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바벨 내려놓고 제2의 삶 꿈꾸는 '로즈란' 장미란

넘치는 국민 사랑에 행복… 새 목표는 'IOC 선수위원'

신창윤·김성주 기자

발행일 2013-02-13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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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은퇴 결심 이유는?
체중 부담탓 허리·무릎 관절 쇠약
더이상 선수생활 이어갈 자신 없어
6년간의 고양시청 선수생활 접기로

향후 계획은?
박사과정 마치고 재단활동 활발히
체육인들에 도움주는 일 하고파
IOC위원 자격 요건 준비도 철저히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나를 아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
다른 많은 선수들에 관심 나눠주길
그간 부모님 희생에 보은하고 싶어


   
▲ 장미란이 지난달 29일 고양 장미란체육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15년간의 역도선수 생활을 마친 소회를 밝히고 있다.
"별명이요. 로즈란이 가장 좋은데요. 이제는 푹 쉬면서 사회활동을 펼치고 싶네요."

지난달 29일 현역에서 정들었던 고양시청 유니폼을 벗고 공식 은퇴한 '한국 여자 역도의 간판' 장미란(30). 그는 이날 고양시 덕양어울림누리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정들었던 무대를 떠나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그도 그럴 것이 장미란은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 여자 역도를 단번에 세계의 중심으로 올려놓은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장미란은 '여자헤라클레스', '철의 여인', '로즈란' 등 각종 수식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세계 역도계의 뇌리에 깊이 남은 선수였다. 은퇴식 후 장미란과 함께 고양 장미란체육관을 찾아 인터뷰를 했다.

아직 은퇴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그는 체육관으로 오면서 시종일관 굳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 해맑은 미소도 이날 따라 무척 우울해 보였고, 간간이 흘러나오는 말도 쓸쓸해 보였다. 그래도 인터뷰에 잘 응해주었다.

장미란은 은퇴 소감을 묻자 "역도를 하면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 늘 행복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응원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장미란재단을 통해 꿈나무들이 큰 꿈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7년부터 6년간 고양시청 소속으로 뛰며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07년 경기도 대표로 전국체전에서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3관왕에 올라 당시 경인일보사가 제정한 '제19회 전국체전 MVP 대상(개인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양시청에서 선수생활을 한 지 6년이 넘었는데, 경기도에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며 "이 기간동안 경기도 홍보대사와 전국체전 MVP 대상까지 많은 은혜를 입은 것 같다"고 전했다.

그간 장미란은 은퇴 이유에 대해 '신체적으로 선수생활을 더 이어나갈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정말 사실인지 다시 물어봤다. 그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국민의 뜨거운 격려와 응원을 받았다. 그런 응원에 대한 보답으로 더 좋은 기록을 내고 멋있게 은퇴하고 싶었는데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 장미란은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리면서 체중 부담이 심했고, 무릎과 허리 등 모든 관절이 쇠약해져 계속 잔병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부상을 뒤로한 채 꾸준히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왔다. "선수가 부상당하면 속상하고 이겨내기 위해 재활에 집중한다. 나는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서도 몸관리를 했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몸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를 입증하듯 장미란은 무제한급에서도 체중 조절을 잘 한 선수로 꼽혀왔다. "무리하게 체중을 올리지 않으려고 평소 음식을 잘 먹고 영양을 보충했다. 때문에 중도에 부상에 시달리더라도 잘 참고 이겨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화제를 바꿔 애칭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자 "수 많은 별명중에 '로즈란'이 가장 좋다"며 "'여자 헤라클레스'도 정들었지만 국민들이 재치있게 '로즈란'으로 별명을 지어줘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또 어떤 음식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청국장, 된장찌개, 나물류 등 전통 음식을 좋아한다. 외국에서 국제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면 항상 어머니가 이런 음식을 해주신다"면서 "나는 음식을 만들지는 못한다. 앞으로 배워 나갈 것"이라며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만약 역도 선수로 성공하지 않았다면 어떤 인물이 됐을까. 장미란은 "학교에 잘 다니고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짧게 언급했다.

선수시절 굵직굵직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수차례 해온 장미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어느 것일까. "2007년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치앙마이 세계선수권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중국 선수에게 패한 뒤 슬럼프에 잠시 빠졌지만 더 좋은 기록을 위해 착실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일까. 의외로 간단한 대답이었다.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나를 사랑해 주셨다. 은퇴를 선언한 선수에게 이렇게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너무 행복했다. 국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설명했다.

장미란은 평소 부모님에 대해서도 "역도를 시켜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선수시절 묵묵히 나를 응원해준 가족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내가 있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부모님의 은덕에 대해 내가 갚을 차례"라고 말했다.

앞으로 장미란은 '장미란재단' 활동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을 준비중이다. 또 밀렸던 용인대 박사과정도 시작해야 한다.

"재단은 혼자만의 활동이 아니라 다른 종목의 대표선수들이 유망주들과 함께 멘토와 멘티로 서로의 인연을 맺어줄 것이다. 또 어린이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것이 재단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용인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는 것이고, 나아가 스포츠 관련쪽에서 체육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 IOC 선수위원의 자격 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는 것도 나의 또다른 목표"라고 밝혔다.

끝으로 장미란은 자신을 아껴준 국민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난 행복한 사람이었다. 역도 선수로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선수생활을 이렇게 잘 마무리해서 기쁘다"며 "그동안 나에게 베풀어준 사랑을 대한민국 모든 선수들에게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미란은…

장미란은 1983년 10월9일 새벽 강원도 원주에서 장호철씨와 이현자씨의 2녀 1남 중 맏딸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체중이 5.9㎏였던 장미란은 상지여중 3학년 초까지 평범한 소녀로 자라났다. 학교 성적은 반에서 상위권을 유지했고, 피아노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역도를 시작한 때는 중학교 3학년이었던 1998년 겨울방학 무렵으로, 역도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권유로 역도계에 입문했다.

장미란은 2005년, 2006년, 2007년,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우승하면서 무려 5년 동안 세계 여자역도 최중량급을 지배했다. 여자역도의 체급이 현재처럼 굳어진 1998년 이후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와 올림픽 우승, 준우승 등의 대업을 이룬 여자 선수는 장미란 밖에 없다. 장미란은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등 출전할 수있는 모든 국제대회를 제패해 '그랜드슬램'을 이루기도 했다.

특히 전성기인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여자 최중량급의 인상·용상·합계 세계기록을 모두 보유해 적수가 없는 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이후 부상에 시달리면서 2010년부터는 신예들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무대였던 2012년 런던올림픽에선 메달을 따지 못했다.

글/신창윤·김성주기자 사진/하태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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