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6]제2의 개항을 꿈꾸다 ⑥ 구도심 변화의 바람

부수고 내쫓는 재개발에서
원주민 누리는 공동마을로

김민재 기자

발행일 2013-11-28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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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박성현기자
■우각로 문화마을

개발 부진 '달동네'에 예술가 입주 마을전체가 작품 변신
사회적기업 '행복창작소' 성공적 운영

■괭이부리마을

구성원 대부분 노약자 환경 열악
기억을 살리는 주거지 재생 '100% 재정착' 작은 변화부터 시작


인천 구도심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재개발 지연으로 슬럼화가 됐던 남구 숭의동 우각로마을은 예술인 문화공간으로 변했다.

인천의 대표 쪽방촌인 동구 만석동 괭이부리마을에서는 주민 100% 재정착을 목표로 한 주거지 재생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이 두 마을은 '개발 중심'이 아닌 '주민 중심'이 되는 사업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 '달동네에 예술의 숨결을'… 숭의동 우각로 문화마을

재개발사업 지연으로 사람이 떠나고 있는 마을. 세 집 건너 한 집이 빈집인 마을.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한부모, 조손가정 등 저소득계층이 60%인 마을.

인천시 남구 숭의동 109 일대 '우각로마을'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이제 '옛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우각로마을이 '우각로 문화마을'로 변신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인전철 도원역 뒤편에 위치한 우각로마을은 865가구 1천752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달동네'다. 우각로는 마을로 향하는 길이 소뿔 모양처럼 굽었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재개발 사업이 추진된 지 십수 년간 별다른 진척이 없자 사람이 점점 떠나기 시작했고, 마을 주택 611개 동 중 152개 동이 공가로 방치돼 있다.

빈집은 노숙인 쉼터로 활용됐다. 쓰레기가 들끓는 낡은 가옥에 비행 청소년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쪽방 빈집이 낡아 쓰러지면 사람이 살고 있는 옆집에도 큰 영향이 됐다.

   
▲ 숭의동 우각로 문화마을 골목에 그려진 벽화.
2년 전 여름 숭의1·3동과 남구의제21, 지역 예술인들이 마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면서 우각로마을이 변하기 시작했다.

빈집을 예술인들의 작업공간으로 활용해 이 지역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나왔고, 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2011년 11월 주민, 문화예술인, 행정기관, 시민단체로 구성된 비영리 민간단체 '우각로 문화마을'이 조직됐다.

행정 기관은 빈집 주인들에게 연락해 무상 또는 저렴한 임대료에 빈집을 활용할 수 없겠냐고 제안했고, 예술계에서는 입주작가를 모집했다.

현재 연극, 사진, 미술, 영화 등 각종 분야별 예술가 12명이 입주해 실제 마을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입주하면서 마을은 변화를 하게 됐다. 골목마다 벽화가 그려졌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무너져 내린 담벼락 틈은 아기자기한 '레고' 조각으로 채워져 있었다.

빈집들은 도서관으로 바뀌었고,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됐다. 마을 군데군데 있는 긴 의자는 달동네를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좋은 쉴 곳이 됐다. 작가들의 집은 마을의 '사랑방' 구실도 하고 있다.

우각로 문화마을에 입주한 김종선 작가는 "서울에서 활동을 하다 지인 소개로 입주하게 됐다.

처음 빈집에 와서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8t트럭 2대 분량이 나왔다"며 "시끄러운 도심보다는 조용한 이곳 마을이 창작활동을 하는 데 더 좋은 환경인 것 같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예술가들의 입주로 변화된 숭의동 우각로 문화마을.
오은숙 우각로문화마을 사무총장은 "빈집에 사람이 들어가 살게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여러가지 문제가 해소되고 있다"며 "작가들이 각자의 예술활동만 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침체된 마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각로 문화마을을 활성화하기 위해 '행복창작소'라는 사회적기업도 만들어졌다.

도예공방 '자기랑', 무대장치를 제작·임대하는 'R-스테이지', 우각로 문화마을을 찾은 관광객이나 예술인이 머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등을 운영하면서 수익을 창출해 내고 있다.

'자기랑'에서 만든 쇠뿔 모양의 컵과 화분은 지난해 6월 인천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지역특성화 부문 동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행복창작소'는 최근 협동조합으로 운영체제를 변경했다.

