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를 믿습니까

경인일보

발행일 2014-02-03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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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설날 밥상위 이야기 보따리는
금융기관의 카드개인정보 유출
정부 조류인플루엔자 대응책
기대 저버린 국회 정치개혁 등
여전한 '저신뢰 사회' 입증뿐…
이제 국민은 누구도 믿지 못한다


엊그제가 설날이었다. 가족 친지들이 모여 설날 밥상 위에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서로의 근황을 묻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결국 화제는 카드개인정보유출 사건으로 향했다. 어느 누구 하나 정보가 온전한 이는 없었다. 정보유출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정부와 서로 간에 대한 불신이 쌓였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머릿속에 1998년 설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97년 말 IMF 경제위기 직후의 명절이었다. 친척들 상당수가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친지들은 졸업 후 자신의 진로에 대해 한숨만 내쉬던 기억이 오롯이 남아있다. 당시 IMF 경제위기에 대한 원인분석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했던 것이 '저신뢰사회'라는 평가였다. 직접적으로는 외환 유동성 문제였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 내부와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문제가 도마에 올랐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포드대학 석좌교수는 그의 저서 '신뢰(Trust)'에서 '경제활동의 대부분은 신뢰를 바탕으로 일어나며, 사회적 신뢰는 거래비용을 줄임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경제적 자산'이라고 설명한다. 동시에 한국 사회를 '저신뢰사회'로 지목한다.

카드개인정보유출 사건으로 인해 여전히 한국사회는 '저신뢰사회'로 입증되었다. 아무리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창조경제를 반석에 올려도 믿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1월 2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사회의 신뢰는 100점 만점에 57.39점으로 나왔다(전국 1천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 95%신뢰수준 ±3.1%P). 특히 30대는 우리 사회 신뢰도를 가장 낮은 51.36점으로 평가했다. 사실상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 불신 사회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 신뢰도를 낮게 평가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사회의 투명성에 있다.

못 믿는 사회로 만든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큰 책임은 우리 사회 지도층에게 있다. 지도자가 되려고만 했지 단 한 번도 국민에게 제대로 된 믿음을 안겨주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신뢰하느냐는 질문(10점 만점)에 국민의 대표회의인 국회는 3.4점으로 최저수준이었다. 행정부는 겨우 중간 턱걸이한 5점이었다. 카드개인정보유출로 혼쭐이 나고 있는 금융기관은 중간에도 못 미치는 4.7점이었다. 여야 정쟁 현안뿐만 아니라 대기업 비리 근절 및 사회 기강을 주도해야 할 사법부 역시 중간에도 못 미치는 4.6점이었다.

'저신뢰사회'의 피해는 단순히 구성원간의 불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신뢰 회복 없이는 본격적인 경제성장도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거래는 너무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해야만 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거래 비용으로 인해 창조경제는 고사하고 불신경제의 '늪'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추가적인 개인 정보는 시중에 유통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국민들은 믿지 못하고 있다. 너나할 것 없이 카드를 재발급 받거나 해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모되는 비용과 시간은 얼마나 될 것인가. 정부에서는 조류 인플루엔자 대응 관련, 닭과 오리를 익혀 먹으면 안전하다고 하지만 국민들은 제대로 믿지 못하고 있다. 진실과 거짓이 구분되지 않음으로써 온갖 루머가 사실 확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국민들을 위해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믿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수를 늘리기로 하는 등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은 개인정보를 수집하면서 절대 안전하게 관리할 것이라고 수도 없이 다짐했지만 결국은 공염불(空念佛)에 불과했다.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했지만 국민들은 이미 누구의 약속도 믿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법과 원칙'보다도 '법과 원칙'을 인정하고 믿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신뢰가 먼저다. 남북관계를 개선할 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 '신뢰' 역시 누구의 신뢰인가. 후쿠야마 교수는 '한 사회에서 신뢰야말로 부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라고 했다. 믿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한국사회다.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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