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관계?

영·호남 양극화역사 반영하는 88고속도로
외국인으로선 '지역감정' 받아들이기 힘들어
새정부, 균형과 조화있는 국가 만들어가야

안톤 숄츠

발행일 2013-03-22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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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톤 숄츠 코리아컨설트 대표
국제행사에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행사 개최 준비를 위해 한 해 중 꽤 많은 시간을 국내 여러 도시에서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언제나 내게 큰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의 홈타운인 광주에서 한국에 있는 어느 도시로든 어떻게 가는 것이 가장 좋은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때엔 그곳이 부산 또는 대전이기도 했고 지금껏 가장 자주 가는 곳은 아무래도 서울이며 올해 들어선 대구에 갈 일이 잦아지고 있다. 최근에 대구 왕래가 잦다 보니 광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그 불편한 88고속도로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88고속도로는 그야말로 한국의 역사를 반영한다. 거의 바뀌지 않은 오늘날의 광주와 대구간의 좋지 않은 관계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이어오는 듯하다. 도로만 보더라도 호남 지역과 영남지역은 대칭적인 양극 같은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경제 및 산업 동력을 갖춘 부산, 대구, 울산 그리고 포항 등이 위치한 영남지역은 서울과 경기지역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개발이 잘된 지역이다. 반면에 호남지역은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 비약적인 경제 기적을 만들어 낸 지난 40년 동안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이 뒤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더 앞서나갈 수 없었다. 경상도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수적 힘들이 세력을 갖고 있는 동안 전라도는 늘 혁명적인 좌익의 기지였다.

그래서 88고속도로는 내게 있어 두 지역이 서로 친해지는 데엔 무관심하다는 명백한 진술로 여겨진다. 원래 이 도로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계획되었던 것으로, 당시 전두환이 화해의 제스처로 호남인들에게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게 된 도로가 지금껏 실제로 변화되어온 것을 보자면 꽤 흥미롭다. 1984년 개통된 이후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도로는 예전과 거의 다름없다. 온 나라 전역이 공사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대도시인 대구와 광주에 제대로 된 고속도로(심지어 KTX 등 다른 교통편도 없이) 하나 만들지 못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훨씬 더 깊은 곳에 있지 않나 싶다.

사실 요즘엔 88고속도로에서 공사가 한창이라 가까운 미래에 두 도시간의 원활한 교류와 소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에선 공사의 진행이 더디고 새롭게 확장되어 완성되는 고속도로의 개통은 2015년으로 미뤄졌다. 아무튼 그 약속이 지켜질지 우리 모두 두고 봐야 하겠다. 외국인인 나로서도 지역 감정은 한반도를 자르는 마치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금부터 5년간 영남지역은 박근혜 정부로부터 밝은 미래를 보장받은 듯하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선거기간 호남 사람들에게 내세웠던 많은 선거공약이 계획대로 실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나라에서는 대통령으로 재선하기 위해서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재선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관심이 없거나 불가능한 일이어선지, 오직 한 임기 내에서 이 나라의 오랜 오해와 균열을 극복하고 진정한 화해의 손길을 뻗어 균형과 조화가 있는 나라로 만들어가려는 엄청난 위업의 기회를 누구도 손에 넣으려 하지 않는다.

사실 올 가을에 개최될 국제행사 준비를 위해 최근 대구를 방문하면서 두 도시간의 불신을 개인적으로도 느낄 만한 계기가 있었다. 행사 준비를 위해 시 관계자들과 토론을 하던 중 한 사람이 나의 명함을 보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이제서야 봤네요. 회사가 광주에 있으시네요. 음, 그럼 아마도 함께 일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거리가 문제라는 것일까? 사실 대구에서 보자면 광주가 서울보다 더 가까운데도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새롭게 고쳐질 고속도로에도 불구하고 결코 두 도시 간의 간극을 메울 수 없는 엄청난 틈이 존재해서일까?

/안톤 숄츠 코리아컨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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