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정해인, 임혜경 부부가 등을 기댄 채 서 있는 모습 뒤로 보이는 주택이 주인의 모습을 닮았다. |
내부재 소박하게 처리해 건축 단가 낮춰
넓지않은 대지 치밀하게 활용 공간 창출
정씨 부부-이재진 건축사 '의기투합'
시골의 향수 깊어 널따란 정원 요구하자
'스킵플로어' 기법으로 만족할만한 성과
현실이 된 '저 푸른 초원위 그림같은 집'
노을빛 스며든 작업실서 미술 작품 영감
숨겨진 공간 가꾸는 재미에 행복한 일상
한국인이 공유하는 꿈이 있다. 가수 남진의 '님과 함께'에 열광하며 그렸던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는 내 집.
높은 빌딩 으스대더라도 사계 변화를 볼 수 있는 곳에 작은 집을 짓고 내 가족과 알콩달콩 사는 꿈.
그것은 강남의 높은 담장 너머 정승급 소나무들만 빠끔히 보이는 집과는 차원이 다른 소박하고 아름다운 집이다.
의왕시 청계동에 위치한 시티하우스6050.
대지 198㎡, 연면적 165.25㎡, 전체 공사비 7억원(땅값 포함)이 들어간 이 집은 '단독주택은 회장님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철저히 깨버린 공으로 2009년 경기도 건축문화상에 입선했다. 보통 단독주택은 대지 264㎡가 넘고 공사비도 이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
집주인 정해인(61)·임혜경(57·여) 씨 부부는 이전에 살던 안양의 아파트를 팔아 이 집을 지었다.
안주인 임씨는 "단독주택은 보통 우리같은 서민들은 꿈도 못꾼다"며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갈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단독주택을 2억5천만원이면 짓는다는 얘기를 듣고 그 정도면 살던 아파트를 팔아 지을 수 있겠다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물론 실제 건축비는 그보다 더 들었지만 벽지 대신 친환경 페인트를 쓰는 등 내부재를 소박하게 처리해 단가를 낮췄다. 재빠른 결정이었지만 준비는 꼼꼼하게 했다.
평범한 사람이 믿을만한 건축사를 알 리 없다. 정 씨는 온라인에서 '하우빌드(Howbuild)'란 회사를 만났다. 하우빌드는 건축주가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면 건축사들이 각각의 설계도면을 내고 이를 바탕으로 경쟁하도록 하는 현상공모 사이트다. 정 씨는 이곳에서 8개의 설계도면를 받았고, 어디나 선택권은 여자에게 있는 것처럼 아내와 딸의 선택으로 이재진 건축사(44·(주)이진건축사사무소 대표)와 다시 만나게 됐다.
▲ 2. 자신이 그린 유화가 걸려있는 작업실. 저편으로 직각으로 맞댄 창이 보인다. 정씨는 여기서 그림을 그리다 고개를 들어 밖을 보면 풍경이 좋다고 자랑했다. |
현상공모는 이 건축사에게 매우 생소했다. 떨어지면 설계도면과 3D작업 등이 모두 허사인데 정씨의 집터는 너무 작아 설계 자체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 건축사는 당시까지 3D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선택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일에 모든 공을 쏟게 되는 건 괜한 자존심때문이었을까? 현상공모는 저작자의 이름이 모두 가려진 채 건축주 정씨에게 갔다. 정씨 가족들은 왜 하필 이 건축사의 것을 선택했을까?
임혜경 씨의 답은 간단했다. 정원이 가장 넓었다. 그는 "연천에서 유년시절을 보내 저녁이 되면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사계가 변하는 시골에 대한 향수가 깊다"며 "아파트를 돌고돌다 이젠 나무에 꽃피는 거 보며 노을지는 하늘 보며, 사는 것처럼 살고싶어 꼭 정원을 내달라고 현상공모 당시 조건을 달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지 198㎡에 정원을 낸다면 얼마나 낼 수 있겠는가.
