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문정왕후 어보 반환 이끌어낸 혜문스님

문화재 환수, 잃어버린 우리 진실을 찾는 것

민정주 기자

발행일 2013-09-25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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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스님. 그는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 반환을 요구할 때, 역사적·외교적 접근보다는 법률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문정왕후 어보 어떻게 되찾았나

2009년 처음 행방 알게된 후
美 기록보존소서 자료 발견

현지 박물관측과 지속 협상
'정전 60주년' 승부수 결실

■많은 사람이 뜻 모았다는데

안민석 의원 합세 '천군만마'
뉴욕 교민 응원·지지도 큰힘

7천만 겨레 함께 노력한 결과
모범적 반환운동 사례됐으면

■그동안의 소회와 계획

진짜 찾으려한 건 문화재 아냐
진실 믿고 찾았을때의 깨달음

중국 다롄 금강산 종 등 주목
4대 환수 목표 차근차근 진행


'포도밭의 보물'이라는 이솝우화가 있다.

한 농부가 게으른 삼형제에게 "내가 죽거든 포도밭을 파보아라. 그 속에 귀한 보물이 묻혀있다"는 유언을 남겼다.

농사에는 관심이 없던 세 아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부지런히 포도밭을 팠다.

그러나 온 밭을 파헤쳐도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들들은 실망했다. 그러나 잘 일구어진 밭에서는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고, 이를 팔아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보물찾기에 열심인 한 승려가 있다. 그런데 이솝우화의 세 아들과는 한참 다르다. 승려는 감춰진 진짜 보물을 찾아냈다.

그가 파헤친 것은 땅이 아니라 타성과 무관심에 젖은 인간의 마음이다. 그리고 찾은 보물이 지닌 진짜 가치가 세상에 주렁주렁 열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귀성객 3천500만명이 고향을 찾아가 추석의 풍요와 긴 연휴의 여유를 즐기고 있을 때 혜문스님은 미국 LA카운티 박물관(LACMA·라크마)과의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훔쳐간 조선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의 어보를 소장하고 있는 라크마가 이를 한국으로 돌려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지난 3년동안 이를 되찾으려는 혜문스님의 노력에 대한 답을 듣는 자리이기도 했다.

혜문스님과 그가 이끄는 문화재제자리찾기 회원들, 민주당 안민석 국회의원. 경희대 김준혁 교수 등 예닐곱명으로 꾸려진 협상단 주위로 기대와 긴장감이 소용돌이쳤다.

"라크마가 소장한 어보가 한국의 문화재라는 사실을 그동안 충분히 규명했으니, 반환 여부를 결정하고 만나자고 했어요. 추석 때가 벌써 5번째 미국 방문이었고, 이번에 승부수를 띄운거죠."

라크마는 지난 19일 문정왕후 어보를 조건없이 한국 정부에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추석선물 같은 소식이었지만 혜문스님의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올해가 정전 60주년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어보 반환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명확한 증거들과 함께 시기적 인연의 힘을 더한 거죠."

그가 이런 전술(?)을 통해 약탈당한 문화재를 되찾아온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국립대였던 도쿄대가 법인화된 2006년에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경술국치 100년이 되던 2010년에는 조선왕조의궤 반환을 이뤄냈다.

문화재를 찾아올 자료와 증거들이 완성되면 반환을 요구할 시기를 기다리고, 인연의 때가 되면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복을 입고 단정히 앉아 인연을 말하기에 앞서 그가 들려준 환수의 과정은 빼앗긴 것을 되찾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일깨웠다.

"2009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보고서를 통해 어보의 행방을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자료를 찾았죠. 미군의 문화재 약탈 범죄를 총정리한 아델리아 홀이라는 미 국무부 관료가 있어요. 미국에 뺏긴 문화재를 찾으려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인데, 그가 남긴 기록물을 본 한국인은 거의 없어요. 미국 메릴랜드 국가기록보존소에 보관된 '아델리아 홀 레코드'에서 '미국의 한국 문화재 약탈 현황'을 찾아냈어요. 라크마에 있는 문정왕후 어보가 미군의 약탈물임을 입증할 결정적인 기록이었죠."

