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취임 100일'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

폭풍 헤쳐온 기분… '대화와 합의의 정치' 뿌리 내려야

김순기 기자

발행일 2013-04-17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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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취임 100일 소감 등을 밝히며 '대화와 합의의 정치'를 강조했다.
자중지란 위기에 '사이후이' 각오
정부조직법 협상 교착 위기속에도
인사청문회 도덕성 검증 등 최선
黨계파갈등 우려엔 "사심 버려야"

30대 정치입문 남양주에서만 3선
여전히 수첩에는 지역현안 빼곡
열악한 지역교통 개선 위해 노력
지하철 4호선 확정의 감동 잊지못해

과도한 규제로 인한 역차별 등
경기지역 현안에도 관심
일각선 차기 도지사 후보로 점쳐
원내대표 연임 목소리 '행보' 고민


지난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내리 패한 민주통합당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중지란이었다. 한치앞도 보이지 않았다.

지지자들은 등을 돌렸고 패배 원인을 둘러싼 계파 대립이 격화되면서 금방이라도 와해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당장 당을 추스르고 끌고 나갈 지도부가 문제였다. 곳곳이 부서지고 구멍난 '민주호'를 이끌고 암흑속을 헤쳐 나간다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누구 하나 쉽사리 전면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누구는 이런 이유로 안되고 막상 할만한 인사는 저런 이유로 머뭇거렸다.

원혜영·유인태·박지원 의원 등 당 중진들이 움직였다. 원내수석부대표를 역임하면서 보여준 대여 협상능력과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고루 지지받는 통합능력을 가진 박기춘(남양주을) 의원을 주목했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그렇게 등장했다. 취임 100일을 갓 넘긴 박 원내대표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만났다.┃편집자 주

'사이후이'(死而後已·죽은 뒤에야 일을 그만둔다).

박 원내대표는 '100일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28일 원내대표로 선출될 당시에는 대선 패배에 대한 국민의 비판속에 머리숙여 사죄하는 마음뿐"이었다며 "그동안 변화의 한복판에서 폭풍을 헤쳐왔다.'사이후이'의 각오로 일했다"고 되돌아봤다.

'민주당 구원투수'로 나선 박 원내대표 앞에 놓인 과제는 크게 3가지였다. 민주당의 혁신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협조 및 견제 등의 관계 설정, 그리고 비록 대선에서 패했지만 선거기간 내놓은 공약에 대한 대국민 약속 실천 등이 그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을 만장일치로 합의 추대해 혁신의 교두보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당초 민주당은 박 원내대표에게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를 겸임하는 안을 내놓았다. 강력한 단일 리더십으로 '민주호'를 수리해 정상화시킬 것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는 욕심 부리지 않고 비대위원장을 별도로 둘 것을 설득한 끝에 문 비대위원장을 추대하며 변화와 책임의 깃발을 들었다.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매일 인내하고 양보하고 결단하며 정부조직법을 타결, 대화와 합의의 정치 이정표를 세웠다고 자평했다. 박 원내대표는 "인사청문회에서는 국민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철저히 검증했다"며 "부도덕한 인사의 임명 시도에 대해 국민의 명예를 걸고 막아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선공약과 관련해서는 경제민주화, 복지확대, 한반도 평화 등의 국민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여야 대선공통공약 실천특위' 구성을 제안해 관철시켰다. 박 원내대표는 "100일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며 내디뎠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 당시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3대 요구안을 제시했지만, 새누리당은 물론 내부에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되돌아왔다.

박 원내대표는 "꽉 막힌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고육지책을 낸 것이었다"며 "공정방송을 지켜내고 조속히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잠못 이루는 나날"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위기'는 박 원내대표의 원칙과 뚝심앞에 허물어지며 전화위복으로 되돌아왔다. 새누리당과의 협상 마지막 날, 박 원내대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형님', '삼촌'으로 모시겠다는 읍소 작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정부조직법 협상 막바지에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여당 원내대표부를 압박했다"며 "되돌아보면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고 웃어보였다.

우여곡절끝에 도출된 정부조직법 협상안에 대해 민주당 의원들은 별다른 이견을 표시하지 않았다.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이고 실행 가능한 안을 도출한 뒤 이를 일관되고 꾸준하게 실천하는 박 원내대표에 대한 신뢰의 표출이다.

