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국정조사와 단상(斷想)들

   
▲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
정치권과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몇가지 의제는
한국사회의 성숙함과
지적능력·건강성을
시험하는 시금석들이다


여야가 국정원 대선개입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댓글 의혹과 수사개입 의혹에 방점을 찍는 민주당과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과 민주당의 이른바 '매관매직' 의혹에 무게를 두는 새누리당이 증인 채택부터 이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조사 범위와 의제(議題)도 최종 합의를 본 상태가 아니라서 순조롭게 진행될지 지켜볼 일이다. 지난 3월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할 때의 대상은 대선때의 국정원의 대선개입의혹사건과 경찰 수사에 개입했느냐의 여부, 경찰의 작년 12월 16일 댓글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축소·은폐에 의한 것이었느냐의 여부였다. 현재 이는 검찰의 불구속 기소에 따라 사법적 판단을 기다려봐야 한다. 그리고 6월24일 국정원이 2007년 남북정상 대화록 전문을 공개한 이후 국정원 사건과 NLL 대화록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진퇴를 거듭하면서 한 편의 반전(反轉)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국정원 사건과 NLL 관련 공방에서 국민과 정치권이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태의 핵심과 본질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본질은 첫째,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느냐의 여부다. 이는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문제다. 야당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야당 일각과 일부 진보 시민단체에 의해 이미 정통성에 대한 시비는 제기된 바 있다. 둘째, 국정원의 대화록 전문 공개의 적법성 여부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청와대와 교감없이 자신의 판단에 의해 공개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어떤 형태로든 교감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는 것은 단지 상식의 차원이며, 국정원이 보관하고 있는 대화록을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보느냐, 공공기록물로 보느냐에 따른 해석의 차이다. 이러한 본질적 쟁점을 덮고, 지난 대선때 새누리당의 정문헌 의원이 제기한 이후 대선 기간을 관통하면서 블랙홀처럼 여타의 정책 의제를 압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발언'의 존재 유무가 쟁투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여전히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 내용이 국정조사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쯤에서 집단지성과 이성적 공론(公論)이 작동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련의 상황 전개에서 본말의 전도, 본질과 지엽말단의 혼돈, 거시와 미시의 공존, 규범과 존재의 동거, 정치세력의 공학적 계산 등이 엉키면서 카오스는 국정조사 기간 내내 지속될 것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은 해소될 것인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과 개혁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얼마나 이루어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이념적 굴레를 씌워 전직 대통령의 발언을 '반역'의 대통령으로 몰고 가려는 정략적 발상의 적정성 유무에 대한 사회적 심판에 대한 합의는 단초라도 열릴 수 있는 것인가도 국정조사를 보는 관전 포인트다. 물론 이것도 국조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전제에서다.

이 대목에서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단상(斷想)들이 있다. NLL의 연원은 무엇이며 성격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지적 탐구는 진지하게 되고 있는 것인가. 103쪽에 달하는 대화록 전문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꼼꼼히 읽고 예단(豫斷)이라도 하고 있는 것인가. 발췌본은 전문과 어떤 면에서 다른가에 대한 성찰은 또 누가 얼마나 해 봤을까. 집단 의식의 발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을거라고 이미 단정짓고 전문을 읽거나, 보수적 관점의 언론이나 정당의 말에 일체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애당초 비판적 성찰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사회가 그 정도의 지적 정화(淨化)능력은 갖추지 않았을까. 그 정화능력과 집단지성을 가볍게 보는 곳은 정치권밖에 없다. 뜨거운 여름 못지않게, 정치권과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몇 가지 의제(議題)는 한국사회의 성숙함과 지적 능력, 건강성을 시험하는 시금석들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이념적 편향으로 몰고 감으로써 지지 세력을 결집하고, 색깔론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구태의 추방은 오로지 건강한 시민의 몫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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