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영원을 꿈꾸다·5]시흥의 선사유적과 문화유산

오이도-신석기를 간직하다

김신태 기자

발행일 2014-05-14 제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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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소래벌 패총 조사 현장. /서울대박물관·시흥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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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남서부·남부 섬전체 패총 다수 발견
빗살무늬토기 확인 서해안 연구 새 지평

능곡동유적 선사~조선 유물 다량 발굴
수도권 최대 규모 신석기마을 가치 높아

소래산 암벽에 마애보살입상 섬세·세련된 표현 기법
조선 4대 문장가 장유선생 신도비 높이 2.65m 국내 최대


시흥시 정왕동에 위치한 오이도(烏耳島). 오이도는 이제 섬이 아닌 육지다. 1922년 일제가 염전을 만들기 위해 오이도와 안산시간 제방을 쌓은 뒤부터 자동차가 드나드는 섬같은 육지가 됐다.

오이도에는 지난 1960년대 최초로 학계에 보고된 서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패총(貝塚)을 간직하고 있는 오이도 유적(사적 제441호)이 자리잡고 있다.

섬 전체 곳곳에서 발견된 패총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먹고 버린 조개껍데기 등이 쌓여 이뤄진 퇴적층 유적. 조개껍데기가 쌓였다고 해서 조개무덤·조개무지·조개더미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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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곡 선사 유적지에 복원돼 있는 원시시대 주거지.
# 시흥시 선사 유적


= 오이도에서는 섬 전체가 패총으로 이뤄졌다고 할 정도로 곳곳에서 패총이 발견됐다. 오이도 패총은 크게 북부지역 패총군과 남서부지역 패총군, 남부지역 패총군으로 구분되고 있다.

남부지역 패총군은 신포도 패총으로 2개소다. 1988년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조사됐으며 야외 노지(불땐 자리) 2기를 비롯해 많은 양의 빗살무늬토기 및 석기, 골각기(짐승의 뼈·뿔 등으로 만든 도구) 등이 발굴됐다. 남서부지역 패총군은 살막 패총으로 3개소다.

1988년과 1999년 두차례에 걸쳐 조사됐다. 빗살무늬토기편·석기류 등 1천여점과 수혈 주거지(원시시대 살림집 형태의 하나로, 땅에 10~100㎝ 깊이로 넓은 구덩이를 파고 위쪽에 지붕을 덮은 것) 3기, 야외 노지 3기 등이 나왔다.

북부지역 패총군은 안말 패총·뒷살막 패총·소래벌 패총 등이다. 뒷살막 패총은 2000년 조사했으며 적은 양의 빗살무늬토기, 석기가 발굴됐다.

오이도 유적은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 연구에 새로운 자료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빗살무늬토기 확인으로 서해 도서지방 신석기 문화 편년(編年)의 새로운 자료를 보여줬다.

출토된 토기들 중에는 중국 산둥지방 신석기 문화인 용산문화의 흑도(黑陶)와 그 제작 방식이 비슷한 토기 1점을 비롯해 중국의 황해 연안지방 신석기 유적 출토품과 비슷해 동아시아 선사문화 비교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이도 유적은 지난 2002년 4월 1일 국가사적으로 지정됐으며 2012년 5월에는 '시흥부오이도 선사·해안문화특구'로 지정됐다.

시흥시는 현재 오이도 유적을 중심으로 역사공원화 사업을 추진중에 있다. 시는 2017년까지 377억여원을 들여 오이도 일대 37만2천389㎡에 전시관, 전망대, 탐방로, 야생화 단지, 체험학습장 등을 갖춘 역사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오이도 유적지 일부는 1.5㎞ 길이의 초대형 벽화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다. 벽화는 지난해 5월 국내 최대 인원인 1천4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가장 큰 벽화를 그린 것으로, 대한민국 최고 기록이 인증돼 기네스북에 오른 상태다.

울타리 안 오이도 유적 곳곳에는 분묘를 이장한 흔적들이 남아있고 현재 울타리안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 오이도에는 안말, 살막, 신포동, 고주리, 배다리, 소래벌, 칠호, 뒷살막 등의 자연부락이 있었으나 시화지구 개발로 1988년부터 2000년 사이에 모두 사라졌다.