박 원내대표는 취임 당시 주 1회 이상의 의원총회 개최를 약속했다. 독단적으로 또는 몇 명이 결정하기보다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전체 의원들의 총의를 이끌어낸다는 취지다. 박 원내대표는 현재까지 의원총회 약속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 박 원내대표는 "권위주의적이지 않았다. 소통하고 경청하려는 진정성을 보여줬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도 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호평했다.

   

인사문제에 대한 사과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이제 바꾸겠다,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뜻을 야당과 국민에게 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 인사라인의 엄중 문책 등을 통해 인사참사의 늪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시길 바란다"는 요구도 빼놓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향해 "대화와 합의의 정치를 하자"며 "청와대가 조금만 바뀌면 대화와 합의의 정치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민생과 변화를 위해 여야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정치를 하자"고 촉구했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의원들 개개인의 사심이 없어야 한다. 욕심 때문에 세를 불리고, 계파를 만들어 이용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며 최근 계파갈등을 우려했다. 이어 "지난 대선배패로 민주당이 더욱 밉고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라며 "민주당 쇄신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믿고 기다려달라"고 호소했다.

박 원내대표는 30대 초반에 남양주지역 국회의원실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군 제대후 농협에 근무하면서 공무원들의 각종 부조리와 약자가 권력층에 의해 피해를 받는 현장을 목격했다. '정의'를 곧추세워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아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청년의 혈기'는 경기도의원을 거쳐 3선으로 이어졌다. 그 사이 당 사무총장,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두루 경험했다. 국회 지방3정(재정·행정·의정) 발전연구회, 국회 한·몽골 의원친선협회, 국회 한·중 정치경제포럼, 국회 지하철4호선 조기착공 국회의원 모임 등의 대표도 맡고 있다. 정치 신인들에게는 하나의 '텍스트 또는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한 이력서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17·18대 국회에서 여야간 몸싸움이 많았다"며 "당시 정치인으로서 참담함을 느끼며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반대로 "국민이 진정 원하는 정책과 입법을 여야 합의로 처리할 때와 지역구의 현안들을 하나둘 해결할 때에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박 원내대표는 지역구에 대한 진한 애정과 현안 해결에 대한 무한책임을 숨기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17대,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만 해도 지역구의 교통환경이 매우 열악했다"며 "국도 47호선 확장사업과 지하철4호선 등을 확정지었을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박 원내대표의 수첩에는 여전히 지역현안이 빼곡히 적혀있다.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이 종점인 지하철 4호선을 남양주까지 연장', '인구 및 도시 발전 속도에 비해 미흡한 교통 등의 인프라 구축을 통한 남양주의 균형발전' 등이 그것이다. 청년실업, 주택·교통문제, 개발제한구역 등의 과도한 규제로 인한 역차별 등 경기도 현안에 대한 관심도 크다.

박 원내대표는 군복무기간을 제외하고 현재 살고 있는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국회의원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술, 담배도 끊었다. 아침 6시에 국회에 나와 1시간 운동을 한 뒤 신문, 방송을 통해 지역현안과 정치현안을 꼼꼼히 챙긴다.

대여문제에 있어서는 '독일 병정형'에 가깝지만 일상생활은 '모범생' 그 자체인 셈이다. 구설수에 오르지 않는 깨끗한 정치인·지역민들의 신뢰를 듬뿍받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이다.

박 원내대표는 정치인으로서의 좌우명을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고 소개했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하자는 다짐을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봄바람'은 박 원내대표를 차기 경기도지사 민주당 후보쪽으로 실어나르고 있다. 당내에서는 전임 원내대표의 잔여임기 4개월을 넘어 연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당·국회 쇄신과 정치 혁신 등에서는 아직 미진한 부분이 많다. 솔직히 시간이 더 있었으면 하고 아쉽게 생각한다"면서 "이것저것 고민중이다"고 향후 행보에 대한 말을 아꼈다.

글=김순기 서울정치부장 /사진=조형기 프리랜서

■박기춘 원내대표는?

■ 1956년 3월21일(음력) 남양주 출생 ■ 경희대학교 대학원 행정학 박사 ■ 제4·5대 경기도의원 ■ 경기도의회 민주당 대표의원 ■ 제17·18·19대 국회의원 ■ 열린우리당 사무총장 ■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 민주당 원내대표 ■ 한국리틀야구연맹 명예회장 ■ 국회 한·중 정치경제포럼 대표 ■ 국회 한·몽골 의원친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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