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원 가천길병원연구원장, 당뇨내분비센터장 |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기에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게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는것
모든 균들을 제거하기보다
병원균만 박멸시키는 전략 필요
항생제가 발견되기 이전의 전쟁을 기억하는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많은 요소가 있지만, 그중에서 전염병이 중요한 변수가 될 때도 많았다. 국가의 운명이 바뀌는 상황이다. 인류역사상 흑사병은 가장 큰 재앙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기록이 되지는 않았어도, 원시 시대의 수 많은 부족국가들이 전염병에 의하여 멸종되었을 것으로 추정하여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근대의학의 가장 큰 개가중 하나는 세균학의 발전과 항생제의 발견이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갈림길도 상당 부분 여기에서 기인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세균(병원균)과의 전쟁에서 완벽한 승리를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세균을 완전하게 박멸(멸균)하면 건강이 완벽하게 보장될 것으로 믿어왔다. 질병 치료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념은 일반 생활에도 깊이 뿌리내린 생각들이다. 식기 세척, 손 위생, 집안 청소, 건물의 상태 등 모든 분야에서 멸균의 완벽성을 건강하게 만드는 환경의 척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항생제 내성'이 문제가 되면서 감염치료가 어려워지고 있다. '슈퍼박테리아'의 출현이다. 이들을 퇴치하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들을 죽일 수 있는 항생제 개발이 일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는 항생제 남용을 경고하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항생제의 '남용'과 '적절한 사용'을 결정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항생제 사용의 시기를 놓치면 질병을 악화시킬 수 있어서 진료 현장에서는 항상 고민하면서 결정한다. 항생제 사용으로 생기는 질병치료 효과와 부작용간의 손익계산이 항상 명쾌한 것은 아니다.
항생제 내성은 세균이 생존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지구 어디에 존재하는 생물체이든지, 생존하기 위한 방어 수단을 개발하는 것은 일반적인 자연법칙이지,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항생제는 병원균을 상대로 개발하였지만, 병원균들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하여 항생제를 비껴갈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여 항생제에 대응한다. 이렇게 출현한 균들을 우리는 '내성균'이라고 한다. 자연의 모든 생물체는 자연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유해하기 때문에 병원균에게 주어진 권리를 박탈할 수 있을까. 박탈할 수도 없고, 박탈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병원균에 당하고 말 것인가.
우리 몸중에서 외부와 통해 있는 부위, 즉 피부, 코, 입, 기관지, 위장관 등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수 많은 균들이 존재한다. 장내 세균만도 1천종류 이상에, 100조원 이상의 숫자이다. '위생결벽증'을 가진 사람들은 당장 목욕 횟수를 늘리고, 장 세척을 위하여 병원을 찾아갈 지도 모른다. 화장실의 손고리를 멸균제로 빡빡 세척할 지도 모른다. 최근에 의학적으로 흥미로운 현상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 소아 당뇨병의 중요한 원인으로 바이러스 감염을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바이러스를 먼저 감염시키고, 나중에 원인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면 당뇨병이 안생기고 오히려 당뇨병 예방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어리둥절한 소식도 있다. 어떤 종류의 감기-폐렴 바이러스는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파괴시킬 수 있다는 소식도 있다. 어떻게 해야될지 혼돈스럽다.
우리 몸에 또는 자연에 존재하는 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보자. 우리 몸에 존재하는 균들은 대부분 결코 우리의 적이 아니다. 어떤 균은 그냥 스쳐가는 '나그네'일 때도 있고, 어떤 균은 서로 무관심하게 사는 '그냥 있는 이웃'일 수도 있고, 어떤 균은 우리의 '동료'일 수도 있다. 동료의 의미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동료 세균은 우리에 필요한 영양소도 공급하고, 외부에서 침입하는 병원균으로부터 우리를 적극 보호해주는 전투병 역할도 한다. 항생제는 병원균도 죽이지만 때로는 무차별적으로 동료 세균도 죽인다.
우리 몸은 오랫동안 인간들과 함께 살았던 세균들과 적절한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상의 건강상태일 것이다. 모든 균들을 박멸시키는 전략은 인간에게 이롭지도 않고, 이길 수 있는 전략도 아니다. 우리 몸에 정상적인 세균총을 유지하면서 병원균만을 선별적으로 제거하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김광원 가천길병원연구원장, 당뇨내분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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