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명산을 가다]파주·양주·연천 감악산

하늘로 뻗는 붉은 빛… '岳'으로 지켜온 신의 정원

송수복 객원기자 기자

발행일 2013-10-11 제17면
글자크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링크
  • 메일보내기
  • 인쇄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메일전송
   
▲ 임꺽정 전설이 서려 있는 파주 감악산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임꺽정-6·25 격전의 무대
단풍 이어진 길 곳곳 상흔
예부터 '경기 오악' 손꼽혀
임진강·송악산 닿는 절경
하산길 장대한 조망 '황홀'


   
#값진 희생으로 지켜낸 역사

버스에서 내려 산행 들머리를 찾아 부대앞으로 다가간다. 문득 위병소에 서있는 초병의 모습에서 내 얼굴이 스쳐갔다. 25년 전에 나 또한 저들과 같은 모습으로 부대를 지키고 있었던 모습이다.

얼마 전 6·25 전쟁 관련 역사문화유산 5건이 문화재로 등록된다는 소식을 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감악산결사대 사당, 노르웨이군 전시병원, 포천 방어벙커, 태극단 합동묘지, 순국경찰관 합동묘지가 그것이다.

감악산결사대 사당은 1950년 6월 25일 감악산 설마리 계곡 일대를 중심으로 조직돼 북한군에 저항해 많은 전과를 올린 감악산결사대원 중 순국한 38명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며, 동두천시에 위치한 노르웨이군 전시병원은 6·25전쟁 중 미군 제1군단 예하 각 사단에 대한 의무지원을 하던 곳이며, 포천 방어벙커는 북한군 전차공격에 대비해 국군이 구축한 콘크리트 진지다.

고양시에 있는 태극단 합동묘지는 1950년 6월 말 결성된 태극단에서 활발한 유격활동을 전개하다 전사한 전사자의 합동묘역으로 조성된 곳이다. 논

산 소재 순국경찰관 합동묘지는 1950년 7월 18일 북한군과의 전투에서 순국한 강경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안장돼 있다.

그 중에서도 이곳 감악산 설마리계곡은 한국전쟁 당시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격전지였다.

1951년 4월,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인해 임진강 방어선을 격파당하여 후퇴한 영국군 글로세스터샤연대 1대대 병력 600여명이 설마계곡 입구의 275고지에서 포위돼 대부분이 포로가 됐다.

이때 67명이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고 59명이 전사, 526명이 포로가 됐다고 한다. 영국군은 3년간의 포로생활 중 또다시 34명이 사망했다.

세계전투사에는 사상 유례가 없었던 영국군의 고립방어전 사례를 '임진강전투'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1986년 마거릿 총리가 방한하였을 때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 신암저수지서 바라본 감악산.
#호젓한 산길에서 만난 이른 단풍

산길은 핏빛처럼 붉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를 지나 군데 군데 돌무더기로 참호를 만든 능선을 구불구불 이어간다. 표지판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범바위에 다가가니 작은 바위가 산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이곳까지는 그럭저럭 수월한 길이다.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잠시 내려섰다가 올려치니 송전탑이 코앞이다. 길은 다시 평온함을 유지하며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군유격장 표지판과 함께 길을 가로막은 철조망을 우회하여 가는 길 또한 평온하기 짝이 없는 길이다. 하지만 연이어 나타나는 봉우리들을 오르기 위한 숨고르기에 불과하였을 뿐 산길은 정상으로 가는 길을 그리 호락호락 내주지 않는다.

등산로에 설치된 난간을 붙들고 신음소리를 쏟아낼 즈음 540봉 직전에서 양주시와 파주시에서 중복해서 설치한 두 개의 표지판 앞에서 헛웃음만 짓는다.

540봉의 바위에 서면 640봉, 임꺽정봉, 장군봉, 감악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론 신암저수지를 가운데 두고 왼쪽부터 도락산, 불곡산, 고령산이 능선을 이루듯 서 있다.

이윽고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노송 너머로 원당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계단을 통해 올라선 장군봉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조망을 가졌다. 고령산 오른편으로 비학산과 파평산도 보여주는 곳이다.

   
▲ 임꺽정봉.
#봉우리마다 보여주는 기막힌 조망의 황홀함

양주감악정에 들러 햇빛을 피해 앉았다. 바람의 시원함보다 더 시원하게 펼쳐진 동남쪽의 산줄기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북쪽으로부터 종현산, 마차산, 소요산, 국사봉, 왕방산, 해룡산, 칠봉산이 줄지어 나타나니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키다 지칠 판이다.

다시 발걸음을 감악산 정상으로 옮기는데 흑염소 한 마리가 후다닥 도망가기 바쁘다. 이곳에서 방목하였던 때가 있었으니 그 시절에 도망나온 놈의 후손인지 모르겠다.

이윽고 도착한 감악산 정상은 축구시합을 하여도 될 만큼 너른 운동장이다. 북쪽으로 추강선생의 시구처럼 용의 포효함처럼 장대하게 흐르는 임진강이 있다.

북한땅을 지척에 두고 운무만 없으면 개성의 송악산도 보이는 곳인데 아쉬움을 남긴다. 그리고 이곳엔 의문을 간직한 채 감악산비(紺岳山碑)가 하늘을 배경으로 두고 서 있다.

빗돌대왕비, 설인귀비, 몰자비(沒字碑) 혹은 진흥왕순수비(巡狩碑)로도 불리는 비석이다. 1982년 동국대에서 이 비를 조사하였는데 정확한 물증은 없지만 비의 모양, 지정학적 위치, 추정 연대, 비가 서 있는 산 정상 등의 면에서 또 하나의 진흥왕순수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나 확실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가을 하늘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임꺽정봉은 경기 양주 불곡산 인근에서 태어난 임꺽정(林巨正)의 이름이 붙은 봉우리다.

물론 불곡산에도 임꺽정봉이 있으나 감악지맥을 타고 다녔을 테니 이곳 감악산에도 붙였을 거란 추측을 해본다.

하지만 이 또한 추론일 뿐 뒷받침해 줄 근거가 미약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삼국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으며 개성의 송악산, 서울의 관악산, 포천의 운악산, 가평의 화악산과 더불어 '경기 오악(五岳)'으로 불리는 산 봉우리에 임꺽정이란 이름이 붙었으니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용인에서 관광회사를 운영하는 박정환(46) 대표가 "고통스러운 희망고문을 택하기보단 발버둥쳐도 헤어날 수 없는 세태에 대한 통렬한 반항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는 작금의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이 더욱 혼란스러울 따름이다"라며 신암저수지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에 얼굴바위조망 쉼터에 앉아 임꺽정봉을 올려다본다.

사람의 얼굴을 닮은 바위가 병풍바위와 더불어 도드라져 보인다. 하늘을 향해 눈썹을 추켜올린 형상이랄까. 한껏 기운을 뿜어 내는 듯한 모습이다.

권력자들에겐 골칫거리였으나 백성들이 의적이라 불렀던 임꺽정의 기상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신암사터를 지나 저수지로 내려서니 감악산의 위용이 실로 장대해 보인다. 신(神)을 뜻하는 '감악'이 붙은 까닭일 게다.

/송수복 객원기자

송수복 객원기자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