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그]美뉴저지 정치1번지 저지시티 최초 '한국인 시의원' 윤여태

진정성 담은 '한국식 오지랖' 美 유권자 움직였다

강기정 기자

발행일 2014-05-29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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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저지주의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저지시티에서 최초의 한국인으로 시의원에 당선된 윤여태 의원이
지역민 90% 백인·한인은 6명
9년간 부시장 불구 선거 난항
편지 6만장 직접 서명해 발송
80세 노인·환자도 투표소로

한국 선거운동 '고작 13일'
민심 제대로 듣기에는 짧아
적어도 1년간은 '민생탐방'
시민이 원하는 일 준비해야


2013년 6월 11일. 미주 한인 정치사에 한 획이 그어졌다. 미국 뉴저지주의 정치 1번지라고 불리는 저지시티에서 최초의 한국인 시의원이 탄생한 것.

아일랜드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저지시티내에 그가 출마한 하이츠 선거구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권자는 당시 고작 6명, 이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인 윤여태(60·마이클 윤) 의원이 지난 26일 한국을 방문했다. 5년만의 고국 나들이다.

두 달 전 미국 출장길에 오른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인연이 닿아 방한했다는 윤 의원은 "사람도 많고 혼잡해도, 한국에 오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며 한국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사랑을 내비쳤다.

1979년 유신정권 말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에 무작정 낯선 땅 미국으로 향한 지 35년. 동도 트지 않은 시간에 일어나 온종일 잡화점과 제과점에서 물건을 나르고, 해가 지면 졸린 눈을 비비며 수업을 듣는 고된 나날이었다.

집값이 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을 붙였던 저지시티는 10명 중 9명이 아일랜드계 혹은 이탈리아계 백인이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도 심해, 돈이 있어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일마저 왕왕 있었다.

고생 끝에 신문과 잡지 등을 파는 작은 가게를 열고 매일 아침마다 거리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거리를 쓸고 부서진 공원 의자를 고쳤다. '한국인은 원래 이웃을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그러는 사이 주민들 사이에서 '따뜻한 미스터 윤'으로 입소문을 탔다. 오지랖 넓은 동네 책방 아저씨가 차기 시장 1순위로 거론되던 상대 후보를 가볍게 제친 원동력이었다.

"그냥 옆집 사는 유색인종, 한국인에 그친다면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윤 의원은 "미국 사회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길 기다리기보다, 진짜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내자. 여기서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 진정한 마음은 어디서나 통한다

'따뜻한 미스터 윤'이 뉴저지주 정치 1번지에 입성한 데에는 인종차별과의 싸움이 주춧돌이 됐다. 1987년 9월 한낮에 인도계 의사가 인종차별주의자의 폭행으로 숨졌는데도 지역 경찰이 "이민자가 겪어야 할 과정"이라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던 것.

윤 의원과 아버지가 먼저 나서 서명을 받고 시위를 벌여 결국 재조사를 이끌어냈다. '우리 일이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움직인 것이지만, 이 일은 6년 뒤 그를 저지시티 부시장으로 만드는 시작점이 됐다.

1993년부터 9년간 부시장을 역임했지만 시의원 도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2001년 작고한 아버지의 말씀대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고 생각했다.

선거운동 기간에 주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일일이 손으로 사인을 했다. 그렇게 서명한 편지 수만 6만여장. 공식일정 외에는 편지에 서명하는 데 온 시간을 보냈다.

"보통 '나를 뽑아 달라'는 편지가 오면 사람들이 그냥 한번 쓱 읽고 버리는데, 친필서명이 있으니 쉽게 버리지 못하더라"고 회상한 윤 의원은 "아일랜드계나 이탈리아계 백인이 90%가 넘는 동네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온 한국인을 찍게 하려면 그만큼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진정한 마음은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도 통했다. '정치인들은 거기서 거기'라며 일평생 투표를 안 하던 80세 노인부터, 이제 막 병원에서 퇴원한 이들까지 '따뜻한 미스터 윤'을 위해 투표장으로 향했다.

"지금 너무 아파 응급실에 있는데 부재자투표를 좀 하게 해 달라"는 유권자마저 있을 정도였다. 선거에서 이겨서가 아니라, 윤 의원의 진정성이 통했다는 생각에 아내가 먼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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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회 입성 1년, 주민을 위해 달렸다… 한국 선거는 민심 듣기에 역부족


주민들의 마음이 모여 당선된 만큼 진심으로 저지시티를 위해 뛰고 싶었다. 우선 주민의 편에 서서 불합리한 세제를 개편했다.

