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인터뷰… 그]광교산 중턱… 30여년만에 삶터 옮긴 고은 시인

내 미래에는 수원귀신 하나가 있지
   
▲ 30년만에 수원 광교산 중턱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수원시민이 된 고은 시인.
■이사 소회 / 결심하게 된 계기

삶의 중요한 일 중 하나… 주민환대 감명
여러 지자체서 거처 관련 권유 있었지만
수원강연 당시 문우들의 덕담에 큰 영향

■어떤 삶 기대하나 / 목표가 있다면



화성·나혜석 거리의 밤 술집 등 찾아가
지역문화 대한 공부·관심 더하고 싶어
100여편의 성찰적 사색 담긴 작품 낼것


위대한 인물의 여정은 그의 업적에 버금가는 관심의 대상이다. 위인을 연구하는 이에게 그의 발자취를 되짚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위인이 사는 집앞에 피어있는 꽃 한송이가 명화로 다시 피어나 화가와 함께 영생을 누리기도 하고, 우연히 정착한 곳에 스쳐간 여인의 향기가 위인의 작품마다에 스며있기도 하다.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의 문제가 그 자체로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일도 많다.

그렇게 위인이 머문 자리는 마치 부부처럼, 위인과 함께 작품을 낳으며 친밀한 동맹 관계를 맺는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다시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서는 '노벨상에 대한 내 소감은 12년도 넘게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지'라고 짤막하게 답한 고은 시인이 '이사'에 대해서는 '인간의 일생 가운데서 가장 큰 일'중 하나라며 장안구 구민이자 연무동 상광교의 동민이 된 소감을 밝혔다.

경기도 안성에서 수원으로, 30여년만에 사는 자리를 옮긴 고은 시인의 '수원시대'를 들어보자.

오랜 공사를 마친 광교산 중턱의 새 집에서 고은 시인은 어수선하고 분주한 소란을 맞이했다.

국내외로 이동은 많이 해도 이사는 영 하지 않던 시인은 짐을 들이는 소란 가운데서 이사가 주는 마음의 소란을 풀어내보였다.

   
 
"이사를 한다는 것은 살 집을 새로 짓는 것과 어금버금이어서 인간의 일생 가운데서 가장 큰 일의 하나지요. 태어난다는 것 또는 죽는다는 것 그리고 한 인간으로 성장해서 누구와 만난다는 것을 아울러 생사대사(生死大事)라 하지요. 이사도 삶의 큰 일입니다.

30여년전 내가 늦은 결혼과 함께 서울생활을 안성생활로 바꿀 때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는데 그 기념비적이기도 한 안성시대를 마감하고 수원시대를 열어서 내 생애의 결정적인 시대를 연 것은 나에게는 하나의 궁극을 실현한 의미가 생겨납니다.

그간 국내의 여러 지자체에서 내 거처에 대해 권유가 있었는데 몇 해전 수원강연 당시 이 고장 문우들의 덕담이 씨가 되었고 시 당국의 진지한 인도(引道)로 발전해서 내 광교산의 일상이 구현되었어요. 무엇보다도 아내 이상화 교수의 실천적인 동의를 잊을 수 없습니다. 수원시민들의 더운 환영상황에도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고은 시인은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시는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전쟁과 분단, 가난, 민주화와 동행한 그의 청춘은 절망에 가까웠다. 승려생활을 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폐결핵'이라는 시가 조지훈의 천거를 받아 1958년 등단했고, 이후 타계해 작가가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만났던 특정 인물들을 다룬 연작시 '만인보'를 비롯해 수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작품은 세계 25개 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10년 넘게 매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전 세계 독자들이 그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이사를 다 마치지도 못하고 러시아엘 다녀와야 했다. 유럽에서도 고은 시인을 부른다. 독일에서 초청의 의사를 전해왔다. 프랑스 파리도 내년 봄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올봄에 독일 베를린에서 내년에 1년 체류로 와서 작품 하나를 쓰라는 초청을 받았는데 모처럼 수원생활이 시작된 터라 이 귀중한 초청을 사절할까 아니면 체류 기간을 단축하는 조건으로 응낙할텐가 고민 중입니다. 또 프랑스 파리의 명망있는 학교에서도 한국 문학 강좌에 초청하는 요청이 와 있습니다. 아직 생각 중입니다."

   
 
괴테와 헤르만 헤세 나라 독일, 낭만과 예술의 대명사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주저하다니, 수원에서 시인은 어떤 삶을 기대하고 있을까.

