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박성현기자 |
인천의 정체성 학자들의 고민 깊어
"사회·문화·심리적 주체회복 절실"
악취·회색도시 부정적 이미지 불구
세계진출 기회·개방성·발랄함 등
"긍정적 측면의 극대화 노력 필요"
'인천'은 어떤 도시인가. 인천 하면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는가. 인천이라는 도시의 자랑거리는 무엇인가. 인천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들이다. 인천의 정체성을 몇 개의 단어 등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인천시민이 생각하는 '인천의 정체성'과 외부에서 바라보는 '인천의 정체성'이 다를 수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정체성(正體性) :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도시의 정체성'은 사전적 의미와 달리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또한 부정적으로 보느냐 긍정적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인천대 이윤희 교수는 '인천학세미나Ⅰ- 인천시민의 지역정체성에 대한 연구'에서 "지역 정체성은 고정된 의식이 아니라, 지역 경제구조나 정치체계의 변동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질 수도 있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변화될 수도 있는 역동적 개념"이라고 했다.
실제로 '공업도시' '판자촌' '유흥가' 등의 부정적 이미지는 약해졌다. 반면 인천경제자유구역 개발, GCF(녹색기후기금) 본부 유치 등으로 인해 '국제도시' 등의 새로운 이미지가 형성됐다.
일각에서는 "정체성이 없는 것이 인천의 정체성"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다. 도시의 정체성은 지리적 특성, 역사 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거나, 너무 다양해 특정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울 뿐이라는 의견이 많다.
교수와 연구원 등 학자들은 인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왔다. 이들은 인천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했을까. 인천대 인천학연구원의 '인천학연구'등 학술지에 실린 논문 가운데 '인천의 정체성'을 주제로 한 글들을 정리해 봤다.
▲ 수도권매립지로 인해 인천시민들은 악취·비산먼지·소음 등에 시달리고 있다. 수도권매립지는 2016년에 사용기한이 종료된다. 하지만 환경부·서울시·경기도는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을 기대하고 있고, 인천시민들은 사용기한 연장에 반대하고 있다. |
요즘 수도권매립지 사용기한 연장 여부를 두고 서울과 인천이 갈등을 빚고 있다. 또 정부의 영흥화력발전소 7·8호기 증설계획에 대해 인천이 반발하고 있다. 수도권매립지 갈등의 경우, 사용기한 연장에 반대하는 인천시민들의 목소리를 '님비현상'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인천은 서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피해를 봤다.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산업화시기에는 부평공단에 서울의 구로공단과 연계되는 제조업 생산기능이 부과되었고, 서울의 인구가 성장함에 따라 서울과 가까운 부평구, 남동구 등은 주거기능까지 떠맡아야 했다.
(중략)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에너지 공급기지로 각종 유류, 가스 저장소 등의 위험시설이나 발전소가 들어섰다. 서울의 환경문제까지 떠맡은 것이다.
인천발전연구원의 '2001 인천再발견'에 실린 '인천과 인천사람들:끊임없는 세포분열 그리고 세포들의 자기인식을 위한 노력'(글쓴이 심승희)이란 제목의 글 일부다.
심승희 박사는 이 글에서 "인천은 서울의 배후도시라는 점을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보기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서울의 오픈 스페이스가 갖는 장점들을 십분 키워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또 "서울에의 높은 의존성을 문화적 강박관념으로 만들기보다, 지역경제나 지역문화의 독자성을 키워나가려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라고 했다.
공업단지와 수도권매립지 등으로 인해 인천은 '회색도시', '악취 나는 도시'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됐다. 인천대 전영우 교수는 '인천학연구'창간호에 낸 학술 논문에서 "서울과의 지리적 근접성은 인천의 이미지를 서울의 주변부, 정체성이 없는 도시로 전락시켰다"고 했다.
'인천학연구' 4호에는 '인천의 여성성과 도시 정체성에 관한 연구-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나타난 페마주(Femmage)적 해석을 중심으로-'(구영민·최해안)라는 글이 실렸다.
개항 후 백여 년의 세월을 일정한 정체도 없이 상처만 입고 자라온 인천의 도시 환경은 언제나 서울이라는 표상작용을 통해 그 동일성의 차이로서만 변별돼 온 것이 사실이다. 즉, 인천은 서울의 위성도시로서 식민화된 정체성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인하대 구영민 교수는 "(인천은) 중심(서울)이 배출해내는 삶의 온갖 쓰레기들을 받아내고 그것과 함께 자신들도 똑같은 모습으로 소멸해야만 하는 운명에 놓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천이 언제까지 서울의 주변도시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인가.
