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스토리 마이라이프·6]치어스 대표이사 정한

고객만족 위해 뛰었더니 매출도 함께 뛰더라

이성철 기자

발행일 2013-06-18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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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한 치어스 대표는 벤치마킹하는 업소의 단점을 보고와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치어스는 여느 맥주 전문점 프랜차이즈업체들과 달리 주방장이 직접 요리를 하고 본사 방침에 어긋나면 즉시 교체해 가맹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노숙자 생활 끝에 다가 온 재기의 꿈

IMF로 개인사업 금융업 부도… 길거리 나앉아
부모님께 어렵게 받은 지원금으로 치킨집 인수
발품 팔아 익힌 운영 노하우로 매출 수직 상승

■'타산지석' 다른 가게의 돌을 옥으로 다듬다

하루 4~5곳 호프집 다니며 3개월간 연구·분석
벤치마킹 업소들 단점 파악해 개선하는데 주력
레스토랑급 인테리어·주방장 요리 '전략 적중'


호텔급 요리메뉴와 생맥주를 함께 즐기는 프리미엄 레스펍 치어스를 운영중인 (주)치어스 (대표이사·정한)는 지난 2001년 분당 야탑에 본점을 오픈하고 11년 사이에 가맹점이 6월 현재 350호점을 돌파했다.

치어스의 성장배경은 '맛있는 요리가 함께 하는 레스펍'이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일반 호프집들과의 차별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초창기부터 치어스는 일반 생맥주전문점이 아닌 레스펍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패밀리 레스토랑과 영국식 펍하우스가 결합된 단어인 레스펍은 무엇보다 요리의 맛과 질을 중시한다.

치어스 요리메뉴는 냉동식품을 데워주는 수준의 기존 호프집을 벗어나 본사에서 직접 파견한 전문 요리사가 주방에서 직접 메뉴를 만들기 때문에 신선함이 살아있다. 메뉴 종류도 한식에서 양식, 중식 등등 70여가지로 무척 다양하다.

치어스는 지난해 중소기업청이 주최하고 소상공인진흥원이 주관하는 '제6기 우수프랜차이즈 지정식'에서 가맹본부 특성, 가맹사업자 특성, 계약특성, 시스템 운영 특성, 관계 특성, 성과 등 총 6개 분야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아 3년 연속 우수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선정됐다.

또 국내 최대, 최고 권위의 프랜차이즈관련 상인 '한국프랜차이즈대상'에서 5년 연속 수상하고 올해는 특히 국무총리표창을 수상, 다시 한번 대한민국 대표 프랜차이즈업체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다.

정한 대표는 부동산과 금융업으로 재산을 모은 부모를 둔 그야말로 잘나가는 집안의 '철없는 아들'이었다. 일찌감치 미국으로 유학도 다녀왔다.

유학 당시 '인생 공부'에 더 집착했다. 그리고 이 인생공부는 지금 그가 프랜차이즈 기업을 운영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들의 인과관계에 얽혀 있는 흐름을 읽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통한의 노숙자 생활, 후회와 반성의 시간

성남 분당신도시 치어스 본점에서 만난 그는 실패 스토리부터 얘기했다. "외환위기를 맞은 1997년 겨울은 혹독했습니다.

인천 부평역과 주안역 역사건물 안의 얼음장 같은 콘크리트 바닥에 신문지 몇 장을 깔고 밤을 지새웠어요. 밤만 되면 밀려오는, 방탕했던 생활에 대한 회한은 추위보다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지난 1997년 그는 개인사업으로 시작했던 금융업이 IMF로 인해 부도가 나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철이 없던 시절 말썽을 많이 피운 대가로 당시 부모님으로부터도 외면을 받아 어디 한 곳 의지할 데가 없었다.

그가 부도가 나자 주변 친구들도 모두 외면했다. 인천에서 노숙자 생활을 해야만 했다. 피눈물이 났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보고 살아오던 지난날이 떠오르는 날이면 억장이 무너지곤 했다.

그렇게 노숙자 생활 1년이 흘렀다.

그는 1998년 7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번만 도와달라'고 부모님에게 간청을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어렵게 받아낸 5천만원.

그리고 1998년 10월 분당 서현역 인근에 있는 30㎡ 남짓되는, 테이블 5개 놓고 장사하는 치킨집을 인수했다. 벼랑끝에 몰린 그에게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의 갈림길이었다.

