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나요?

허훈

발행일 2014-05-19 제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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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훈 대진대교수·한국정책과학학회장
안전한 나라 만드는데
누가 진정성과 능력 있는지
선택하는 일 우리앞에 놓였다
국민들은 이제 김밥도 사먹고
영화관도 가고, 카페에 들러
공약이 참인지 거짓인지 살펴야


세월이 얼마나 지나야 세월호를 잊을 수 있을까? 사고 후 한 달여가 지나고 있어도 국민이면 누구나 죄인이 되었다. 세상 어디를 보아도 참사가 떠오르고, 분노와 후회, 그리고 우울함이 넘쳐난다. 부모 돌아가시고 3년 상을 치르듯 해야 해원이 될 성싶다. 그만큼 아이들을 떼로 수장시켜 놓은 우리 국민들의 죄의식은 크다. 하루하루 생업에 종사해야 먹고 사는 보통사람들도 공무원들이 잘못하고, 선원들이 지은 업보를 같이 짊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비명소리를 지른다.

세월호 사고 구역 불과 3㎞ 정도 떨어진 바다에서 미역이나 김 양식으로 먹고 살던 진도군 동거차도의 주민들은 어디 가 하소연도 못한다. 생업은 온데간데 없고 사고 구역 수색에 기름 방제작업에 눈코 뜰 새 없다고 한다. 그들로서는 한 해 먹거리가 날아간 판이다. 더 딱한 것은 동거차도 주민들이 아닐지 모른다. 그곳은 그래도 특별재난구역이 선포되어 차후에 더디겠지만 어느 정도의 보상이라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보통사람들이 사는 보통사람들의 동네는 어디 가 하소연할 데도 없다. 골목장사로 통하는 김밥 집은 해마다 찾아오는 대목을 놓쳤다. 5월이면 야유회를 가거나 여행을 가기 위해 단체 주문하던 손길이 뚝 끊긴 것이다. 어디 그곳뿐이겠는가? 죄지은 심정으로 사는 사람들이 빵집인들, 동네 음식점인들, 영화관인들 예전처럼 출입할 수 있겠는가. 해마다 이맘때면 로고가 박힌 셔츠나 단체 체육복을 맞추어 입고 회사 체육대회를 여는 풍경 또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연중 한철 야외복이나 단체복을 팔아 먹고 살던 영세 의류제조업자들은 한 해 매출의 상당수를 포기했다. 애꿎은 수학여행이 전부 중단되고, 이 여파로 여행객이 끊기니 운송업, 여행업, 음식업, 숙박업 등과 서민경제를 지키는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4분기 경제성장 예상치도 당초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이 지난 16일 유족대표들을 만났다.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기 전에 유족의 의사가 중요하다 해서 만난 자리다. 그 분들이 사건을 수사할 민간인수사권까지 달라니, 대통령은 겉으로야 어떻든 속으로는 망연자실하였을 것이다. 그가 이끄는 정부, 그리고 수사가 얼마나 못미더웠으면 칼자루를 달라고 했겠는가? 대통령도 자신이 이끄는 정부에 대해 실망이 컸을 것이다. 이제는 대통령담화문에 기대를 건다. 담화문에는 절절한 사과와 체제개혁의 미래가 담기길 바란다. 원세방세의 저자 정순훈이 말하는 대로 하면 대통령이 죄기조(罪己詔)의 성격을 갖기를 바란다. 왕조시대에도 임금이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는 조서를 백성들에게 내렸다고 한다. 조서란 임금이 자신이 한 명령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무소불위한 임금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조서도 있었다니 신기하다. 원래는 중국 한나라 문제시절부터 시작되었다는 죄기조는 당태종 등 명군일수록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우리 조선조에도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이 극심한 천재가 발생했을 때 죄기조를 내렸고, 임진왜란으로 의주로 파천한 선조도 죄기조를 내렸다. 방으로 걸린 '죄기조'를 통해 백성은 위안을 받고 임금은 심기일전하여 국정을 이끌었다고 한다.

담화문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없을까? 세월호에서도 보지 않았는가? 배가 침몰해서는 슬픈 일만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호가 침몰해서는 여당도 야당도 없다. 6·4 지방선거전에서도 이미 민심은 여당을 심판하고 있다. 야당도 이제는 정책으로 말하고, 재난안전의 대처에서 보여준 시스템의 무능을 개혁하는 공약으로 승부하자. 마침 각급 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이 되어 지난 16일 매니페스토선거 협약식을 곳곳에서 거행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정책적으로 상호 보완되는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데 누가 진정성과 능력이 있을지 선택하는 일이 우리 앞에 놓였다. 정치인들은 정쟁보다는 정책경쟁을 하고, 국민들은 이제 김밥도 먹고, 영화관도 가고, 카페에 들러 후보들이 내건 공약이 참인지 거짓인지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겠는가?

/허훈 대진대교수·한국정책과학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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