저지시티는 부동산세 등 재산세 감면을 통해 투자 유치를 많이 이뤘던 게 발전의 동력이 됐지만, 대신 주민들이 추가로 세금을 내 감면에 대한 부담을 메웠다. 이에 30년이었던 부동산세 감면기간을 최대 5년으로 줄였다. 주민들의 부담도 큰 폭으로 줄었다.

최초의 한인 시의원답게,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의 저변을 넓히는 데도 열심이었다. 젊은 한국인 여성 모니카 조(33)가 저지시티에서 검사로 활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가 하면, 뉴저지주에 한국전 참전비가 들어설 때도 주된 역할을 했다.

다른 참전비와 달리 한국의 현재 모습을 함께 담아 미국은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한국을 홍보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현재 윤 의원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다음달 3일 예정된 시의원 선거. 뉴저지의 관문으로 통하는 포트리에서 한국인 변호사 폴윤(40)이 시의원 후보로 나선 것이다. "자꾸 참여하고 정치적으로 세력화해야 미국 사회에서 한인들의 존재감이 커질 수 있다"는 윤 의원은 "성공사례가 많아질수록 우리 2세, 3세들도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스윙 보트 역할을 하는 등 더 넓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침 한국에서도 미국 시의원 선거 다음날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는 말에 윤 의원은 "한국 선거는 운동기간이 너무 짧은데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후보자들이 민심의 소리를 제대로 듣기에 13일이라는 선거운동 기간은 터무니없이 짧다는 얘기다. 1년 정도 지역 곳곳을 다니며 유권자들의 손을 맞잡았다는 윤 의원은 "적어도 1년 정도는 지역 유권자들과 직접 만나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에게 어떤 것을 해줄 수 있는지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거리 곳곳에 홍수를 이루고 있는 현수막들도 결국은 주민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주민에게 자신을 알릴 수 없기 때문에 비롯된 추한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한국 유권자들은 후보자를 겨우 보름가량 보고 4년을 맡겨야 하는 '불쌍한 유권자'라는 얘기다.

# 한국인 중심되는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 천천히 이룰 것

이날 인터뷰에는 윤 의원과 40년이 넘은 '절친'인 이석찬 한민족한마음세계연합회장이 동석했다. 윤 의원은 이 회장에 대해 "아버지께서 인생을 함께 할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후회없는 삶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회장이 바로 제겐 그런 친구"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금 저지시티에서 10명을 붙잡고 물어보면 전부 '마이클(윤 의원의 미국명)이 다음 시장'이라고 말한다"며 "윤 의원이 저지시티에 국한된 정치인으로 남는 게 아니라 세계 수도 뉴욕의 뉴저지를 대표하는 이민 1세대로서, 미주 한인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정치인으로서 계속 역할을 하려면 더 많은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나름의 활동을 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다음 저지시티 시장 출마는 이미 윤 의원의 의사와 상관없는 일이 돼버렸고, 한민족한마음연합회 활동과 재외 한인 체육회 활동 등에 경인일보도 적잖이 관여한 만큼 윤 의원 당선에 경인일보도 적극 기여해야 한다"는 농담도 건넸다.

윤 의원은 "다음달 3일 시의원 선거가 우선 그 관문이 될 것"이라며 "뉴저지에서 시의원에 이어 최초의 한인 시장이 나오면 그 다음 선거에서는 분명히 한국인들이 연방하원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된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않겠다는 게 윤 의원의 생각이다. 천천히, 한 발자국씩 더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한국인들이 들어간다면 어느새 미국사회에서 한민족의 저변이 넓어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 때문이다.

이 믿음의 출발점은 한 중국 인권운동가의 인터뷰였다. 윤 의원은 "미국에 왔을 때 뉴욕타임스에서 한 중국 인권운동가를 인터뷰한 것을 봤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을 때였는데, 왜 한국은 하는데 중국은 (민주화 운동을)못하냐는 질문에 그 인권운동가가 '중국의 긴 역사에 비해 지금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천천히 희생 없이 민주주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답하더라"고 설명하며 "너무 빨리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지금 우리의 행동이 장래에 미치는 영향을 참고 기다리며 보는, 그런 지혜가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무언가 의미있는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조금씩, 서두르지 않고 저지시티 주민들과 한국인들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끊임없이 뛸 것"이라고 말했다.

■ 윤여태는

▲ 1954년생. 1979년 미국으로 이민
▲ 서울 성남고, 미국 브루클린대 경영학과
▲ 1993~2002 미국 뉴저지주 저지시티 부시장
▲ 2013~ 저지시티 시의원

글 =강기정기자
사진 =임열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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