이 마을 토박이이면서 우각로 문화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연태성씨는 "우각로 문화마을은 재개발 지연으로 침체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어 줬지만, 재개발이 다시 시작되면 사라져야 하는 운명"이라며 "작가들이 머무는 동안만이라도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정부와 지자체에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기억을 살리는 마을로'…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주거지 재생사업

인천의 대표적인 쪽방촌 동구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아카사키촌'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마을은 골목길을 '공동 마당'으로 삼아 마을 주민들이 서로 기대며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동네다.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은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소 노동자 숙소였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피란민 정착촌이었다. 1970~80년대엔 인천에 일자리를 찾으러 온 타지 사람들의 주거지가 됐다.

괭이부리마을은 전체 주민이 760여명이고 대다수가 노약자다. 주민의 8.5%는 기초생활수급자다. 건물 338개 동의 68%인 229개 동은 무허가 주택이며, 62개 동은 빈집으로 방치돼있다. 주민 대부분이 공동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으며,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인천시는 괭이부리마을 재정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너무나 열악한 환경 탓에 수십 년간 누구 하나 손댈 엄두도 내지 못했다.

   
▲ 199가구에 45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인천시 동구 만석동 2·9 일대 쪽방촌 전경. 인천 도심 속의 작은 섬으로 남겨진 쪽방촌 너머로 우뚝 서 있는 아파트들이 보이고 있다.
마을을 한꺼번에 철거해 개발하더라도 이곳 주민들은 다른 지역으로 갈 형편이 못됐다. 시간이 갈수록 낡은 마을은 붕괴나 화재 위험에 늘 노출돼 왔다.

이런 괭이부리마을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노후 주택이 있던 자리에 임대 아파트가 이달 초 들어섰다. 또 공원과 공동작업장을 만드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낡은 집들은 '리모델링'으로 바뀌고 있고, 공중위생 화장실도 새롭게 만들어졌다. 소위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괭이부리마을의 이 같은 변화는 전면 철거·재건축 방식에서 벗어나 마을의 특색을 보존하고, 원주민의 재정착을 최대한 이끌어내면서 진행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억을 지우는 도시개발사업'이 아니라 '기억을 살리는 마을사업'으로 주거지 재생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원주민이 100% 재정착할 수 있는 개발사업이라는 얘기다.

지난 26일 오후 찾아간 괭이부리마을에서 달라져 가고 있는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높이 6m의 방음벽으로 위압적이고 단절된 공간이었던 두산인프라코어 옆 도로에서는 재정비 사업이 진행 중이다.

회색빛으로 칙칙했던 방음벽은 벽화로 채워져 있었다. 주민들이 굴을 까거나 어구를 말리던 곳에는 앞으로 작은 텃밭과 다용도 평상이 조성될 예정이다.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일제식 목조건물에서는 창틀을 새로 갈아 끼우고, 시멘트를 덧바르는 등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었다. 만석비치아파트로 이어지는 곳엔 주민 공동작업장인 김치공장을 만들기 위한 기초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98가구 규모의 임대아파트 2개 동도 최근 준공돼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임대아파트 중 4가구는 순환용 임대주택으로 활용돼 기존 주택 개량사업으로 잠시 보금자리를 떠나야 하는 주민들에게 임시 제공된다.

하수관 교체, 건물 슬레이트 지붕 철거·교체 공사, 노후주택 개량사업 등이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노후주택이 있던 자리에 이달초 들어선 임대아파트.
주민들의 소통공간이자 공동작업장인 '희망키움터'에서 만난 주민들은 괭이부리마을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서서히 달라질 마을의 모습도 기대하고 있었다.

주민 고장선(80) 씨는 "오늘 살다 내일 죽더라도 제대로 된 곳에 살고 싶은 게 소원이었다"며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마을이 개발되고 보상비를 받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지 않다. 이 마을에 계속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김계순(86·여)씨는 "마을에 들어올 때 돈을 주고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받고 나올 생각도 없다. 지키고 있는 방이라도 있어서 계속 살고 싶은 게 소원"이라며 "조금씩 조금씩 하지 말고, 한꺼번에 개발이 됐으면 하는 마음도 물론 있지만, 마을이 변화되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천쪽방상담소 김용은 실장은 "어떤 분은 마을을 떠났다가 새로운 곳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돌아오실 정도로 이곳 주민들은 마을에 애착이 많고, 애초에 이곳을 떠날 여력도 없으신 분이 대부분"이라며 "전면적인 개발은 서로의 이해 관계가 얽혀 분쟁이 생기는데, 여기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주민 중심으로 여기 계신 분들이 떠나지 않도록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매우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인천시 하명국 주거환경정책관은 "괭이부리마을 가꾸기 사업은 아직 시작 단계에 있다"며 "앞으로 마을공동체 회복과 자활을 돕는 공동이용시설을 확충하고 주민과 함께 마을 자원을 개발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 = 김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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