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죄의 공소시효 전면 폐지해야

공정식

발행일 2014-02-04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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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식 한국범죄심리센터장
살인은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가장 흉악한 행위로 법논리나
학설·행정 효율성 등 이유로
공소시효 적용은 매우 부당
신뢰하는 인간사회 유지를 위해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얼마 전 공소시효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아동살인사건의 유가족들이 절규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2008년 이후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은 12건이 넘는다. 이제 범인을 잡아도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살인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피해유가족에게는 또다시 2차 피해를 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 일을 국가가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형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25년이다. 다만, 13세 미만의 사람 및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 장애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강간죄, 강제추행죄, 준강간 및 준강제추행죄, 강간 등 상해·치사죄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반면에 일본은 2010년 4월 살인, 강도살인 등 12가지 중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모두 폐지한 바 있고, 영국과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도 계획적인 살인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중국이나 독일의 경우에도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30년으로, 우리나라보다 살인죄의 공소시효기간이 더 길다.

공소시효를 둔 이유를 보면, 법적 안정성 도모, 시간의 경과에 의한 증거판단곤란, 사회적인 관심의 약화, 피고인의 생활안정 보장 등인데, 요약하면 행정의 효율성과도 관련이 된다. 즉 해결되지 않은 장기 미제사건을 수사기관이 떠안고 있을 경우 받게 될 행정상 부담을 줄여주자는 것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범죄건수를 생각하면 행정의 효율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는 살인범죄만큼은 행정의 효율성 등을 이유로 공소시효를 두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판단된다.

학자들은 법논리와 다양한 학설을 통해 공소시효에 대한 찬반의견을 제시한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법적용, 이론적으로 견고한 체계를 가진 학설을 바탕으로 제시하는 공소시효 찬반 논쟁 전에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개념이 있다. '살인'은 고의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박탈하는 가장 극단적인 범죄행위이다. 이는 어떠한 법논리나 학설을 통해 공소시효 유지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전에, 인간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핵심을 훼손하는 흉악한 행위라는 점에 더욱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인간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살인행위에 대하여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야 하는 것이다. 살인은 어떤 이유로도 죄를 없애줄 수 있는 범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학자들의 주장보다도 국민들에게 더 실감있게 다가오는 것은 대중언론매체라 할 수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영화다. 살인피해의 유가족들이 느끼는 감정을 반영한 영화 '몽타주', '나는 살인범이다', '공범' 등을 보면, 살인범죄의 공소시효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고, 영화를 본 대부분의 국민들도 살인범죄의 공소시효 폐지에 공감할 것이다. 이 영화들의 배경이 된 사건들은 개구리소년실종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형호군 유괴 살인사건 등이다. 현재까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지만, 지금도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살인사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얼마전 만났던 현직 경찰관은 이렇게 말했다. 여동생이 꽃다운 나이에 살해당했는데, 당시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았으며, 부모님이 그 사건에 매달리면서 많은 고생을 하는 모습을 보다가 그 여동생의 남매가 모두 경찰관이 되었고, 그 이후 남매가 그 사건을 개인적으로 수사했으나, 이제는 공소시효가 지나서 더 이상 수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이 말을 전하면서 차오르는 울분을 삼키고 있었다. 살인피해의 유가족들이 느끼는 참혹한 고통이 작게나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살인범죄는 인류역사상 가장 흉악한 행위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류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고 신뢰하는 관계를 형성해가기 위해서라도 살인범죄만큼은 이유를 불문하고 반드시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하는 것이다. 법이나 학설들은 인간다운 가치를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수단적으로 만들어진 추상적 개념들이다. 따라서 인간다운 가치들은 모든 사람들이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 수단적 개념들은 악한 자보다도 선한 자에게 유리하게 작동되었을 때, 인간다운 가치 중 하나인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다.

/공정식 한국범죄심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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