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명산을 가다]안양·과천시 관악산

수줍게 올랐다, 붉은 치맛자락 두른 가을능선에

송수복 객원기자 기자

발행일 2013-11-08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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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冠)을 쓰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갓뫼 또는 관악산이라 불렸으며 불꽃같은 모양이어서 화산(火山)이라고도 부른다.
암릉·절벽 혼재 악산 국기봉 서면 과천 한눈에
'불의 산' 명성답게 너울대는 단풍 등산객 행렬
태조 이성계가 지은 연주암엔 효령대군 '흔적'


#과천시경계 종주대를 따라 가을 속으로

겨울을 재촉하던 비가 그치고 안개 자욱한 날이다. 과천시경계 종주를 위해 인덕원역에 모여든 이들과 잠시 환담을 나누는 사이 13년째 이 행사를 이끌고 있는 이경수(54) 시의원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 의원은 "과천시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시민들과 함께 자발적인 행사를 가졌던 것"이라며 애써 자신의 노력을 감추어 둔다.

이윽고 20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안양시와 과천시가 걸쳐져 있는 인덕원역을 떠나 관악산 자락으로 걸어가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비에 젖고 안개에 숨어든 산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국토지리원의 삼각점에 이르러 정재성(55) 과천시 향토사 연구원이 평촌신도시 개발의 측거점이 된 곳이라며 설명을 해준다. 안양시방향에서 올라온 등산객들과 합류되며 조금은 소란스러운 길이다.

관상약수터에 이르자 전주 이씨 익양군파 종중원들이 시제를 올리고 있다.

그러던 중 한 노인이 찾아와 약수터가 위치한 곳은 행정구역상 과천시에 속해 있으나 안양시에서 체육시설물을 설치하고 관리를 하지 않아 늘 쓰레기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며 하소연을 한다.

게다가 종중의 사유지에 별도의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시설물이 들어선 것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지만 시민들이 즐겨 찾기에 별도의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며 약수터를 이용하면서 쓰레기 문제만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연주대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붐비는 주말 아침의 관악산은 바위가 마치 관(冠)을 쓰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갓뫼 또는 관악산이라 불렸으며 불꽃같은 모양이어서 화산(火山)이라고도 불렀다며 정재성 연구원이 설명을 해준다.

발아래로 시원한 조망이 일품인 국기봉에 서자 과천시 일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안개를 걷어낸 햇살 아래로 가을산으로 파고든 색색의 물결이 일렁인다. 등산객들의 행렬이다.

관악산은 불의 산이라 하여 조선의 태조가 경복궁터를 옮길 당시만 하더라도 화기가 궁을 눌러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무학대사의 반대가 심했다 한다.

반면 정도전은 한강을 두고 있으니 화기가 건너오지 못할 것이란 주장을 하였는데 태조는 이를 수용하여 경복궁을 건설하였으며 대원군에 이르러 그 정문에 바다의 신으로 상상의 동물인 해태를 조각하여 두었다.

합천 가야산 대적광전을 불태우던 매화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그 정상에 소금을 묻는 것과 같은 이치였으리라. 가장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던 연주암에 도착하자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영정(경기도 유형문화재 81호)을 모신 효령각을 지나게 되었다.

신라 문무왕 시절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관악사라는 절이 지금의 연주암 절터 너머의 골짜기에 있었던 것을 태조 이성계가 신축하였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첫째, 둘째 형인 양녕, 효령대군이 셋째인 충녕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는 태종의 심정을 간파하고 전국을 유랑하다 연주암으로 찾아 들었는데 발아래로 보이는 왕궁에서의 추억과 왕좌에 대한 미련이 자꾸 떠올라 아예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기게 된 것이 지금의 연주암 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주암이란 이름 또한 이들 왕자들의 마음을 헤아린 세인들이 붙여준 이름으로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3층 석탑도 효령대군이 세운 것이다.

#정조의 효심이 깃든 삼남의 관문 남태령

연주암을 지나 관악사지에 도착하니 많은 등산객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산속에서 너른 평지를 만났으니 더할 나위 없는 쉼터인 셈이다. 일행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남태령으로 향했다.

지난 가을이 주었던 강렬한 추억을 찾으러 온 사람들과는 뜻이 달라서였는지 오롯이 걷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가는 곳마다 과천을 알리는 작을 표찰을 나무에 달던 송형섭(과천고 2)군이 학원을 가야하는 관계로 도중에서 하산을 하고 군부대 통제로 인하여 남태령쪽으로의 하산은 포기하고 인근의 용마능선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빈 하늘을 지키던 낡은 초소 위에 서서 연주대를 올려다보니 붉은 햇살이 온누리에 스미며 치맛자락 펴듯 퍼져가고 있었다. 12㎞에 이르던 길이 끝나가고 있던 것이다.

7시간여를 함께 걸었던 신현희(과천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회장, 54·여)씨가 "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여 과천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갔으면 좋겠다"란 말을 뒤로 하고 헤어지는 길 위로 집으로 향하는 분주한 발걸음이 이어진다. 아무렇게나 뒹굴던 낙엽들 사이로 명랑한 가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너울거리던 단풍도, 먹고 버린 과자봉지처럼 버려진 낙엽도, 만추엔 모두가 정겹던 시간속 존재들이었다. 은빛으로 서걱대던 억새 하나 구경하진 못한 길이었지만 함께 한 이들이 빛나던 시간이었다.

/송수복 객원기자

   

■산행 TIP

25억년의 나이를 지닌 화강암지대로 암릉과 절벽이 혼재되어 있어 다양한 코스를 이용하여 오를 수 있다. 등산로 전반이 바위와 마사토 지대이므로 우천시 산행은 가급적 피하고 등산화를 필수로 신어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

특히 6봉능선과 8봉 능선은 매년 인사사고가 끊이질 않는 구간이므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또한 산행시 등산스틱이 오히려 지장을 줄 수 있는 구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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