하지만 치킨집을 오픈하고 나서 며칠 지나자 소개해 준 부동산업자에게 속았다는 걸 알았다. 하루 40만~50만원의 매출로 월 500만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닭 튀기는 것조차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떠난 전 주인과 10만원 내외의 매출은 그를 다시 한번 위기에 몰아넣었다.

   

#재기(再起)에 나서다, 새로운 도전

그는 여기서 무너지면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씩 물어보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사를 익혀 나갔다.

그러기를 7개월, 1일 매출이 뛰기 시작하면서 150만원까지 올랐다. 스스로 익힌 음식 노하우와 매장 분위기 조성, 그리고 무형의 서비스 강화 등은 훗날 프랜차이즈 치어스 운영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사실 동네 치킨집들은 대부분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하지 않습니까. 저는 미국 유학시절 그 곳에서 받았던 서비스와 분위기 등을 현장에 접목했습니다. 비록 치킨집이지만 유명 레스토랑에서나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해 만족도를 극대화시켰습니다."

그는 예스맨으로 불렸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만족시켜 주려고 애썼다. 그러다보니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여름에는 4천만원, 겨울에는 3천만원까지 올랐다.

한달 순수익이 1천만원 가까이 오르자 2년여가 지날 즈음 그는 또 다른 도전을 구상한다. 막연한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는 호프집 오픈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하루에 4~5군데 이름있는 호프집을 다니기를 3개월, 맥주 맛과 안주, 그리고 분위기 등을 연구하고 분석했다. 망해가는 치킨집을 성공시킨 그는 자신감을 갖고 분당구 야탑동 아름마을에 약198㎡의 호프집을 오픈한다. 2001년 12월 드디어 '치어스'가 탄생했다.

   

#단점에 대한 연구와 분석. 그리고 성공

하루 100만원 하던 매출이 250만원까지 뛰었다. 한달 매출이 9천만원대까지 올랐다. 그가 전략적으로 내세웠던 요소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치어스에서 나오는 안주는 일반 생맥주 집에서는 먹어볼 수 없는 요리들이 대부분이다. 인스턴트 위주의 안주들이 아닌 주방장들이 손수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조리한다.

인테리어 역시 패밀리 레스토랑급으로 세련된 장소에서 요리를 즐기고 맥주를 마실 수 있어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성업중인 업소를 벤치마킹하러 가게 될 경우 대부분은 장점만을 가져와 자신의 업소에 접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정 대표는 벤치마킹하는 업소의 단점을 보고와 개선하는데 더 주력했다.

여느 맥주 전문점 프랜차이즈업체들과 달리 '치어스'는 직접 주방장이 요리를 하기 때문에 주방장의 중요성이 매우 높다. 본사 방침에 어긋나면 즉시 교체해 가맹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02년 분당 미금에 처음 분점을 낸 이후 1년 동안 단숨에 10개점을 단골고객들과 입소문에 의해서만 오픈시킨다. 별도로 홍보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치어스의 사업성에 대한 검증이 끝났기 때문이다. 당시 가맹비 등의 비용을 하나도 받지 않고 오픈해줬다.

   

#경영은 선택과 도전의 연속

프랜차이즈 업계가 많이 어려운 상황에서 치어스는 꾸준히 가맹점을 늘려가고 있다. 치어스는 유행을 좇아 단기간에 성장했다 사라지는 기획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라고 자신한다.

정 대표는 '초심을 잃지 말자'는 마음가짐을 늘 가슴에 안고 살고 있다. 가맹점이 늘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갈수록 처음 1호점을 오픈할 당시의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점포를 오픈하고 처음 찾아온 고객을 대했을 때의 그 감동, 그 고마움을 늘 기억하고 있다.

또한 경영은 선택과 도전의 연속이다. 사업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매 순간 선택과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럴 때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면 일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며 자신감을 가지고 정면으로 부딪쳐 도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 대표는 자신의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이제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국내 어린 선수들이 운동화가 없어 어렵게 훈련한다는 딱한 사정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올해 2월 대한민국중고육상경기연맹 회장직을 맡았다.

또 불확실한 경제 환경속에서 중소유통기업인들이 신속하게 적응하기 위해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는 중소유통 CEO와 소상공인들의 모임인 새미산(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산업인들)의 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계속해서 배우고, 뛰면서 성공 인생의 참맛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이성철기자
사진=조형기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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