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 구호로만 남발되는 사회

일상 생활속 행동지침 그저 말로만 외쳐
곳곳에 노출된 위험들로부터 무감각 해져
안전불감증만 더 키우는건지 생각해봐야

이순원

발행일 2014-05-30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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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소설가
내가 처음 서울의 지하철을 타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꼭 38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나는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서울에 무슨 시험을 보러 올라와 친구들과 또 우리를 인솔하는 선생님과 함께 동대문에서 시청앞까지 지하철을 타보았다. 철로의 터널은 산을 통과할 때만 뚫는 줄 알았는데, 이 굴 속 위에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있고, 집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전철요금이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거기에 금액이 적혀 있었을 텐데 혹시 그걸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 표를 받자마자 꼭 쥐고 있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또 하나 이렇게 굴속을 달리던 중 중간에 멈춰서면 어떻게 하나, 혹시 이 굴속에서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손안에 땀이 배어들며 몇 정거장 가는 동안 딱지와 같은 승차권이 후줄근하게 젖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38년이 지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신도시 고양 일산이다. 젊은 시절 직장을 그만 두고 오직 글만 쓰고 사는 전업작가가 되면서 신도시로 이사했는데,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은 이런 저런 일로 전철을 타고 서울로 나간다. 한동안 전철의 안전에 대해 무감하게 지내다가 세월호 침몰사고 후, 또 얼마 전 서울지하철 사고 후 다시 내가 굴속을 지나다니는 것에 대해, 또 그런 동안의 신변안전에 대해 생각한다.

실제 우리 주변에 보면 안전만큼 강조되는 구호도 없다. 신축건물 공사현장에도, 길을 새로 내거나 정비하는 토목 공사현장에도 안전띠 내지는 안전 펜스가 둘러져 있고 거기에 어김없이 안전제일 구호가 적혀 있다. 아마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만큼 도처에 말과 구호로 안전을 강조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사고가 많은 것일까. 안전이 생활 속의 지켜야 할 행동지침이 아니라 그냥 입으로만 떠드는 구호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해가 떠도 안전이고 달이 떠도 안전이고, 안전을 마구 내팽개친 현장에도 어김없이 안전띠와 안전구호가 자리잡고 있다.

며칠 전 내가 사는 고양시의 종합터미널에 화재가 발생해 귀한 목숨을 8명이나 앗아갔다. 그 사고로 터미널 매표대기실에서만도 수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것은 그저 남의 일이고 다른 동네의 사고일 뿐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그 사고는 좀 더 가깝고 아찔하게 다가온다. 바로 그 사고가 있기 몇 분 전 내 아들이 그곳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갔기 때문이다. 어떤 일로 몇 분만 미적거렸다면 화재 현장에 내 아이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사고를 피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다행한 일이지만 세월호도, 이런저런 지하철사고도, 고양터미널 화재사건도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발생한 전남 장성요양원 화재사건도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요즘 보면 기업하기 좋게, 장사하기 좋게 모든 규제 다 풀기가 국가 경제부양의 제일 정책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저마다 얼마나 살림살이가 나아질지는 모르지만 어제까지 아무 사고 없었던 건물에 당장 일어날 불도 아니고 당장 무너질 기둥도 아닌데 왜 이렇게 기업하기 어렵게 또 장사하기 어렵게 지켜야 할 쓸데없는 규칙들과 돈 들여 시설하거나 갖추어야 할 안전규정들이 많으냐면서 이런저런 안전규제 다 풀어버리고, 관리감독도 눈가리고 대충하도록 서로 상부상조하는 부정부패의 먹이사슬 속에 당장 나와 내 가족이 아니다뿐이지 언제 어디에서든 누군가는 반드시 희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우리 사회가 이미 들어가버린 느낌이다.

일상생활 속의 행동지침이 아니라 그저 입으로만 떠드는 사고방지와 안전대책이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거기에 주술적인 힘이라도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입으로만 떠드는 안전구호들이 오히려 도처에 널려 있는 위험들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안전불감증만 더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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