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명산을 가다]김포 문수산

외침의 상처 품은 산자락… 초록빛 위로가 내려앉다

송수복 객원기자 기자

발행일 2013-06-14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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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와 마주보는 해안에 위치한 김포 문수산은 산성 성곽을 따라 거닐며 문화재를 감상할 수도 있다.
145년전 병인양요 현장 '갑곶나루'
얼굴 잃어버린 성곽 복원공사 한창
강과 역사가 가로막은 '북녘의 땅'
정전 60주년의 해 "등반 의미깊어"


   
한여름 더위에 버금가는 한낮의 기온 탓에
산행하기가 부쩍 부담스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카네기 동문회원들이 김포에 위치한 문수산을 오른다하여 아침 일찌감치 나선 길이다.

행사주최측 회원들이 벌써부터 차량들의 진입을 돕기 위해 늘어선 길을 따라 산림욕장 입구까지 진입해 주차를 마치고 나니 경기도 각 지역에서 온 회원들로 등산로가 북적인다.

"가볍게 오르고 힘 있게 내려가자"며 회원들을 이끄는 경기카네기 수원총동문회 김재준(50) 회장과 발을 맞춘다.

진공성형물 전문업체인 '(주)미래컴'이라는 회사의 CEO인 김 회장은 관련업계에선 정평이 나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혀 관련이 없는 각 분야의 CEO들이 모처럼 시간을 내어 선조들의 옛 발자취를 따라 역사의 한 부분을 더듬어 보자는 의미를 가진 행사"라고 말한다.

#병인양요와 갑곶나루 그리고 문수산성

문수산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갑곶나루는 정묘호란을 피해 인조가, 병자호란에는 봉림대군과 왕실의 귀족들이 강화로 피신하기 위해 건너던 나루터였다.

하지만 1866년도엔 프랑스군이 이곳 갑곶나루로 올라와 문수산성에 불을 지르고 침탈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강화도도 침탈하여 외규장각의궤를 약탈하여 갔고 145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야 우리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국력의 부흥이 절실하다고 여기는 사건이다.

삼림욕장 입구서 산행표지판을 통해 정상까지 1㎞ 정도의 거리를 확인하곤 가볍게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 보며 숲길로 들어선다. 솔내음 가득한 오붓한 산길이다.

초록의 빛깔이 고운 길을 따라 조금씩 오르다 보면 가까운 곳에 산성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성곽을 밟고 지나는 길도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곳이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성곽을 바라보다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전반적으로 산성을 곁에 두고 가는 길이다. 햇살이 비치는 산성터에 서면 조망은 좋아지지만 한뼘의 그늘이라도 아쉬운 계절이기에 가급적 산성길을 피하는 것이 좋다.

   

#공사중인 문수산성의 흔적

1㎞를 오르면 한남정맥 마지막 구간길인 문수산 주능선에 닿는다. 성곽의 모습도 점차 위용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많이 보강된 형태다.

문수산성은 숙종 8년(1882년)에 강화유수 조사석(趙師錫)이 강화를 보호하기 위해 축성하기를 청한 후 12년이 흐른 숙종 20년(1694년)에야 축성을 마쳤다 한다.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와 포내리 일원에 위치하여 강화도의 갑곶진(甲串鎭)을 마주보고 있는, 해발 376m의 문수산(文殊山)의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의 산성으로 지금은 성곽과 군사시설이 혼재하는 까닭에 말끔하지 못하지만 김포시에서 성곽 복원공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서 2015년도에는 복원공사를 마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2016년 이후에는 공해루(拱海樓) 및 서측성곽 등을 복원해 원형에 가까운 역사유적지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갈 것이라 하니 하루 빨리 제 모습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산성의 장대(將臺)가 있던 정상 부근은 아직도 한창 공사중이어서 어수선하다. 정상석은 이미 발아래 풀섶에 뒹구는 사나운 모습이지만 어쩌겠는가. 문화재 복원이 우선이니 그냥 넘어갈 일이다.

   

#북녘땅 바라보고 선 문수산

지척의 거리를 강이 가로막고 역사가 가로막았다. 북녘의 땅이 손 끝에 닿을 거리에 있기에 군사적으로도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무에 가리워져서 뚜렷하진 않지만 저 너머로 개성공단이 있겠지요. 저희 회사도 한때 입주를 염두에 두었지만 일반제조업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특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한 회사인지라…"라며 김재준 회장이 북녘을 응시하며 말을 아낀다.

이후 여러명의 해병들이 올라와 망원경으로 북쪽을 바라보다 내려간다. 고생하는 후배들을 챙겨준다며 배낭을 뒤적이던 이규재(50) 회장이 나섰다.

'(주)드림로지스'라는 운송회사를 운영하는 CEO로 철인경기에 다녀온 후 곧장 산행에 참여할 정도로 카네기 모임에 애착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앞으로의 우리를 위해 3년이란 시간을 군대에서 보낸 남자들이면 응당 후배들의 고생을 알고 있기에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심정"이란다.

정상 부근을 경기 카네기 회원들과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중에 다소 소란스런 무리가 정상에 다가온다. 한무리의 초등학교 학생들이다.

나의 시선이 문화유적을 찾아 온 아이들의 모습과 군인을 오가다가 일반 등산객들에게서 멈췄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찾아온 문수산에서 같은 생각을 갖고 돌아갈까? 답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두가지에선 같은 방향으로 생각이 고정될 것이다.

통진현 읍치 북쪽 6리에 있다고 전해오던 진산, 비아산으로 불리던 문수산(文殊山)에서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꾸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의 해이며 호국보훈의 달에 찾은 문수산, 그 특별한 기억에 의미가 새롭다.

글·사진/송수복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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