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3]키워드로 본 인천④ 문학(上)

신분과 처지 달라도 고전 속 인천은 솔직했다
   
▲ 백운역은 계양부사로 인천에서 13개월간 머물며 다수의 글을 남긴 이규보의 호를 따 지은 이름이다. 시간이 흘러, 그가 바라 본 계양과 부평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파란 간판에 뚜렷하게 적힌 '백운'은 '백운거사'(白雲居士)에 대한 여전한 애정을 보여준다.
산책자 시선, 귀양살이 한탄하다 이후 서해풍경 예찬
애향심 부족 고민하는 현재의 모습과 일정부분 통해

효령대군 10세손… 연수 동춘동 소암마을 출생 추정
고향생각 남달라 영종 옛모습 묘사 '오가팔영' 눈길

인물지 '일몽고' 저자… 치밀한 시선 18세기 인천 기록
'인주요' '속인주요'서 활기 넘치는 포구·무속 등 묘사




문학 속 인천을 찾았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학의 범위를 정하는 것부터 막혔다.
'인천'을 키워드로 작품을 가려내는 일은 시작할 엄두도 못냈다.
문학속 인천을 한 줄기로 꿰어 볼 수 있는 이들을 찾았다.
우선 '인천'과 '문학'을 함께 고민해 온 이들을 만났다.
인하대 최원식 교수, 인천발전연구원 김창수 인천도시인문학센터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문학으로 인천을 읽다'의 저자 이희환 박사, '인천 고전문학의 이해'를 지은 이영태 박사,
'행복한 인천 연극'을 쓴 윤진현 박사 등이 사전 인터뷰에 응했다.
이들에게 문학속 인천을 물었다. 공통분모가 보였다.
이 지점에서 취재가 시작됐다.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고, 문학 속 현장을 찾아갔다.
경인일보는 문학 속 인천을 시기에 따라 3갈래로 나눴다.
근대 이전, 개항기, 해방 후 지금까지의 문학작품을 차례로 싣는다.

2013년을 사는 우리에게 고전문학의 의미를 묻는다면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주제로 한 고전문학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역사는 흐르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차곡차곡 쌓일 뿐이다. 어제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오늘이다. 때문에 고전문학 속 인천을 되짚는 일은 가소롭지 않다.

인천과 관련된 글을 쓴 작가는 이규보, 이인로, 이색, 강희맹, 이규상, 이형상, 권필, 정제두, 이건창, 최석정, 정도전, 유숙, 김용, 권시, 조서강, 이식, 심언광, 김종수 등이 있다. 이들은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인정받았다.

누군가는 인천에서 태어났고, 다른 누군가는 인천에 잠시 머물렀다. 신분과 처지에 차이는 있었지만 그들은 인천 곳곳에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다양한 감정을 솔직하게 쏟아냈다. 또 당시의 삶을 세세하게 표현했다.

수 많은 작가들 중 연구자들이 주요하게 꼽는 이규보, 이형상, 이규상을 중심으로 고전문학 속 인천을 더듬어 봤다.

   
▲ 인천에 남다른 사랑을 보인 이형상이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소암마을 전경.
# 처지가 차이를 빚은 두 시선(詩仙), 그리고 인천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최고의 문인', '시대의 아부꾼'이라는 엇갈린 평을 받는 인물이다. 이런 이규보가 인천과 연을 맺은 것은 자의(自意)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인천은 이규보의 호를 활용해 역 이름(백운역)을 지을 만큼 지역을 대표하는 문인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그는 나이 52세에 관직 생활의 풍파를 맞아 계양군수로 부임한다. 이규보는 부임 당시 지은 시 '조강부'(祖江賦)에서 '천박한 운명 이제 또 귀양살이 가는 길이지만(命薄如今遭謫去)'이라 말한다. 또 '세찬 바람'(風狂), '도난'(渡難) 등의 표현을 쓰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하지만 13개월 부평 생활을 접고 다시 개경으로 귀경할 시기 인천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달라진다.

'처음 내가 이 고을 수령으로 좌천되어 올 때 망망대해의 푸른 물을 돌아보니…(중략)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보려하지 않았다…(중략) 서울로 가게 되니 전일에 보던 망망대해의 푸른 물이 좋게만 보였다'. '동국이상국집' 권24기에 실린 이 글에서 그는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며 인간미를 풍긴다.

이규보는 또 계양산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의 풍경과 특색을 글로 담아냈고, '농부를 대신하여','국령으로 농민들에게 청주와 쌀밥을 먹이지 못하게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등에서는 당시 사회상을 그렸다.