▲ 3. 건축주 부부와 이재진 건축사가 얘기 나누는 거실도 창문이 90도로 만나 시야가 훨씬 넓다. 소파 위에 걸린 그림은 정씨의 작품. |
고민 끝에 찾아 낸 것은 스킵플로어(Skip Floor) 건축 기법. 계단을 중앙에 두고 반층씩 올라가면서 공간이 나타나는 거다. 즉 현관을 들어가 반층 올라가면 주방과 거실이고, 다시 반층 올라가면 안방과 욕실이고, 또 반층 올라가면 딸의 방과 작업실이 나오는 식이다.
덕분에 대지면적 중 반만 집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잔디를 심어 정원으로 꾸밀 수 있었다. 또 공간을 대지에서 떼어놔 방 하나하나의 공간이 넓다. 반층씩 분리돼 있어 공간의 독립성도 얻고 반층만 올라가 가족간 이동거리도 최대한 줄였다.
시티하우스는 창에 신경썼다. 각 벽면에 흩어져 있는 창을 직각으로 맞대 시야각을 넓게 하니 웬만한 통유리 집 못지않게 전망이 좋다.
현관도, 거실도, 각 방들도 모두 창문은 면에서 만나도록 해 밖의 풍경이 자연스레 공간 안으로 스며든다.
특히 부부가 좋아하는 곳은 정원과 작업실.
▲ 3. 건축주 부부와 이재진 건축사가 얘기 나누는 거실도 창문이 90도로 만나 시야가 훨씬 넓다. 소파 위에 걸린 그림은 정씨의 작품. |
부부의 작품은 현관에도, 거실에도, 방과 방 사이 벽면에도 훌륭한 작품으로 걸려 있다. 부부는 집에서 살고, 영감을 얻고, 그 감수성을 그림에 실어내고 있었다.
자랑은 거실에서도 이어졌다. 건축에서 정원을 최대한 배려했다지만 워낙 면적이 작아 좁아 보일 수 밖에 없는데, 거실 통유리의 면을 맞대 90도로 내자 앞집 정원까지 집 안으로 들어온다. 정 씨는 기자가 너무 일찍 찾아왔다며 "좀더 늦게 꽃피는 시기에 왔다면 이 집에 사는 맛을 제대로 느꼈을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시티하우스도 벌써 6살이나 먹었다.
2층 딸 방 벽을 두른 나무가 2008년에 입주했을 땐 갈색이더니 지금은 빛에 바래 회색옷을 입었다.
집도 나이가 들어간다고 운을 떼자 정 씨는 "그동안 집에 해볼 것은 다 해본 것 같다"고 말했다. 무슨 말일까?
정씨는 "아파트와 달리 방 말고도 공간이 많다"며 "정원·테라스·다락방·옥상… 그 공간들을 우리 입맛에 맞게 가꿔가다보니 집에 오면 할 일이 항상 많다"고 웃었다.
콘크리트 박스로 된 안방 위에 있는 옥상은 더운 여름엔 아주 좋은 피서지. 텐트를 치고 여름밤을 보내는 것이 재미난데 주위 시선이 의식돼 아늑함을 더하도록 나무난간을 쳤다.
▲ 4. 아래 계단 쪽에는 안방이 있고, 사진 중앙에 보이는 층의 오른쪽엔 딸방이, 올라가는 계단에 가린 왼편에는 작업실이 있다. 사진 안쪽에 보이는 작은 계단은 다락방으로 오르는 계단. |
정성을 가장 많이 쏟는 부분은 역시 정원이다.
집 뒤 한 벽면에는 농촌에서만 볼 수 있는 갈퀴가 보인다. 정원 잔디를 깎고 쓸어내거나 쑥갓과 상추를 키우는 텃밭을 일굴 때도 쓴다고 했다.
정원 한 켠에 팔뚝만한 길이에서 허리만큼 자란 나무들도 부부가 집에 함께 사는 것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짐작케 한다.
집 밖으로 나와 시티하우스를 보는데 들고양이가 안주인의 발에 납작엎드려 비벼댄다. 정 씨는 "우리 집 앞마당의 똥은 저 고양이가 싸고, 우리 집 개는 딴 집 정원에 싼다"고 해 좌중이 한참을 웃었다.
'저 푸른 초원위의 집'은 성실히 살아온 사람들이면 포기할 꿈이 아님을 시티하우스6050이 말해 주고 있었다.
글=권순정기자 / 사진=프리랜서 조형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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