증거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을까 싶지만,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다. 뉴욕에서 차로 5시간을 더 가야 하는 메릴랜드에서 입수한 기록은 500페이지 분량에 달했다.

마이크로필름에 담긴 선명하지도 않은 글자들을 수개월동안 읽어 내려갔다. 2011년 초에는 미국 볼티모어 선(The Baltimore Sun)지 1953년 11월 17일자에 실린 '종묘 어보 분실 사건' 기사도 찾아냈다.

그러나 그해 6월 라크마에 처음 보낸 반환요청서에 대한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이후 안민석 의원이 합세했고, 정전 60주년이 된 올해 1월 뉴욕 교민들과 어보반환운동을 시작했다.

8월 6일부터 한 달 동안 100인 위원회를 구성해 백악관 사이트에 10만명 서명운동을 벌인 '응답하라 오바마'라는 작전도 진행했다.
   

한 달 동안 10만명이 서명하면 오바마 대통령 혹은 백악관이 공식적인 답변을 하는 제도를 활용한 것이다. 10만명 서명을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을 확인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

안민석 의원도 큰 힘이 돼주었다. 지난 6월 국회에 문정왕후 어보 반환촉구 결의안을 제출했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상임위도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 바꿨다.

"7천만 겨레가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이번 일이 모범적인 문화재 반환운동의 사례가 돼 우리나라뿐 아니라 베트남 등 제3국의 문화재 환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바랍니다."

혜문스님의 문화재 제자리 찾기 활동은 지난 2006년 일본 교토에서 시작됐다. 일본에서 여러 달 머물던 그는 교토의 고서점에서 우연히 도쿄대 쓰에마쓰 교수가 쓴 '청구사초'를 발견했다.

이 책을 통해 도쿄대에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가 머물고 있는 봉선사 신도와 남양주, 구리 시민들을 중심으로 '문화재제자리찾기'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200여명의 회원과 함께 해외에 있던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실의궤, 문정왕후 어보를 되찾아왔다. 국내에서는 환구단의 일본식 조경 철거, 도산서원의 가짜 금송 표지석 철거, 국보 146호 강원도 출토유물의 명칭 정정 등의 활동을 이어왔다.

"우리 단체는 4대 환수 목표를 세우고 수년째 단계를 밟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보스턴 미술관 소장 라마탑형 사리구,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의 조선제왕투구, 일본 오쿠라 호텔의 고려 석탑, 중국 다롄의 금강산 종 등 4개 문화재를 주목하고 있어요.

이들 중 다롄의 금강산 종이 요새 가장 비중있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달 전 안민석 의원과 다롄 여순박물관에 방문해 직접 실물을 열람하고 다롄시 관계자와 면담하기도 했습니다. 다음번 환수될 문화재는 아마도 다롄의 금강산 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혜문스님은 정작 찾으려 했던 것은 문화재가 아니라고 한다.

보물찾기의 진짜 묘미는 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물이 있다는 진실을 끝까지 믿고 노력해 마침내 찾아냈을 때 얻는 기쁨과 깨달음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구도의 길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불교는 존재하지 않거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분명히 가지고 있으면서 어느 순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른바 중생이란 자기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사는 삶이라면, 구도자란 자기가 잃어버린 진실을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 경전인 금강경에는 이런 모습을 '환지본처(還至本處)'라고 말하는데 저는 이것을 '제자리찾기'라고 옮겨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취지에서 문화재제자리찾기는 단순히 한점 한점의 문화재를 찾는 것을 넘어서, 잃어버린 양심, 진실의 차원으로 이어지는 운동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글=민정주기자·사진=조형기 프리랜서

   

■ 혜문스님은…

1998년 봉선사에서 철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운정사 금모선원에서 수선 안거 후 현재 봉선사에서 수행 중이다.

2005년에 봉선사 말사인 내원암과 관련된 '친일파 재산 위헌 법률 심판 청구'를 시작으로 리움 박물관을 상대로 '현등사 사리구 반환' 운동을 전개하는 등 부당하게 반출된 불교 문화재 반환 운동에 참여했다.

현재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로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 환수 운동을 실천하고 있으며, 잘못된 우리 문화재의 진실을 바로 잡기 위한 연구 및 실천에도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 '조선을 죽이다', '의궤, 되찾은 조선의 보물',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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