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영원을 꿈꾸다·4]삼남길 지나는 수원·오산

타박타박 걸으며
옛것과 조우하다

김신태 기자

발행일 2014-05-07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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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남길 경기 구간 독산성길.
문화재, 영원을 꿈꾸다 200.jpg
조선 육로교통의 중심축 삼남대로 복원한 도보길
90.1km 경기 구간중 수원·오산 코스 문화유산 풍부
서호천길엔 정조 효심 깃든 지지대 비각·노송지대
인공저수지 축만제와 수인천 흔적 남은 중복들길
독산성길엔 권율장군 이야기와 백제 고찰·공자사당


삼남길은 한양에서 경기도를 거쳐 각각 충청 수영과 해남 땅끝마을, 통영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육로교통의 중심축이었던 삼남대로를 기본 원형으로 한 도보길이다.

삼남길 경기도 전체 구간은 옛길을 고증해 원형을 확인하고 끊겼거나 사라진 도로 대신 걷기 좋은 대체로를 개척해 완성했다. 총 길이는 90.1㎞다.

삼남길 경기도 구간은 과천의 제1길(한양관문길)부터 평택의 제10길(소사원길)에 이르기까지 온온사, 인덕원터, 임영대군 묘역, 사근행궁터, 지지대비, 용주사, 독산성, 진위향교, 대동법기념비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다.

옛 삼남대로는 정도전과 정약용이 나주와 강진으로 유배를 가면서 걸었던 길인 동시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가기위해 자주 이용했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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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대 비각.
■4 서호천길

삼남로의 제4길인 서호천길은 골사그내에서 시작해 지지대비, 지지대쉼터, 해우재, 이목2교, 국립원예특장과학원, 여기산앞, 서호공원까지 이어지는 7.1㎞ 구간이다.

지지대고개는 정조가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현륭원을 찾았다가 돌아가는 걸음이 못내 아쉬워 자꾸 행차를 늦췄다는 이야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곳으로, 정조의 애틋한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고개이름을 늦을 지(遲)자를 붙여 '지지대(遲遲臺)'고개로 부르게 됐다. 이 같은 정조의 효심을 본받고 추모하기 위해 정조의 아들인 순조가 1807년에 지지대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호)와 비각을 건립케 했다. 지지대비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지지대 각자가 음각돼 있고 계단 바로 옆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다.

지지대고개는 서울에서 수원을 연결하는 1번 국도의 수원경계지점에 위치해 있다. 광교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을 통과하는 국도로 '지지대비'는 고개 정상부에 세워져 있다.

문화재는 아니지만 지난 2007년에 문을 연 화장실 문화전시관 '해우재'는 옛 추억을 되새기며 화장실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해우재를 지나 서호천변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여기산에서 대규모 백로서식지를 만나볼 수 있다.

지지대고개 바로 앞에는 불란서참전기념비(한국전쟁 참전)가 있는 장소를 시작으로 옛날 경수국도였던 구 도로를 따라 파장동·이목동·송죽동 일대 도로변 약 5㎞ 구간에 노송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이 '노송지대(경기도기념물 제19호)'는 정조가 현륭원에 행차하던 수원 초입에 해당하는 길로, 정조의 명에 의해 식재된 나무로 수령이 250년된 고유 수종이다.

한때는 수천그루에 달했지만 일제시대때 배를 만든다거나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베어버려 현재는 120여 그루의 노송들만 남아 있다.

이어 길을 가다 발견한 여기산(101m) 선사유적지(수원시 향토유적 7호)는 농촌진흥청 구내에 위치해 있다. 여기산 선사유적지는 1979~1981년 3차에 걸친 발굴조사에 의해 청동기시대 주거지 4기와 초기 철기시대 주거지 3기가 조사됐다.

이곳 여기산성은 내를 낀 낮은 야산에 위치한 소규모의 머리띠 토성이고 성안에서는 무문토기와 김해식 토기편들이 출토됐다. 우리나라 초기 산성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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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만제 표석.
■5 중복들길


삼남로의 제5길인 중복들길은 서호공원 입구에서 시작된다. 서호(축만제·祝萬堤·경기도기념물 제200호)는 정조가 수원을 신도시로 개발하면서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인공저수지다.

제방 너머로 농촌진흥청 시험장이 자리하고 있다. 축만제 표석은 농촌진흥청에서 경수선 철도쪽으로 놓은 둑의 1천350m라고 표기돼 있는 곳에서 둑을 따라 50m가량 지난 곳에 있다.

축만제는 1799년 준공된 인공저수지다. 서호의 저수량은 67만8천t으로 몽리면적(논밭 등이 저수지에 의해 물을 공급받는 면적) 2천107㏊며 만수위의 수면면적은 33.4㏊다.

서호저수지는 지난 1월 AI(조류인플루엔자) 발병으로 한때 출입이 금지됐으나 2월말부터 출입통제가 해제됐다. 하지만 농촌진흥청에서 서호저수지를 출입하기 위한 출입문은 여전히 잠겨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서호저수지는 여전히 농촌진흥청 직원들과 인근 시민들의 산책로로 각광받고 있다.

서호저수지의 항미정(沆眉亭·수원시 향토유적 제1호)은 서호저수지의 남동쪽에 위치한 정자다. 당초 서호 동북쪽에 있던 폐사의 건축자재를 이용해 1831년(순조 31년) 현재의 자리에 건축했다. 그 뒤 유수 신석희와 관찰사 오익영이 중수했다.

수원팔경의 '서호낙조'는 서호에 비치는 노을을 찬미한 것이다. 정자의 이름은 소동파의 '항주(杭州)의 미목(眉目·눈썹과 눈을 아우르는 말)'이란 시에서 따온 것이다. 호수가의 여기산 그림자가 수면에 잠겨 있는 경관이 중국 항주의 서호에 비견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축만제 부근에는 일제강점기 권업모범장이 들어서면서 정조시대의 농업연구기관을 이어받게 된다. 이것이 모태가 돼 오늘의 농촌진흥청과 작물과학원 등이 들어섰다.

중복들길에는 옛 수인선 협궤철도의 흔적이 남아있기도 하다. 수인선은 인천 송도와 수원을 잇는 협궤철도로 총길이 52㎞에 달했다. 수원역을 출발한 열차는 고색-어천-야목-사리-일리-고잔-원곡-달월-논현-남동-용현-남인천을 운행했다.

수인선의 협궤철로는 본래 경기만의 소래와 남동, 군자 등의 염전지대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수송하기 위해 1935년 착공한 철도선이다.

해방후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7차례 운행했으나 1979년부터 구간씩 운행을 중단한 뒤 1995년 12월 31일 운행을 마지막으로 폐선이 됐다. 수원시 오현초등학교 옆에 수인선 교각이 아직 남아 있어 옛 수인선의 흔적을 알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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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산성 세마대지.
■7 독산성길

삼남길 제7길인 독산성길에서는 오산 독산성 세마대지(사적 제140호)에 올라 주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세마교를 지나 황구지천변길을 걷다보면 등산로를 이용해 독산성에 오를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독산성에 주둔했던 권율 장군이 말에 쌀을 부어 물이 많은 것처럼 위장해 왜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독산성은 경기 남부의 중요한 군사요새였고 성곽길을 걷다보면 주변 경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백제고찰 보적사가 독산성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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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세교지구의 아파트 곁을 잠시 걷다보면 궐리사(경기도기념물 제147호)를 만날 수 있다. 궐리사는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관림 사당이다.

/글=김신태기자
/사진=조형기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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