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식인' 그 부끄러운 자화상

우린 일제에 충성·군부에 아부… 서슴지않아
서구 지식인들 행동으로 시대를 리드하는데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몸만 사리는 지식인도

김성종

발행일 2013-04-05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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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종 소설가·추리문학관장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구한말 시인 문장가로, 1855년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구례에서 칩거하며 살다가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며칠 후 통분을 이기지 못해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음독자결했다. 그때 나이 56세. 절명시 한 수가 가슴을 저민다.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 온세상이 이젠 망해버렸어라.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인간 세상에 식자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

반면 같은 시인이면서도 미당 서정주는 나라와 민족을 배신하는 행적을 보여준다. 가미가제 특공대원으로 죽은 일본군 오장에게 바친 헌시는 읽을수록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대는 우리의 오장 우리의 자랑.(중략)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온 원수 英美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리쳐서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 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미당의 비열한 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수십 년 후까지 이어진다. 1987년에 발표된 전두환 56세 생일 축시를 보자.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 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의 번영을 마련하셨나니(중략)---'

한 번은 고은이 미당의 친일 행각을 비판한 적이 있었다. 옳은 지적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미당의 제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감히 한국의 시성(詩聖)을 비난하다니 하면서 고은을 맹렬히 공격했다. 이런 얼빠진 지식인들 덕분에 미당은 죽을 때까지 한국 최고의 시인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에게는 지식인으로서의 정의나 양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단지 시적 감각과 감성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시적 기교와 감성적 문체는 부도덕한 사람도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람이 바로 미당이다.

서구의 경우 지식인 그룹 가운데서 작가나 시인들은 단연 시대를 리드하는 행동하는 지성으로 손색이 없다. 1936년 스페인에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파시즘 세력이 내란을 일으키자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세계의 작가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전쟁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작가로 헤밍웨이, 말로, 조지 오웰, 케스틀러 등이 있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희망' '카탈루니아 찬가' 등 걸작들이 탄생했다. 2차 대전시에는 사르트르, 카뮈, 말로, 레마르크 등 많은 작가들이 나치에 저항하여 레지스탕스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인들은 부끄럽게도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고, 군부 독재시절에는 권력에 아부하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그 중 가장 악랄한 것은 언론인 출신이 군부 세력에 빌붙어 언론 통폐합에 앞장서고 같은 동료들을 학살한 점이다. 꽃의 시인으로 알려진 유명한 노시인은 군사정권하에서 전국구 국회의원 자리를 주자 감읍하여 기꺼이 여당의 거수기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입을 꾹 다문 채 내 한 몸만 지키면서 편하게 지내는 지식인도 있다. 영특하기 짝이 없는 그는 시대의 아픔을 철저히 외면한 채 국민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한 적이 없고, 수많은 저서를 통해 구름 잡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았다. 그런데도 오늘날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시인 김지하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서인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발언들을 여과없이 쏟아내 우리를 당혹케 하고 있다.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지식인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백낙청을 느닷없이 비난하는 글을 신문에 발표하더니 얼마 후에는 문재인에게 투표한 48%의 국민들을 공산당을 좇는 국가 전복세력으로 몰아붙였다. 무지하고 안하무인격인 그의 발언은 정상적인 지적 수준을 지닌 사람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착란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을 보면 매천의 말마따나 정말 지식인 노릇하기가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김성종 소설가·추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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