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의 나라

배종찬

발행일 2014-06-02 제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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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그동안 정치소비자로서 권리를
너무 태만했다면 반성할 필요
이번 선거만큼은 우리가
주인공이 됐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은 후보자의 나라가
아닌 유권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며칠 있으면 지방선거일이다. 사전투표일에 이미 투표를 한 유권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투표는 본 선거일에 이루어지고 개표까지 한다. 돌이켜 보면 이번 선거는 '세월호 사고'라는 전대미문의 대형 참사 영향이 클 것이다. 여야의 유불리를 떠나 사람들의 삶 자체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정치의 중요성을 함께 생각해본다. 생명의 고귀함만큼이나 우리 정치에서 유권자들은 존중받고 있는 것일까. 자칫 후보자들의 눈에는 유권자들이 한 장의 투표용지처럼 비쳐지는 것은 아닐까. 이 나라가 몇몇 지도자나 후보자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 유권자들은 인식해야 한다.

유권자 중심의 선거가 되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단순히 숫자로 보아도 선거의 주인공은 유권자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전체 유권자수는 4천130만명 정도에 출마 후보자는 9천명 정도 된다고 한다. 전체 유권자수에 비하면 후보자는 2.2%에 불과하다. 왜 97.8%의 유권자가 소수인 후보자에게 선거의 주인공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가. 후보자를 결정하는 방식, 과정, 선거운동 내용, 공약의 전달 방식 모두 정당과 후보자 중심이다. 정당과 후보자 중심의 선거에서 유권자는 뒷전일 수밖에 없다. 선거 운동 때만 표를 위해 90도 인사와 준비된 미소가 남발된다. 당선이 결정되고 나면 선거 운동 때 섬기던 자세는 온데간데 없어진다. 유권자가 주인공이라면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둘째 정당과 후보자들이 공약을 제대로 알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의 지난 1월 11일 조사결과(전국 1천명, 유무선 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를 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에 대해 '경력과 공약까지 알고 투표했다'는 응답자 10명 중 3명이 조금 넘는 34.5%에 불과했다. 수많은 국민들이 그리고 전문가들이 지방정치 개혁을 외쳐왔지만 철저히 외면했다. 결국 이번 선거를 앞두고도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지방선거제도는 정치적 누더기가 되어 버렸다. 구분하기 힘든 집단 홍보물, 일방적인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 앵무새처럼 외쳐대는 유세 등 어떤 변화와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찾기 힘들다.

셋째 유권자들의 무관심이다. 후보자 중심의 선거라고 힐난하지만 유권자의 각성이 부족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아 어느 자리를 가도 자칭 정치평론가가 넘쳐난다. 하지만 정작 개혁 의지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유권자들의 결집된 관심과 비판이 발휘되지 않는다면 모든 불만이 개인적 푸념에 그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국정 운영의 책임자인 대통령보다 지역 자치의 책임자인 기초단체장, 기초의원이 우리 삶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 교육의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질 교육감 자리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또는 선거운동 기간 이전에 다양한 정책을 두고 토론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기 힘들다. 정치권의 이해에 휩쓸리지 않는 유권자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중립적이고 이성적인 행동이 앞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유권자들은 결국 투표율을 결정하는 숫자로 밖에 대접받지 못할 것이다. 넷째는 정당의 의지와 인식의 대전환이다. 후보자를 공천하는 과정에 여론조사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주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후보자를 확인하고 경합 지역에서 당선가능성이 높은 인물을 선택하려는 것이다. 선거 승리를 염두에 둔 정당 입장에선 당연한 과정일 수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인물을 기대하고 기존 인물에 혐오를 느끼는 유권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지역이 상당수다. 이런 지역에서 후보자들이 유권자보다 정당의 눈치를 더 볼 것은 자명하다.

왜 우리는 휴대폰 기술에 버금가는 정치 혁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기업은 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수천번 아니 수만번 실험을 거치게 된다.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 소비자가 있다. 정치의 소비자는 유권자이다. 그동안 정치소비자로서 우리의 권리행사를 너무 태만하게 했다면 이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선거만큼은 유권자가 주인공이 되면 좋겠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후보자의 나라가 아니라 유권자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배종찬 리서치&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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