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하는 범죄피해자를 위한 복지정책 실천

공정식

발행일 2013-10-15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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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식 한국범죄심리센터장
강력범죄 가해자들을 위한
사회복지제도는 잘 돼있는 반면
피해자들은 살아있어도 죽은거나
다름없는 고통의 삶을 살고있어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시스템을 구축 희망을 줘야한다


A씨는 35세로 중소기업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는 성실한 가장이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직장에서 퇴근하는 길에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두 딸을 생각하며, 피자를 두 판 사들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흥얼거리며 길을 걷던 중 집 앞 길목에서 술에 취한 젊은이가 한 여성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을 발견하고 젊은이를 붙잡고 때리지 못하게 말린다. 그런데 1분도 채 안 되어 A씨는 길바닥에 쓰러지고,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둔다.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던 아내는 도착할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안 되는 남편을 기다리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구급차와 경찰차가 스쳐 지나간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설마 그럴 리가 없어!' 하면서 다시 남편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해보지만 통화가 안 된다. 그로부터 30분이 지나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짜증이 확 밀려온 아내는 "왜 이제 전화하는 거야?"라고 언성을 높이고 있을 때, "저 여기 경찰서인데요. 남편 분께서 다쳐서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라는 말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멍해진다. 병원 도착 후 남편의 사망소식을 접한 아내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남편의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어린 두 딸을 혼자서 부양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사실 아내도 당장 내야 할 공과금 고지서와 월세, 그리고 아이들 양육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이제 남편의 일은 기억조차 하기 힘들다.

아내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직장생활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전업주부라 직장을 구하는 것에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도 엄마이니 일을 해야 한다. 식당에서 주방보조로 취업하여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겨우 150만원을 벌 수 있는데, 그 사이 아이들을 돌볼 수 없어서 어떤 때는 아이들을 거실에 두고 집 밖에서 문을 잠가두고 출근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르는 전화번호로 휴대전화가 울린다. "119인데요. 집에 불이 났습니다. 아이들은 병원에 있는데…, 빨리 와주세요." 부랴부랴 병원에 도착해서 응급실에 가려는데, 영안실로 가란다. 가족을 모두 잃은 아내는 기절을 한다. 아침 햇살에 눈을 떠보니 늙으신 친정아버지가 병실에서 안쓰러운 얼굴로 그녀를 쳐다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죽지 못해 하루를 살아야 하는 그녀는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의 이야기를 신문기사로 접하게 된다. 10년 전 살인을 저질렀던 사람이 출소한 후 독특한 아이디어로 자수성가하였다는 것인데, 가만히 내용을 들여다보니 남편을 살해했던 그 젊은이다. 그 젊은이는 교도소에서 직업훈련으로 여러 가지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출소 후에는 국가로부터 출소지원금을 받아 사업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신문에는 정장차림으로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멋진 모습의 사람이 그녀를 비웃듯이 쳐다보고 있다. 남편을 잃은 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이들마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낸 후 몇 번이나 자살시도를 했던 그녀의 과거들이 분노와 눈물로 변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그를 만나봐야겠다. 그런데 그를 만나겠다고 용기를 내다가도 다시 주저앉는다. 마치 내가 죄인이라도 된 듯이 도저히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그녀는 허름한 지하 단칸방에서 유서 한 장 남기지 않고 부질없는 목숨을 끊어 차가운 시신이 된다.

이 글은 실제 사건을 각색하여 작성한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강력범죄의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삶이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살아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는 이들의 삶에도 희망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업법상 범죄피해자는 지원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가해자는 지원대상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가해자를 위한 사회복지제도는 촘촘히 매우 잘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해자를 위한 교정교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범죄피해로 절규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장기간 지원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이 아닌 이상 누구나 언제든 범죄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정치인들이 표방하는 '정의롭고 신뢰가 두터운 사회!',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소홀했던 사람들을 진정 눈여겨볼 때 가능한 것이다.

/공정식 한국범죄심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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