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경기도식 김치를 아시나요

   
▲ 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봄까지
무르지 않는
사각사각 경기도 김치,
요즘은
진한, 짭조름한 맛,
전라도식 김치에 밀려


무나 배추에 양념을 넣지 않고 통으로 소금에 절여서 묵혀두고 먹는 김치를 흔히 짠지라고 하는데, 황해도, 함경남도 지방에서는 김치 자체를 짠지라고도 한다. 또 경기도 지방에서는 무를 절이지 않고, 소금을 조금 넣어 삼삼하게 담근 김치를 싱건지라고 부른다. 오이를 짠지 비슷하게 담근 것은 오이지다. 이밖에 부추도 고춧가루와 젓갈로 버무려 김치를 담근다. 지방에 따라 부추김치를 솔지 또는 정구지라고 한다. 장아찌는 무, 배추, 오이 등 채소를 소금이나 간장에 절여 숙성시킨 저장식품을 말한다. 우리의 옛 조리서에는 장아찌를 장으로 담근 김치, 곧 '장지'라고 적고 있다.

짠지, 싱건지, 오이지, 솔지, 정구지, 장지(장아찌) 등에 붙은 '지(찌)'란 무엇일까? '지'는 16세기 김치의 옛말인 '딤채'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조상들이 불렀던 김치의 이름이다. 고려 중기의 시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김치 담그는 것을 '염지(鹽漬)'라고 했는데, '지(漬)'는 '적실 지, 물에 담글 지'로 풀이되므로 곧 '지'가 김치임을 추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려 말기가 되면서 '지'는 사라지고 '저(菹)'가 김치를 뜻하는 말로 떠오른다.



'딤채'라는 말은 조선 초기에 보인다. 1525년 '훈몽자회'는 저(菹)를 '딤채 저'라 풀이하고 있다. 그러면 '딤채'는 무엇일까? 이때의 김치는 고춧가루와 젓갈을 쓰는 오늘날의 김치와는 달리, 소금에 절인 채소에다 마늘 등 몇 가지 향신료만을 섞어서 채소의 수분이 빠져나오고, 채소 자체는 소금물에 침지(沈漬)되는 형태이거나, 동치미처럼 소금의 양이 많으면 마침내 가라앉는 형태였을 것이다. 여기에서 김치는 가라앉은 채소 곧 '침채(沈菜)'로 불리고, '침채'가 '팀채'로, 다시 이것이 '딤채'로 변하고, '딤채'가 구개음화하여 '김채'가 되었으며, 이것이 변해 오늘날의 '김치'가 된 것으로 추정한다.

김장철이 시작된다. 김장은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민족이, 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반찬인 김치를 추운 겨울 동안에도 끊이지 않고 먹기 위해 담그는 연중행사다. 김장김치는 채소가 부족한 겨울철에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는 우리 조상들의 슬기의 산물이다. 김장은 가라앉혀 보관한다는 뜻의 '침장(沈藏)'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한다. 곧 음운이 변화되어 '침장'이 '팀장'으로, '팀장'이 '딤장'이 되고, 이것이 오늘날의 '김장'으로 굳어진 것이다.

김장은 4도 이하일 때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예부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인 11월 말에서 12월 초인 입동 전후를 김장하기 제일 좋은 시기로 여겼는데, 이는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 등이 얼기 전에 하는 것이 좋고, 너무 따뜻할 경우 김치가 쉽게 시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기상청에서 매년 김장하기 좋은 날을 발표한다.(2013년은 11월 13일 발표) 그러나 김치냉장고가 개발되고 나서는 김장 시기가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으며 사시사철 채소가 나기 때문에 김장을 하지 않는 가정도 늘고 있다.

어머니는 늦가을이면 10여일 전부터 분주하게 김장준비를 하셨다. 우리 집이 김장하는 날이면 동네 어머니들이 함께 모여 부지런히 무채를 썰고 여기에 파, 마늘, 생강을 다져 넣고, 고춧가루와 새우젓으로 간하여 잘 버무려 배춧속을 넣는다. 속을 넣은 배추는 뒷마당에 파묻은 항아리에 차곡차곡 포개 넣는다. 김장을 끝내고 남은 자투리 무와 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고춧가루와 새우젓으로 버무리면 바로 섞박지이다.

친가 외가 모두가 경기도 토박이인 나는 어머니가 담그는 경기도식 김치에 익숙하다. 경기도식 김치는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고 새우젓만 써 삼삼한 얕은맛을 낸다. 경기도식 김치는 봄이 되어도 쉽게 무르지 않으며, 김치찌개를 끓여도 시원하다.

그런데 요즈음은 경기도식 김치는 찾아 볼 수 없고, 찹쌀 죽에 멸치젓이나 까나리젓으로 속을 버무려 넣은 짭조름하고 진한 맛을 내는 전라도식 김치가 대부분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서일까? 더욱 경기도식 김치가 생각나는 김장철이다.

/김학민 프레시안음식문화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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