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뮤지컬 '메모리즈-뉴롤리폴리2013' 제작자 박해미

창작뮤지컬 제작의 꿈
구리아트홀은
내게 '운명' 이었죠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3-06-05 제8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 배우 박해미가 '해미뮤지컬컴퍼니' 대표로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뉴롤리폴리' 왜 다시 무대에?

비록 조기 하차했지만 출연 인연
작품에 바친 노력이 너무 아까워서
대폭 수정해 만든게 이 작품이죠

■구리아트홀 상주단체 '해미뮤지컬컴퍼니'

제작비 없어도 무대는 보장해 줘
꿈이 이곳에 저를 머물게 했죠
덩치 큰 뮤지컬단 상주하는 극장
아마 전국에 구리밖에 없을걸요?

■앞으로의 꿈은…

우선 창작 뮤지컬 잘됐으면 좋겠고
수년후엔 토크쇼를 진행하고 싶어요
삶의 생생한 이야기 나누고 싶거든요


뮤지컬 '맘마미아'의 '도나'였던가? 배우 박해미는 그야말로 대중들 사이에 '불쑥'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페라의 유령'을 도화선 삼아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뮤지컬이 크게 성장하면서 이미 몇몇 뮤지컬 스타들이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그 가운데서도 박해미는 유독 돋보였고, 튀었다.

그래서 강렬하게 반짝하다 이내 사라지는 불꽃이지 싶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박해미의 이름은 계속해서 눈에 띄었다.

밝고 우렁차게 노래하던 '도나'역의 잔상이 가시지 않았을 때, 뮤지컬 '스위니토드' 무대에서 스산한 분위기의 '러빗부인'을 연기하는 그녀를 만났다.

스릴러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시트콤에서 또 한번 반전을 보였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술에 취해 개다리 춤을 추던 그의 모습은 충격적으로 웃겼다.

드라마에 출연하고, 예능에도 등장하고, 책도 내고, 가요계에도 발을 들였고, 학생들도 가르친다. 최근 만난 박해미는 뮤지컬 제작자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최근에 시작한 게 아니란다.

10년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이야기, 두 아들을 키우며 배운 것들을 시나리오로 풀어냈고, 30년동안 몸담고 있는 뮤지컬계에서 알게 된 것들을 쏟아내는 것이다.

이쯤 되면 불꽃이 아니라 속부터 은근히, 화르르, 오래오래 타는 모닥불이다. 지난달 28일, 뮤지컬 '메모리즈-뉴롤리폴리2013'의 개막을 앞두고 있는 배우 박해미를 만났다.

# 거침없이 창작뮤지컬

박해미는 지난해 초연한 뮤지컬 '뉴롤리폴리'에 이어 올해 '메모리즈-뉴롤리폴리2013'을 다시 무대에 올린다.

지난해에는 옛날얘기 하게 만드는 강형철 감독의 영화 '써니'의 기억이 남아있었고, 그룹 '티아라'가 부른 같은 이름의 노래가 유행했으니 복고가 먹혔(?)다지만, 왜 굳이 다시 롤리폴리를 무대에 올렸을까.

그의 대답은 '올가미를 기회로 바꾸려고'다. '해미뮤지컬컴퍼니'를 운영하는 박해미는 출연자로 롤리폴리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작품이 실망스러웠고, 결국 조기하차했다.

뮤지컬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지 아는 그는 작품과 사람을 버릴 수 없어 롤리폴리를 떠안았다. 크게 손을 봐서 다시 무대에 올렸고,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번 작품은 지난해의 뉴 롤리폴리와는 180도 달라요. 여러 세대에 걸친 음악을 썼다는 점이 같고, 관객들이 그 이름에 익숙해서 같이 쓰는 거죠. 복고풍이라고 여기실 수도 있지만 작품은 결코 복고가 아닙니다."

4일 구리아트홀에서 '메모리즈-뉴롤리폴리2013'을 개막하고 나면 26일부터는 소월극장무대에 하이틴 뮤지컬 '하이파이브'를 올린다.

다문화가정의 청소년, 장애가 있는 아이, 학교 일진, 부잣집 아들, 모범생이 등장하는 청소년 뮤지컬이다. 청소년기 아들을 둔 박해미는 아들의 행동을 보며 배우는게 많다고 한다.

"아이들도 서로 욕을 하거나 싸우는 게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더라고요. 제어해 주는 힘이 필요한 거죠. 문화활동이 가진 심리적, 교육적 치료 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은 이미 경험을 했어요.

라이선스 뮤지컬 중에 청소년을 위한 것들도 있지만, 우리 정서와 환경에 맞는 청소년뮤지컬을 만들어야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죠."

