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5]사진만 믿고 온 어린신부들 사기결혼 당하기도

1910년 미혼남 4천명-미혼여성은 600명… 하와이 노총각 사회문제

김민재 기자

발행일 2013-08-22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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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3년 신랑이 될 남성을 찾아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여성들. 1905년 고종의 이민금지령 이후 하와이 한인사회에서 노총각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이른바 '사진결혼'이 유행한다. /한국이민사박물관 제공
1905년 고종이 하와이 이민을 공식 금지하면서 '하와이 노총각' 문제가 심각해졌다. 1910년 인구조사를 보면 미혼 남성은 4천여명, 여성은 600여명이었다고 한다.

노총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비책이 바로 '사진결혼'이다. 하와이 노총각들이 자신의 사진과 뱃삯을 한국으로 보내면 중매쟁이들이 신부를 물색해 하와이로 보내는 것이다.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중매쟁이를 통해 약 700명의 여성이 신랑이 될 사람의 사진 한 장만 들고 하와이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신랑이 젊었을 적 사진을 보냈기 때문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신부들이 40~50대 신랑을 만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중매쟁이들이 사탕수수 노동자를 '은행가', '실업가', '대학생', '애국지사' 등으로 속이는 경우가 많아 한국사회에서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사진결혼'은 이혼율도 높았다고 한다.

여성들이 하와이로 시집오면서 초기 한인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됐고, 이들도 하와이 한인사회 개척에 앞장섰다. 이들 여성은 교회와 부인구제회 등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기도 했다.

/김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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