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환자 사이에 '따뜻한 신뢰'를 기대하며

김광원

발행일 2013-12-24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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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원 가천길병원연구원장·당뇨내분비센터장
현대사회는 모든 현상을 단순화
기계화 또는 객관화 시키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진료실에서도 환자와의 믿음이
점점 사라지는 의료환경을 보니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수많은 의사들이 모여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집단행동이 있었다. 의사인 나 자신의 한없이 초라한 모습에 매우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다. 의사들은 정부의 정책이 불합리하다고 한다.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개원가의 위축으로 결국은 의료체계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시행하고자 하는 원격진료는 의료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제기되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지만, 이러한 것들은 상당 부분 낮은 의료수가가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정부는 의사들이 주장하는 문제들을 충분히 검토보완하였고, 의사와 환자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했었다. 그러나 의사들의 대규모 집단행동 이후에는 정책강행에 다소 주춤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정부 정책의 내용, 방향 그리고 결과를 알 수 없는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정부에서 시행하고자 하는 정책이 무엇이기에,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을 위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의사들은 정부의 정책은 의료체계의 붕괴로, 결국은 의료의 실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들은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 알 수가 없다. 의사들이 오죽하면 저 정도로 죽기 살기로 반대하겠는가. 일부 일리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지금도 '잘 버는(?)' 의사들이 또 자기 몫을 챙기려는 이기적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의사는 무엇을 하는 직업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의료행위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였다.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에서도 일어나는 보호 본능이다. 아프고 고통받는 것에 대한 해결책이 의료행위다. 환자 스스로가 해결할 수도 있고 타인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의사는 아프고 고통받는 환자를 도와 주는 교육받은 전문가이다. 진료행위는 환자의 고통을 청취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환자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감정은 매우 복합적이다.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자신의 고통에 솔직할 수도 있고, 고통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또는 부끄러운 고통은 의사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이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는 따뜻한 마음이 없이는 환자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적인 신뢰는 직감에 의하여 결정된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따뜻한 신뢰'가 없이는 진료가 제한적이 되고, 때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의사 교육의 많은 부분은 환자에 대한 측은한 마음,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인간관계, 의료윤리 등이 특별히 강조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엄청난 과학적, 의학적 발전으로 의료행위에 대한 개념이 송두리째 바뀐 듯하다. 신체에서 일어나는 신호정보의 실시간 추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의 정보로 부족하면 몇 개의 생체정보를 종합하면 환자의 질병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가장 간편하게 측정할 수 있는 혈압을 통한 고혈압, 혈당을 통한 당뇨병 등이다. 혈압과 혈당이 변하는 것은 신체의 많은 생리현상의 종합적 현상이다. 고혈압, 당뇨병 환자라고 하여도 하나의 질병이 아니고, 서로 다른 '질병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현대 사회는 모든 현상을 단순화, 기계화 또는 객관화시키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진료도 이러한 흐름에서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혈액을 통한 진단 방법, 영상기계를 통한 신체의 병리학적 변화, 손상된 장기를 교체하는 재생의학 등의 획기적 발전으로 대단한 의학적 성과를 이룩하였다. 일반인은 물론이려니와 상당수의 의생명과학자들도 질병의 대부분을 과학적 기술로 해결될 것으로 믿고 있다.

많은 경험있는 의사들이 걱정하고 있다. 의료행위가 '인간의 기계화'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염려이다. 진료는 고통을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마주 보지않고 환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대면진료가 없으면 진료행위라고 할 수 없다. 진찰실에서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따뜻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의료환경은 점점 따뜻한 신뢰를 찾기가 힘드니, 참으로 답답하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

/김광원 가천길병원연구원장·당뇨내분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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