경기중앙변호사회 회장과 대한변협부협회장을 겸임하면서 직선제를 추진하자 당시 대한변협회장님이 제 뜻을 이해하시고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치러진 직선제 선거에서 모든 이들의 예측을 깨고 제가 대한변협회장에 당선된 겁니다."

협회장으로서의 각오가 있다면
민사사건도 금전 없이 변호혜택 받도록
'변호사 강제주의 시스템' 도입하고파


-이번 선거에서 '보통변호사'를 굉장히 강조하셨는데,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보통변호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한변협회장은 말하자면 으레 '명품변호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생각하는 보통변호사로서의 회장직은 꼭 서울 출신이 아니더라도 서울뿐 아니라 지방 변호사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서민들 곁에서 호흡하는 개인변호사들의 애환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직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새 대형 로펌들이 들어서고 많은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정말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어려운 변호사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제가 선거 홍보물에 보통변호사와 함께 '변화의 새물결'을 강조했는데, 이제는 변호사 조직도 권위의식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않은 보통 변호사들이 소신껏 성실하게 활동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살아온 이력이 좀 특이하세요. 역경과 고난도 많았고, 왜 하필이면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 뒤늦게 법대에 진학하시게 됐죠?

"어느 추운 겨울 날 새벽 한창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데, 한 가정집에 불이 켜져있고, 창문너머로 내 또래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게 보였어요. 그때 난 지금 뭐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죠.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자' 결심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매진, 꿈에 그리던 교대에 진학해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어요. 그리고 6년정도 교편을 잡았죠.

그런데 어느날 우리반 여학생이 며칠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원인을 알아봤지요. 그랬더니 그 학생의 아버지가 사업을 벌이다 큰 송사에 휘말리셨는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재판에서 패소, 사업은 완전히 망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거예요. 그 여학생의 딱한 사정을 들으면서 저는 앞으로 법공부를 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이후 교직을 포기하고 법대 편입시험에 매진, 수백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게 된 겁니다. 사실 그때 편입시험이 사법시험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웃음). 2명 뽑았는데, 수백명이 왔으니까요. 그때 저랑 같이 합격했던 동기 편입생도 지금 인천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답니다."

수원에 경기고등법원 설치 전망은
1200만 도민 항소심때 매번 서울 찾는 불편
지역 국회의원·시민 연대 숙원 성취 최선


-수원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시면서 경기고등법원 설립을 위해 다방면으로 애쓰셨습니다. 고등법원 설립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사실 경기고법 설치문제도 제가 처음으로 주창한 겁니다.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장 시절 '경기고등법원 유치 범도민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국회의원, 경기도지사, 지자체 단체장들을 만나며 경기고법 설치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서명운동과 헌법소원, 공청회 개최, 도민 여론조성까지 참 많은 일들을 해왔죠.

하지만 그때마다 도민들의 결집력 부족으로 번번이 고법 설치가 무위로 그치고 말았어요. 고법이 설치되려면 우선 국회법사위를 통과해야 하는데, 경기도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구 1천200만명이 거주하는 대한민국의 중심지역인 경기도에 고등법원 하나 없는게 말이 됩니까? 경기도보다 인구가 적은 광역단체들에도 고법이 거의 설치돼 있습니다.

경기도 사법기관의 중심인 수원만 해도 사건수가 전국 2위를 점하고 있고 인구와 산업의 유입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변한 고등법원 하나 없어 항소심을 하기 위해 매번 서울을 찾아야 하는 도민들의 경제적, 정신적 피해가 심각합니다. 앞으로 경기지역 국회의원은 물론 시민들과 연대해 도민들의 숙원을 풀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적극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대한변협 회장으로서 임기내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변호사 강제주의 시스템을 도입해보고 싶어요. 이는 형사사건 때 돈 없는 사람을 위해 국선변호사가 도와주는 것과 비슷한데, 민사합의사건 이상에는 금전에 상관없이 변호인이 도와줄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된다면, 서민들이 돈 때문에 변호사를 못구해 억울하게 재판에 지는 일은 줄어들겠죠.

그리고 청년변호사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 국가경제적으로 봤을 때도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이런 제도가 도입되려면 많은 시일이 걸리겠지만, 이것 만은 제 임기 중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보고 싶습니다. 제 뜻에 동참하는 전국의 많은 변호사들께서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위철환 변협 회장은…

■ 1958년 전남 장흥 출생

■ 1977년 중동고졸

■ 1979년 서울교대졸

■ 1984년 성균관대 법학과졸

■ 1986년 사법시험 합격(28회)

■ 1989년 사법연수원 수료, 동수원종합법무법인 변호사

■ 2009~2010년 수원지방변호사회 회장

■ 2009∼2013년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

■ 2010∼2013년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

■ 2013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현)

글=/김선회·신선미기자 사진= 하태황기자

경인일보 포토

김선회·신선미기자

ksh@kyeongin.com

김선회·신선미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