이영태 인하대 동아시아한국학 연구교수는 "이규보의 글에는 신흥사대부, 타 지역 출신 등의 이유로 인천을 '산책자'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향이 강하다"며 "이는 들고 나는 사람이 많은 지역적 특색으로 애향심 부족을 고민하는 인천의 현재 모습과 일정 부분 통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병와(甁窩) 이형상( 李衡祥·1653~1733)은 효령대군 10세손, 즉 왕족이며 인천 태생이다. 남동걸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병와집'을 풀이해 이형상의 출생지를 청량산 아래, 현재 연수구 동춘동 소암마을로 추정했다.

이형상은 벼슬길의 대부분을 청주목사, 동래부사, 제주목사 등 지방에서 수행했다. 그는 머무는 곳마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바라본 실상을 글로 남겨 최고의 문인이자 '향토학자'로 평가 받는다.

평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산 이형상은 죽기 전 5년을 인천에서 보내며 따뜻한 시선이 담긴 '소성록', '소성속록' 등을 남겼다. 정경을 묘사한 작품이 다수를 이루는 두 책 중 소성속록은 '영종도'의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마을 안의 친척끼리 서로 훔치는 일이 있어'란 작품은 '지난 여름에 본 바가지 든 걸인은/그 전 해 곡식 쌓아둔 넉넉한 집 사람인 걸…(중략) 마른 시체는 들에 가득하여 윤리는 끊어지니…'라는 설명으로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던 섬 사람들의 삶을 전한다.

더불어 '오가팔영'은 바람, 달, 바다, 산 등 자연물을 통해 영종도의 빼어난 여덟 풍경을 묘사한다. 특히 '백운청람'은 '해 질 무렵 푸르스름한 산 기운이 집의 뜰에 가져다 놓고 싶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 상임연구위원은 "인천 출신임을 자부하며 남다른 애착을 지녔던 이형상은 지역을 대표한 사상가이자 문인으로 인천시민이 본받을 정신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특히 오가팔영은 신공항 건설 이후 변화한 영종도의 옛 모습을 이해하는데 주요한 작품으로 더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인천부사인 아버지를 따라 얼마간 인천에서 머물렀던 이규상은 사진 속 도호부 청사를 기준으로 가깝게는 능허대, 멀게는 용유도 등을 돌아다니며 세밀한 글을 남겼다. /인천도호부청사 제공
# 섬세한 감성으로 인천을 바라 본 이규상

18세기 내로라하는 인물을 망라한 인물지 '일몽고'(一夢稿)를 지은 이규상(李奎象·1727~1799)은 인천부사를 지낸 부친 이사질(李思質) 덕분에 젊은 시절을 인천에서 보냈다.

관직에 큰 뜻을 두지 않고 학문, 문화예술, 인물사에 몰두한 그는 특유의 치밀한 시선으로 18세기 인천을 글로 남겼다.

특히 1765년 인천 곳곳을 유람하고 이를 소재로 지은 '인주요'9편과 '속인주요' 9편은 지방 현실, 지방민 삶, 복식, 무속현장, 역사와 유적, 풍류, 그들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짐작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인천의 '죽지사'(竹枝詞)로 불린다.

인주요 속 인천은 조그맣고 평범하지만 활기 넘치는 포구다.

이규상은 '인천 풍속은 궁벽한 깡촌과 같아서…(중략) 광주리를 머리에 인 아낙과 벙거지 쓴 사내가/해 뜨자 조개와 물고기를 잡으러 급히 나서네'(인주요 1연), '얕은 곳 깊은 곳에 크고 작은 대합 묻혔는데…(중략) 포구의 아낙들 다투어 갈고리 들고서/바느질하듯 촘촘히 갯벌을 파고 있네'(인주요 5연) 라고 적었다.

또 속인주요에서는 '어부들 염부들 귀신을 좋아해/돼지 찌고 쌀밥 지어 새 봄에 제사 지내네…'(5연), '바닷가 풍속에 가을이 오면 다투어 굿을 하고/여러 생선 놓고 베를 매달고 무당에게 절을 하네…'(7연) 등의 설명으로 당시 인천민들의 무속, 소망을 기록했다.

이규상은 이외 인천 관아 서쪽 길로 문학산을 넘어 능허대에 올라 조수를 보며 부친의 시에 차운해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하기도 했다.

'흰 물결 몰려 와 땅이 보이지 않는데/산사람이 처음 보니 구름인가 하였네/웅장한 기세를 누가 대적하리요/만물 중에 물이 임금이로다'.

글=박석진·김명래기자 사진=임순석기자

경인일보 포토

박석진·김명래기자

psj06@kyeongin.com

박석진·김명래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