'칠보산에도 가고 화성에도 가고 나혜석 거리의 밤 술집에도 가고 서장대에도 오르내리고 박물관도, 많은 도서관도 찾아갈 것'이라는 계획과 함께 문학사와 함께 펼쳐놓은 이야기에서 수원을 대하는 그의 마음이 엿보였다.

"이동은 우리나라 수천년의 농경사회 정착 정서로는 모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본적지주의나 향토애가 짙어진 것이지요. 거기서 태어나면 거기서 묻히게 마련이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나라 시인은 고향에의 지향이 두드러집니다.

그런데요, 다른 나라 시의 세계는 반드시 그렇지 않기도 하지요. 예를 들면 단테는 피렌체의 시인이지만 그의 '신곡' 천국편은 망명지 베로나에서 살며 쓴 것이고 말년은 라벤나에서 살다가 그곳에 묻혔거든요. 그가 죽은 뒤 피렌체 실력자들이 단테 유해를 피렌체로 옮겨가려는 시도가 여러번 있었어요. 그래도 라벤나에서는 그 무덤을 비밀리에 옮기고 숨기고 하면서 아직껏 라벤나의 단테를 지켜냈습니다.

지금도 피렌체에서 무덤 내놔라 내놔라하고 야단이지만 라벤나 단테 재단은 강고하게 지켜나가지요. 태어난 곳이 대수냐 묻힌 곳이야말로 진정한 단테의 장소다! 라고 항변하고 있지요. 또 미국의 유명한 뉴잉글랜드 시인 프로스트도 그의 탄생지는 서부지요.

반대로 미국 서부의 시 황제라는 로빈슨 제퍼스도 본디 뉴욕 태생입니다. 그가 아내를 위해 지은 빅서의 돌집은 태평양 파도소리 속에서 의연히 남겨져 기념관이 되었지요. 고향의 미덕이란 고향에의 집착과는 좀 다른 차원이지요."

'내 미래에는 수원귀신 하나가 있지'라는 시인의 말에서 특유의 아이같은 웃음이 배어나올 듯하다. 앞으로 종종 수원시민들은 광교산 등산로에서, 도서관 서고에서, 나혜석 거리에서 시인과 마주치는 행운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2만여권의 책이 제 자리를 잡고, 주민의 얼굴과 동넷길을 익히고, 단골 술집을 정하기 전까지는 그에게 수원은 낯선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미 인문학적 깊이와 문학적 가능성을 꿰뚫고 있었다.

   

"문학은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 장강 하류 기슭에 루쉰이 있고 벵골에 타고르가 있듯이 어느 곳에는 어떤 시인이나 어떤 작가가 반드시 태어나거나 살거나 죽거나 하는 운명의 우연이 있게 마련이지요.

수원은 200여년의 꿈이 묻힌 곳입니다. 조선 후기 18세기 영정(英正) 르네상스라 할 문예부흥의 남은 꿈 말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진취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 근대 실학의 실천성이 뿌리내린 곳이기도 하지요.

다산의 설계가 화성 건설의 한 기본을 이루기도 했지요. 그동안 수원은 수도 서울의 복속으로 존재하기 십상이었다가 이제 경기도의 수도 면모를 세웠고 특히 지자체 자체의 능력과 의지 또는 물질적 조건들이 아울러 수원의 인문정신을 발현시키고 있습니다. 나는 이 고장의 탁월한 중견시인들을 내 친구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수원 일대의 지식인들이 베푸는 열렬한 우애와 덕성을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미력하나마 수원문화 전반에 대한 내 공부와 관심도 나날이 더해질 것입니다.

앞으로 내가 생각하는 광범위의 시민 인문화 운동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현재 집필중인 장시가 끝나면 '수원시편' 100여편의 성찰적인 사색이 담긴 작품이 나올 것입니다. 내 기대는 기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글 = 민정주 기자
사진 = 임열수기자

■고은 시인은

1958년 등단한 이래 56년동안 시, 소설, 평론 등 150권 이상의 저서를 펴냈다. 1952년 일본 조동종의 군산 동국사에 출가해 중장혜초로 부터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 승려가 되었다. 이후 10년간 참선과 방랑을 거듭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58년 '현대문학'에 '폐결핵'으로 등단했다.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내고 1962년 환속하여 본격적인 시작활동에 나섰다. 1986년 집필을 시작한 '만인보'를 비롯한 수많은 시집과 '피안앵(1962)' '어린 나그네(1974)' '떠도는 사람(1978)' '어떤 소년(1984)' 등의 소설집을 발표했다. 지난 2010년 '만인보'를 완간했다.
1974년 한국문학작가상, 1988년 만해문학상, 2002년 금관문화훈장, 2005년 노르웨이 국제문학제 비외른손 훈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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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주기자

zu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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