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영원을 꿈꾸다·2]남한산성

겹겹이 쌓인 '난공불락의 역사'

김신태 기자

발행일 2014-04-23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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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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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00m 험준한 산에 12㎞ 성벽 둘러싸
'한강유역·수도의 요새' 함락당한 적 없어
삼국~조선시대 성 쌓는 기법 오롯이 축적
왕의 거처인 행궁 복원공사후 2012년 개방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여부 6월말 결정


올 6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남한산성(국가사적 제57호). 요즈음 봄을 맞아 많은 행락객들이 남한산성을 찾고 있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단순히 자연경관(청량산)만을 자랑하지 않는다. 남한산성엔 수많은 문화재가 자리잡고 있어 문화답사 탐방객들이나 학생들도 많이 찾고 있다.

남한산성에는 조선시대 20여개 행궁중 유일하게 종묘와 사직을 갖춘 행궁이 있어 국가전란시 임시 수도의 역할을 담당했다. 또 조선시대 5군영중 하나인 수어청의 근거지이자 광주 읍치를 관리하는 관아(행정)시설이 300여년간 운영되던 조선 최대의 산악 군사·행정도시였다.

남한산성에는 유교, 불교, 천주교, 민속신앙 등 다양한 종교가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숭렬전(경기도유형문화재 제2호)과 현절사(경기도유형문화재 제4호)에서는 매년 음력 9월에 광주유림에서 유교예법에 따라 제향식을 거행한다.

불교는 조선시대 10개 사찰중 현재 4곳(개원사, 국청사, 장경사, 망월사)이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청량당(경기도유형문화재 제3호)에서는 매년 남한산성 대동굿보존회에서 대동굿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 남한산성은 300여명의 순교자를 기리는 천주교 순교성지여서 지금도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남한산성 입구 주변에는 천주교 순교성지와 함께 순교자 현양비가 세워져 있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에서부터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강유역 및 수도에 대한 방어적 기능을 담당했던 곳으로 단 한번도 함락당한 적이 없는 천하의 요새다.

남한산성은 해발 500m가 넘는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 12㎞가 넘는 성벽을 구축,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다. 외성과 옹성을 제외한 남한산성 본성의 규모는 둘레가 7천545m고 성 내부 면적은 212만6천637㎡다.

부속시설을 포함한 성벽의 전체 규모는 1만2천356㎞에 달한다. 또 내부가 넓고 평탄하고 80여군데가 넘는 우물과 45개의 연못이 있었을 정도로 수원이 풍부해 비축된 군량미만 충분하다면 수만병의 병력 수용이 가능할 정도였다.

본성은 신라 주장성의 성돌을 기초로 해 구축했고 외성은 본성과 시차를 두고 구축,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기의 축성기법을 보여주면서 남한산성은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손꼽힌다.

남한산성은 천하의 요새답게 1231년 몽골이 고려를 침공했을 당시 광주부사 이세화의 지휘로 몽골의 공격을 막아냈다.

몽골군은 남한산성을 포기하고 남하했다가 고려조정과의 화의로 1232년 1월 요동으로 철수한다. 같은 해 몽골군의 2차 침입에도 이세화는 뛰어난 전술을 구사해 남한산성을 지켜냈다.

1636년 12월 청 태종이 13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한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다 청군 선발대가 도착한 것을 알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해 항전했다. 하지만 강화도가 함락돼 패색이 짙어지면서 인조는 47일간의 항전끝에 1637년 1월 30일 성을 나가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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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행궁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머물렀던 곳이 바로 남한산성 행궁(국가사적 제480호)이다. '광주행궁' 또는 '남한행궁'으로도 불렸다.

남한산성 행궁은 남한산성 북쪽 동서로의 정점에 배치됐다. 행궁은 왕이 한양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 지원군이 도착할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인조 4년(1626)에 건립됐다. 행궁은 산성도시 안에서 가장 중심의 높은 지대에 자리잡았으며 이 곳은 동·서로에서 직접 바라볼 수 없도록 낮은 언덕으로 가려져 있다.

남한산성 행궁터는 1999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1차 발굴조사를 시작한 뒤 2000년 2차 조사발굴 완료, 2002년에 상궐 72.5칸을 복원했다. 2004년 하궐지의 발굴조사와 좌전(26칸)의 복원공사를 끝마친 뒤 2005년 한남루지 및 행궁 주변 일대 조사완료 후 2010년까지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2년 5월 24일 일반에 개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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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어장대
수어장대(경기도유형문화재 제1호)는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중 하나로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은 대를 말한다. 수어장대는 산성안에서 최고봉인 일장산(지금의 청량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성 내부와 인근 주변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짓고 서장대로 불렸으며 영조 27년(1751)에 이기진이 왕의 명령으로 2층 누각으로 다시 지었고 외부편액은 수어장대(守禦將臺), 내부 편액은 무망루(無忘樓)라 이름했다.

무망루란 병자호란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인조의 아들인 효종이 볼모로 심양(현 봉천)에 잡혀갔다가 8년만에 귀국해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으로 북벌을 꾀하다 승하한 원한을 후세에 전하고 그 비통함을 잊지말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수어장대 성벽쪽은 현재 석축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배부름 현상이 발생해 남한산성관광관리사업단이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성내 남쪽에 위치한 개원사(경기도기념물 제119호)는 일주문안 우측의 사찰 연혁을 보면 "개원사는 인조 2년에 임진왜란으로 파손된 남한산성을 수축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승도들을 총지휘했던 본영사찰로 창건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소실된 뒤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졌다.

또 산성 동문 안에서 동북쪽 약 500m거리의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장경사(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호)는 산성내 사찰중 일제에 의해 가장 적게 피해를 당한 사찰이어서 당시의 모습을 일부나마 보여주고 있다.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은 지난 2009년부터 남한산성 유네스코 등재를 본격 추진해 왔다. 등재여부는 올해 카타르 도하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 개최기간(6월 15~25일)중 신규 등재유산이 발표되는 6월 20~22일 사이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기본적으로 동산을 제외한 유형 부동유산을 대상으로 한다. 문화유산, 자연유산, 문화와 자연이 함께 등재되는 복합유산으로 구성된다. 통상 세계기록유산이나 인류무형유산 등재에 비해 복잡하고 오랜시간이 걸리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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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찾은 행락객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유산 보유국의 문화 국격 상승과 문화국민으로서의 자긍심 고취는 물론 국내외 관광객의 대폭 증대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커다란 기여를 해 전세계는 앞다퉈 자국의 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한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남한산성은 지난 2013년 1월 유네스코에 등재신청서를 제출, 등재신청서 평가를 통과한 뒤 같은 해 9월 현지 실사평가를 마쳤다.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대한민국은 2010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된 '한국의 역사마을 양동·하회마을' 이후 4년만에 11번째 세계유산 보유국이 된다.

현재 세계유산 최다 보유국은 이탈리아로 49건이고 두번째 중국은 45건이다. 일본은 1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경기도와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은 문화재청, 외교통상부 등 중앙정부와 공동으로 카타르 도하에서 열릴 세계유산위원회에 참여해 등재여부가 결정되는 마지막 관문인 21개 세계유산위원국을 대상으로 남한산성의 등재 정당성과 지지를 위한 다각도의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한편 경기문화재단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은 2009년 3월에 출범,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업무, 관련 역사연구와 문화재활용 및 문화콘텐츠 사업, 문화유산복원사업 등의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또 경기문화재연구원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도 남한산성 문화재 돌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료참조/남한산성 사료총서(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글= 김신태기자
/사진=조형기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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