10월에는 뮤지컬 '샤먼킹'을 시작한다. 대학과 협약을 맺고 뮤지컬 학과 학생들에게 먼저 기회를 줬다. "샤머니즘에 관한 이야기예요.

샤머니즘은 종교 이전에 온 인류에 공통으로 존재하던 것이라 전 세계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죠. 기본적인 스토리를 제공했고, 나머지는 학생들이 다 만드는 거예요. 아이돌 없이 콘텐츠로 승부하기 위한 노력이고, 이미 외국 뮤지컬계의 관심을 받고 있죠."

이쯤되면 질릴 만하지 않은가. 한꺼번에 뮤지컬 세 작품을 준비하다니. 그런데 그는 현재, 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에 출연중이다.

본인 스스로도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힘들죠. 그런데 예전부터 준비하던 것들이 올해 모두 터진 거예요. 때가 왔다는 생각에 다 하고 있어요."

   

# 구리아트홀 상주예술단체

지난달 24일, 그가 사는 구리에 새 아트홀이 문을 열었다. 아직 '구리아트홀'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상주예술단체는 공연예술에 관심있는 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만큼 유명하다.

'극공작소 마방진'과 '해미뮤지컬컴퍼니'다. "뮤지컬단이 상주단체로 있는 극장은 아마 전국에 구리아트홀이 유일할 거예요. 뮤지컬은 덩치도 크고 제작 비용도 비싸니까요. 상주단체로서 1년에 4차례 공연을 해야돼요.

뮤지컬 한 편을 올리는데 10억원이 들어가는데, 금전적인 지원은 없고 장소만 제공받는 것이니 비용을 생각하면 답이 안나오죠." 그러나 '꿈이 나를 이곳에 머물게 했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판 맘마미아'를 만드는 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뮤지컬 롤리폴리를 굳이 끌어안아 억대 빚을 지게 된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상주단체가 되면 무대가 보장이 됐다.

박해미는 '운명처럼' 구리아트홀을 알게 됐다고 했다. 구리시민이지만 집에서는 잠 잘 시간도 없던 그는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자막광고를 보게 됐다.

'구리아트홀 상주단체 모집'이라는 작은 글씨들이 그를 텔레비전앞에 붙들었다. 흘러간 자막이 다시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신청마감일이 단 하루 남아있는 걸 확인한 순간부터 그는 아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 접수를 하고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했다. 구리아트홀은 박해미에게 구리 시민으로서, 영향력있는 아티스트로서 다양하고 깊이있고, 안정감 있는 작품을 선보여주길 바라며 '해미뮤지컬컴퍼니'를 상주단체로 받아들였다.

"구리아트홀을 알리는 일까지가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라디오 방송할 때도 계속 홍보를 해요. 많은 분들이 구리가 아주 멀다고 생각하는데, 예상 외로 가까워요. 구리시민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관객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좋은 공연을 계속 만들어 갈 거예요."

# 박해미의 꿈

박해미는 자신의 꿈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딱 부러지게 말했다. 뮤지컬이 잘 되는 것, 그리고 그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진행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들여올 수 있는 라이선스 뮤지컬은 이제 다 들어왔어요. 10억주고 들여오면 반 이상이 로열티죠. 계속 똑같은 것만 하면서 관객이 여러번 찾아주길 바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제 창작뮤지컬을 해야하는 거예요." 꼭 그래서만이 아니라, 박해미는 만들고 싶은 뮤지컬이 아주 많다고 한다. "1995년에 해외투어공연 중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을 본 것이 큰 계기가 됐어요.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라는 문구가 유행했던 때죠. 우리 것으로 해외에서 그런 호응을 얻는 것을 보고 크게 고무됐어요. 이후 97년에 해미뮤지컬컴퍼니를 시작했죠."

남편 황민씨, 아들 황성재군과 함께 경기도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해미는 발도 참 넓다. 문화, 방송계뿐 아니라 정치계 인사와도 친하다. 정치와 잘 어울린다는 말도 적잖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쪽에 관심이 많았다. "2년쯤 후에 토크쇼를 하고 싶어요. 연예인들 이야기말고, 일반인부터 정치인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생생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될 거예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배우 박해미는 드라마 촬영에 앞서 메이크업 하랴, 녹음실 다녀오랴 분주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끼니를 위해 식당으로 갈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대본을 집어들었다.

그나마 가장 한가한 날이라고 한다. 83년 데뷔해 20년만에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10년이 넘도록 이렇게 바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아직 남아있는 꿈을 보니, 박해미는 오래오래 한참을 더 뜨겁게 피어오르려는 모양이다.

/민정주기자
/사진=조형기 프리랜서

민정주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