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5]근대도시가 열리다⑧ 산업단지 (上)

땅을 고르고 바다 메우고 '수출 열정 합집합'

박석진 기자

발행일 2013-09-26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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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박성현기자
'인천 최고령' 부평국가산단 섬유·봉제업체가 주류 이뤄
시간 지날수록 업종의 변화 주안산단 기계류 집적화 특징
남동산단, 1980년대 LH 2단계로 공사… 입주경쟁도 치열


인천에는 3개의 국가산업단지(국가산단)가 있다. 남동국가산단, 부평국가산단, 주안국가산단이 그것이다. 이 중 부평국가산단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산단이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정책을 추진했다. 섬유, 봉제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수출에 앞장섰고,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공업단지 '구로공단'이 탄생했다.

수출 물꼬가 터지면서 구로공단 입주 희망자가 늘어갔고, 이는 금천구 가산동 일대 수출2~3단지, 부평국가산단(수출4단지), 주안국가산단(수출5~6단지) 조성으로 이어졌다.

부평국가산단과 마주보는 위치에 있는 수출5단지는 폐염전 지역을 매립해 만든 것이며, 수출6단지는 인천 비철금속공업단지로 땅 고르기 작업을 하던 중에 편입됐다.

1960~70년대 조성된 부평국가산단과 주안국가산단은 '수출전진기지화'라는 목표에 걸맞게 우리나라 초기 수출 효자 품목인 섬유, 봉제 업체가 다수 자리했다.

'똥물사건'으로 우리나라 노동사에 뚜렷한 기록을 남긴 동일방직도 부평국가산단 내 위치해 있었다.

부평국가산단, 주안국가산단 등과 같이 40~50년 전 조성된 산단은 그야말로 같은 업종을 밀집시켜 놓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보니 당시에 만들어진 산단은 공장 부지 외에 다른 용도로 쓰이는 땅이 없었다.

2000년대 들어 국가산단에 대한 구조고도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

근로자에 대한 처우, 근로 환경 등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며 산단 내에도 근로자를 위한 복지공간과 편의시설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외에도 부평국가산단과 주안국가산단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업종 변화를 겪었다.

산업 환경이 바뀌며 국가산단별 특성과 주요 업종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인데, 특히 주안국가산단은 대우통신, 새한미디어, 로얄동도 등 당시 대기업으로 불릴 만했던 기업들이 자리를 잡으며 기계 업종 집적화 특징을 드러냈다.

부평국가산단에는 전기, 전자 업종이 다수 모여들었다.

   

한국샤프가 이를 대표하는 업체다. 이외 커피 등 먹거리를 만드는 동서식품이 아직도 부평국가산단을 지키고 있다.

남동국가산단은 인천 내 국가산단 중 가장 늦게 조성됐지만,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인천 전체 산단을 놓고 봐도 남동국가산단 규모가 가장 크다. 약 957만㎡ 규모의 남동국가산단은 '중소기업 집합소'다.

가장 큰 공장이 1만6천㎡ 내외며 현재도 이 정도 규모를 가진 기업체는 5곳 정도다. 이외 대부분은 990~1천650㎡로 매우 영세하다.

남동국가산단은 알려진 대로 매립지다.

1980년 7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인천 남동지역 일대를 공업단지로 조성하기로 확정했다. 이는 서울지역 내 용도지역 위반공장을 이전하기 위함이었다.

용도지역 위반공장은 공해, 폐수 등을 동반하는 염색, 도금, 주물 등이 해당됐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기록에 따르면 서울 내 용도지역 위반공장은 7천559개였고, 당장 서울을 떠나야 하는 공장은 3천151개였다.

이 중 1천개 공장은 반월국가산단에서 수용이 가능했지만 나머지 2천100여개는 이전지 확보가 막막한 상황이었다.

강제 이전으로 다수의 공장을 문 닫게 할 수 없었던 정부는 남동국가산단을 조성해 이들 공장을 이전하기로 했다.

남동국가산단 조성 자금은 한국산업단지공단 자금과 국민투자기금으로 마련했다. 또 조성 공사 시행은 한국토지개발공사(현 LH)가 맡아 두 차례에 걸쳐 조성했다.

수인선 협궤철도(현 남동인더스파크역 등)를 기준으로 내륙 쪽 즉, 현재 인천상공회의소와 인천중소기업청 등이 위치한 쪽이 1단계 공사로 조성됐다. 바다 쪽 2단계 공사는 1986년 10월 시작돼 1992년 6월 끝났다.

