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늙으신 어머니를 상담하다

   
▲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노일을 위한 진정한 상담은
가까이 지내면서 옛 기억도
죽음이 뭔지도 잊고 살게끔
바쁜 일상으로 채워 드리고
좋든 실든 얼굴 맞대고
옆에 같이 있는 최선이다


타지에 사는 탓에 여든이 훨씬 넘은 어머니를 명절이나 제사 때 말고는 보기가 쉽지 않다. 전화로 자주 안부를 묻지만 늘 성에 차지 않는다. 다른 자식들이 같은 고향에 살고 있는데도 유독 혼자 사는 것을 고집한다.

집안의 형은 그게 못내 안쓰러워 최근에는 아파트 가까이에 방을 하나 얻어 수시로 음식과 반찬을 해 나르면서 들여다본다. 그래도 남이 봤을 때는 영락없이 독거노인이다. 노인이 혼자 밥해 먹는 게, 말벗이 없어 종일 티브이를 보면서 지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든 넘은 어머니의 삶은 거의 공황상태라 할 만하다. 혼자 밥 먹고, 주위엔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많고, 미래 계획도 없고, 거동하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눈물이 날 것이다.

전화로는 바쁘지 않느냐고 하면서도 한번 말문을 열어놓으면 끝이 없다. 며칠 전에는 집안에 일이 있어 내려갔었는데 시무룩하신 게 화가 난 듯하다. "너는 자식이 되어 오랜만에 어미를 봐도 손도 한번 잡아주지 않는구나." 속이 뜨끔하여 가까이 앉아 열심히 손등을 쓰다듬고 손가락도 만져드렸다. 늙은 자식이 하는 속내가 뻔해 보일 듯 한데도 이내 웃으신다.

시조 시인 이종문의 '효자가 될라카머-김선굉 시인의 말'이라는 시가 재미있다. "아우야, 니가 만약 효자가 될라 카머. 너거무이 보자마자 다짜고짜 안아뿌라. 그라고 젖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너거무이 기겁하며 화를 벌컥 내실끼다. 다 큰 기 와 이카노, 미쳤나, 카실끼다. 그래도 확 만져뿌라, 그라머 효자 된다." 언젠가 이 시를 읽고는 나도 한번 따라 해봐야지 했는데 확신이 서지 않아 그랬는지 젖은 둘째고 손도 한번 잡아드리지 못한 꼴이 되었다.

고향에 가면 어머니와 잠시지만 의도적으로 가까이 있으려고 한다. 처음엔 네 방에 건너가 일찍 자라고 하지만 내심은 같이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것을 잘 아는지라 옆에 드러눕는다. 요새 만나는 이웃집 할머니 얘기며 경쾌하게 진행되던 얘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자동으로 옛날로 돌아간다. 나이 든 어머니는 옛날 기억으로 산다. 현재적인 삶에 더 이상 매력을 갖지 못한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마저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유한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의 상담학과 교수로 있기 때문에 열심히 들어주기를 한다.

노모 상담이 시작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들어주기' 상담도 밤 한두 시가 넘어서면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진다는 데 있다. 어머니 얘기를 다 들어드릴 테니 절대 백번 정도 했던 얘기는 하지 말자고 약속을 했건만 이내 소용이 없다. 노모의 감정이 격해지고 나도 짜증이 나서 같이 흥분해서 소리를 높이게 된다. 베개를 들고 내 방으로 와버리면서 상담도 깨어져 버린다.

어둠 속에 누워 후회한다.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는 것 하나도 못하면서 무슨 명상치유를 하며 인간주의적 상담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 핵심감정을 찾아내면 문제 해결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도 이 무슨 들어주는 일조차 못하는가. 상담이란 연민을 갖고 타인의 고통을 읽어내는 데 있다.

그런데 그 고통과 같이 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여든 넘은 어머니는 살아있음 자체가 고통인 듯하다. 푸념과 한을 듣고 이곳저곳 아픈 데를 보다보면 사람이 고통을 지닌다는 말이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몸 밖으로 고통이 새어나오고 터지는 듯하다. 상담해서 될 일이 아니다. 노년의 어머니의 고통이 나에게로 너무 쉽게 옮겨오기 때문이다.

집안의 형은 언젠가부터 어머니와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는 식의 문제해결식 처치방법을 사용하는 것 같다. 분명 한 수 아래인 상담인데도 실효성은 더 있어 보인다. 그 속에는 전통적인 효도가 자리하고 있다. 가까이 있으면서 손 잡아드리고 음식 챙기고 불편한 일들 뚝딱뚝딱 고쳐드린다.

노인을 위해 진정 좋은 상담은 가까이 지내면서 옛날 기억도 나오지 않게, 죽음이 뭔지도 잊고 살게 지금의 바쁜 일상의 일로 가득 차게 해드리는 일이다. 옆에서 같이 얼굴을 대하고 좋든 싫든 현재적 삶으로 채워드리는 것이다. 고독과 우울의 해결은 사람 옆에 사람이 같이 있는 게 최선이리라. 가끔씩 나타나 느긋하게 옛날 얘기를 들어준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늙어가는 일은 상담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박연규 경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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