시흥 능곡동 선사유적(향토유적 제20호)은 6천여년 전으로 추정되는 신석기시대 유적이다. 이 시기는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기 전이어서 열매 채취, 물고기 낚시, 수렵 등으로 인간이 살았던 시기다. 2005년 능곡택지개발지구(당시 한국토지공사)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됐다.

능곡동 선사유적은 현재 능곡고등학교와 마주보고 있으며 물왕저수지로 우회하기 직전에 통과하는 터널식 도로 위 언덕에 선사유적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은 선사시대 문화유산 배움터로 활용되고 있다.

능곡동과 군자동 일원에 계획된 능곡택지개발지구의 7개 지점에 대한 대규모 발굴조사는 경기문화재단 부설 경기문화재연구원에 의해 2004년 10월부터 2007년까지 이뤄졌다.

이 곳에서는 신석기시대 집자리 24기 이외에 청동기시대 집자리 6기, 구덩이 2기, 삼국시대(백제)와 통일신라시대 무덤 6기, 조선시대 이후 무덤 107기, 구들, 석렬 등 여러 시대의 다양한 유구들이 확인됐다.

서울·경기지역에서 발견된 최대 규모의 신석기시대 마을유적이란 점에서 우리나라 서해안 지역의 선사문화연구를 위한 매우 중요한 발견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능곡동 선사유적이 위치한 언덕 바로 아래에 자동차관련시설(세차장) 공사가 진행돼 유적지 훼손을 우려한 인근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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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동기 시대 탁자식 고인돌인 조남리 고인돌.
조남리 지석묘(경기도 기념물 제103호)는 청동기 시대의 탁자식 고인돌이다. 시흥시 조남동 소릉뫼(小陵山) 서남쪽 안골 비닐하우스와 논 등으로 둘러싸인 논둑에 위치해 있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4.2m, 너비 3m, 두께 70㎝다. 덮개돌은 윗면에 금이 많이 가 있다.

가운데 쪽에도 깨진 흔적이 남아있다. 덮개돌 아래에서 3개의 굄돌이 확인됐고 지석묘에서는 어떤 유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시흥시가 1995년 진입로를 마련했고 1999년 지석묘 자체의 성격 규명과 청동기 시대의 문화층을 확인하기 위해 한양대 박물관에 의뢰,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주변을 정리했다. 2007년 7월 지반 침하로 훼손됐으나 2008년 보존·강화 처리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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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래산 마애보살입상.
# 시흥시 문화재


=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시흥시 소래산 중턱 병풍바위 암벽에는 마애보살입상(보물 제1324호)이 새겨져 있다.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자연 암벽에 부조나 선각 등으로 불상을 조각했다.

높이 14m, 보관 높이 1.8m, 발길이 1.24m, 발톱길이 15㎝, 귀 1.27m, 눈크기 50㎝, 입크기 43㎝, 머리높이 3.5m, 어깨너비 3.75m로 지난 2001년 보물로 지정됐다.

지금은 암벽의 풍화가 심해 그 형상을 뚜렷하게 알아보기 힘들지만 그 기법이 우수하고 회화적 표현이 뛰어난 세련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머리에 화사한 보관을 쓰고 보관 내부는 덩굴무늬로 장식돼 있다. 양 어깨를 덮은 대의(설법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거사)는 어깨에서부터 옷주름이 활 모양을 그리며 무릎까지 자연스럽게 흘러내려와 있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띠매듭 아래 부분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해 펴고 있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받침대 위에 서서 두발을 벌리고 있으며 발가락은 발톱까지 알아볼 수 있도록 매우 섬세하게 표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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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유선생 신도비.
향토유적 제2호인 장유 선생(1587~1638) 묘 및 신도비는 시흥시 조남동에 위치해 있다. 신도비는 묘에서 서쪽으로 70m쯤 떨어져 있는데 1676년(숙종 2년)에 세워졌다.

높이 2.65m, 폭 1.3m, 두께 32㎝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신도비다.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청평위 심익현이 썼다. 전자는 광성부원군 김만기가 했다.

인선왕후는 장유 선생의 딸로 봉림대군(효종)과 혼인해 왕후가 됨으로써 장유 선생은 신풍부원군에 봉해졌다. 장유 선생은 이정구·신흠·이식과 더불어 조선시대 4대 문장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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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송시열은 "선생의 문장은 우리나라 제일"이라고 평했다. 저서중 '계곡만필', '음부경주해 '등이 전해진다.

/글=김신태기자
/사진=조형기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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