한국교원대 류제헌 교수는 '황해문화'2010년 겨울호 '인천은 지방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서울(중앙)에 대한 종속에서 벗어나 세계적 국제도시로 도약하려면, 우선적으로 정치·경제적 자립을 확보해야 하겠지만 이에 못지않게 사회·문화·심리적 주체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사회·문화·심리적 주체를 실질적으로 회복하려면, 도시정체성에 대한 공간-비판적 접근이 현재보다는 더욱 실질적으로 확대되고 심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 과거에는 인천을 '항구도시'라고 불렀다. 현재는 '해양도시' '동북아 물류 중심지'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올해는 인천항 개항 130주년이다. 인천항은 개항기 때 외국의 근대문물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관문 구실을 했다. 산업화 시기에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
인천 하면 떠오르는 단어에는 바다, 항구, 섬 등이 있다. 인천문화재단 이현식 인천한국근대문학관장은 2004년 9월 나온 '인천학연구'에 '대중문화에 나타난 인천 이미지 연구'라는 학술 논문을 실었다.
이 관장은 논문에서 "인천의 이미지로 가장 뚜렷하고도 공통적인 자질은 항구도시로서의 이미지"라고 했다. 또 "바다와 항구를 서민들에게 더욱 가깝게 가져가려는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인천이 바다의 도시, 항구의 도시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인천항 내항 8부두 개방 문제를 놓고 주민들과 항만업계가 갈등을 빚고 있다. 주민들은 8부두를 개방해 바다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구영민 교수는 '인천학연구'2-2호에 실린 학술 논문에서 "(해안 매립으로) 내부도시는 점차 바다와의 연계를 끊을 수밖에 없게 됐다"며 "'인천에는 바다가 없다'는 극단적 문구가 등장하면서 항구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 학술지에는 '영상매체 속에 비쳐진 인천이미지를 통해 본 인천의 정체성 연구'(백철현·김계원)라는 글도 있다.
항구로서의 인천의 이미지는 인천의 정체성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떠나고 도착하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는 인천을 평생의 정주공간으로 하고자하는 이미지가 약할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 나아가 세계로의 진출이라는 거시적인 이미지가 정착되어 가 이는 인천의 정체성에도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백철현(전 인천대 교수) 박사는 "(항구 등의) 이미지를 긍정적인 측면으로 승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 영흥화력발전소 7·8호기 증설이 산업통상자원부의 제6차 전력수급 기본 계획에 포함돼 있다. 인천시와 지역 환경단체들은 석탄을 연료로 한 영흥화력 7·8호기 증설에 반대하고 있다. /경인일보DB |
인천의 도시적 인프라는 항구와 공항을 통한 사람과 물자들의 흐름을 더욱 원활하게 하는 쪽으로 구상되어야 한다. 다양성과 잡종성, 가변성이야말로 인천과 인천인의 체질임을 재확인하고 그것이 가진 개방성과 발랄함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극대화하는 것이 인천문화 부흥의 첩경일 터이다.('2001 인천再발견-인천 의식과 인천 이미지의 변천')
인천발전연구원 김창수 인천도시인문학센터장은 이 글을 통해 인천의 도시적 성격을 '다문화성'으로 규정했다.
인천은 황해도, 충청도, 전라도 등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또한 인천시민 중에는 서울 입성의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하지만 인천인을 뜨내기나 떠돌이로 간주하는 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 김 센터장의 얘기다.
인하대 최원식 교수는 '새얼'12호 '인천의 인천화'라는 글에서 "인천은 원래 국제주의가 왕성한 곳"이라며 "인천에 모여든 이질적 요소는 중심이 없으며 공중분해할 위험이 다분하지만 중심만 선다면 오히려 중요한 자산이다"고 했다.
또 "인천에 오래 살았다고 토박이가 아니다"며 "인천에 어제 도착했을지라도 인천을 위해 일을 할 결의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토박이"라고 했다.
최병목(전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박사가 쓴 '인천시민의 특성별 지역정체성 비교'논문은 '한국인구학' 제22권 제1호에 실렸다. 최 박사는 이 논문에서 "주인의식이 없는 곳이므로 너도 나도 와서 정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 있다"며 "타 지방인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인천의 개방적 분위기가 인천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원만한 적응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고 했다.
글=목동훈기자
<저작권자 ⓒ 경인일보 (www.kyeongin.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