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와 '왕따'의 차이

공지영

발행일 2014-04-10 제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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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영 사회부
'왕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 사회의 반응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 일본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지메가 한국에서도 일어났다며, 일회성 화젯거리 정도로 넘어갔다. 그렇게 눈을 감은 사이 왕따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왕따는 어느새 괴롭힘까지 당해야 하는 '학폭'(학교폭력)으로 변질돼 청소년 범죄의 대표가 돼버렸다.

도내 대학생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다행스럽게도 학생들은 왕따와 아싸를 다르다고 생각했다. 왕따는 타의에 의해 외톨이가 되고, 심하면 괴롭힘까지 동반되지만, 아싸는 어느 정도 본인의 의지가 가미돼 혼자 생활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본인이 노력만 한다면 얼마든지 아싸를 벗어날 수 있다는 의견도 다수를 차지했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와 학생들은 아싸를 두고 타인에게 종속되지 않고 자유를 만끽하는 신(新)인간유형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교 현장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하면 할수록 아싸는 '신인류'라기보다 '난민'에 가까웠다. 우리가 만난 진짜 아싸들은 하나같이 '혼밥'과 '독강'을 괴로워했다. 학점, 취업 등을 위해 자발적으로 아싸가 됐다는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 공동체의 붕괴로 등록금, 학과 통폐합 등 대학내 문제조차 학생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은 차치하더라도, 대학 심리상담소마다 대인관계의 고통을 호소하는 아싸들로 넘쳐날 만큼 이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집단주의 문화가 지배하던 한국사회에 개인의 삶과 행복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최근의 사회 분위기가 아싸현상에 한몫했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타인과 소통하지 못한 채 외딴 섬처럼 홀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옳은 가치가 될 수 없다.

아직까지 아싸는 신인류일 뿐이다. 굳이 사회병리적 시각으로 아싸를 해석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이대로 방치하면 왕따가 학폭으로 변질되었듯, 언젠가 아싸도 변할 수 있다. 아싸와 왕따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공지영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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