남동국가산단은 당시 폐염전이 70% 이상을 차지했고, 나머지는 논·밭·구릉지였다. 1단계 공사 후 분양이 이뤄진 1989년에도 2단계 공사 지역에서는 모래와 자갈 등을 수차례 부으며 매립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1985년 1단계 공사가 시작되며 남동국가산단 분양과 관리 업무를 전담할 기관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대통령 경제비서관, 경제기획원, 건설부, 상공부 등이 관리 기관 확정을 위해 회의를 벌였고 인천시가 직접 관리하는 방안을 거론했지만 결국 경인지역 수출공업단지를 관리하고 있었던 한국산업단지공단이 남동국가산단 관리처가 됐다.

   

1989년, 남동국가산단 분양 업무를 맡았던 이순노 한국산업단지공단 인천지역본부장은 "정부로부터 이전 명령을 받은 공장, 수도권 과밀억제지역에 위치한 공장 등이 우선적으로 남동국가산단에 입주할 수 있었다.

입주 경쟁도 심했다. 분양 공고일에는 사무실 밖으로 길게 줄을 서는 일이 흔했고, 4대 1의 경쟁률도 심심치 않게 기록했다"고 했다.

그의 기억 속에서 남동국가산단의 예전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남동국가산단 조성으로 근로자 거주 시설, 숙소가 필요해지면서 연수택지, 논현택지 개발이 시작됐다.

남동국가산단 조성 이전에 남동지역의 아파트라고는 만수동 주공아파트가 유일했다. 매립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남동국가산단 끝 경계에는 바다가 맞닿아 있었다.

매립지이기에 정밀기계 공장은 입주가 어려웠고, 공업용수가 부족해 원단 가공 등 용수 다소비 업종은 입주 부적격 업종으로 분류돼 있었다.

이 본부장은 "지금은 남동국가산단이 매립지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조성 초기에는 공장 앞이나 길가에 심어 둔 나무가 누렇게 말라 죽고 일부 공장에는 금이 가는 등 염분기로 인한 피해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송도국제도시가 생기며 남동국가산단의 성격도 바뀌었다. 조성 초기는 바다를 낀 임해공업단지였지만 지금은 완전한 도심형 산업단지가 됐다"고 했다.

   

7개 일반산단중 후발 송도지식정보·검단산단 조성진행
개별 관리주체 효율적 총괄할 '인천산업단지공단' 시급


인천에는 국가산업단지 외에 7개의 일반산업단지가 존재한다.

인천기계산단과 인천지방산단의 태동은 도심내 공업시설과 주거시설 분리, 지역경제 성장을 주도할 업종 육성, 밀집화 등으로 비슷하다.

인천기계산단은 인천 시내 곳곳에 퍼져있던 소규모 기계 공장을 모으기 위해 만든 민간 공업단지다. 1968년 12월 기계공업공단설립기성회가 발족했고, 공업지정지역 부지정리공사 등을 추진해 기계산단을 조성했다.

인천지방산단은 1965년 10월, 남구 도화동 일대가 공업지역으로 지정되며 탄생했다.

하지만 본래 이곳은 개별적으로 자생한 공장이 몰려 산업단지를 이룬 것으로 목재·가구·금속·기계 등 다양한 업종이 골고루 섞였다.

현재도 이건산업·이건리빙·이건창호시스템·동부제강·태화금속·서울엔지니어링·현우산업 등 여러 업종의 기업이 생산 활동중이다.

송도지식정보산단·검단일반산단 등은 일반산단 후발 주자로 2000년대 계획적으로 조성 사업이 진행된 곳이다.

특히 검단산단은 검단신도시 사업 등과 맞물려 이전이 불가피해진 공장에게 부지를 공급하고, 새로운 산업 클러스터를 만들기 위해 조성됐다.

검단산단은 오는 12월 조성사업 완료를 앞두고 있으며, 현재 분양률은 73.4%(산업시설 면적 기준)다.

한편, 인천시는 2007년 도심 재개발 계획을 추진하며 '인천지역 산업 재생을 위한 공장 재배치 정비계획' 용역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일반산단 배치, 특화 업종 지정과 육성, 경쟁력 향상 방안 등이 담겼지만 아직까지 현실화된 내용은 많지 않다.

그해 발족한 인천산업단지포럼은 총 5차례 포럼을 통해 일반산단의 통합관리 필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인천산업단지포럼측은 "국가산단과 일반산단, 신규 산단 공급·관리를 책임질 가칭 인천산업단지공단을 세워야 한다.

산단별 관리 주체를 통합해 총괄관리체계를 만들어야 효율적인 단지 관리가 가능하며 구조고도화 사업 역시 일관성있게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박석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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